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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 밖에 버려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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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 밖에 버려진 사람들'

김민웅의 세상읽기 <116>

여전히 놀라운 건축술의 미학(美學)을 드러내는 중세 유럽의 성채(城砦)를 보면, 성 밖과 그 안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제대로 된 큰 성의 경우에는 적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주변에 물이 둘러쳐서 흐르도록 설계되어 있고 사방에 높은 망루가 세워져 있으며, 성 안에는 성주(城主)의 거처를 비롯해서 하나의 도시가 거대하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성 안은 봉건성주의 무력에 의존한 안전을 의미했고, 성문 밖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불확실한 현실을 뜻했습니다. 근대의 여명이 시작되는 1493년 하르트만 세델의 목판본 <세계연대기>에 수록된 뉘른베르크 성의 그림을 보면, 당시 성이 우주의 진행과는 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하나의 독립된 세계라는 느낌을 줍니다. 중세의 성채는 그것 자체로 이미 완결된 하나의 질서였고, 따라서 이 성채의 권력이 정해놓은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자신의 안전을 최대한 확보하는 선택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 안의 사람들에게 성을 수호하는 일은 자신들의 목숨을 살려내는 일이었습니다. 성문 밖은 위험과 불확실과 전쟁, 그리고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곳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으로부터 축출되는 것은 안전을 박탈당하는 것이 되었고, 정처 없는 유랑자의 신세가 되어 약탈이나 착취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예감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중세 봉건사회의 모순과 역사적 한계에 대해 여러 가지 지적과 비판이 있기는 하지만, 봉건영주에게는 적어도 자신의 성 안에 속해 있는 이들에 대한 보호의 책임은 매우 중대한 의무이자 덕목이었습니다. 이걸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중세 비판은 전체적인 맥락을 놓치기 쉽습니다. 영내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삶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는 영주(領主)는 영주로서의 자격이 없는 폭군에 지나지 않았고 결국에는 새로운 영주의 등장에 의해 교체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봉착하고 맙니다.

중세의 성채 안에 배치된 사회질서에서는 교회 옆에 병원이 있었고, 빈민구제를 위한 건물도 함께 있었다고 합니다. 근대 이전의 근대적 사회안전망의 확보였던 셈입니다. 가난한 자와 아픈 자에 대한 종교적 책무가 중세의 질서 속에 반영된 결과이기도 했고, 성 안의 사회적 연대가 해체되지 않고 강력하게 역할을 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질서는 부르주아 혁명으로 중세의 질서가 깨져나간 다음에도 빈민을 위한 사회보장 제도를 발전시켜나가는 토대가 되었고, 사회적으로 소외되거나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의 연대를 복구하는 역사적 기원으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말하자면, 중세의 유럽은 그 모두가 부정되어야 할 것들로만 채워진 사회가 아니라 나름으로 그 안에 있는 이들의 현실을 지켜내는 제도와 장치가 존재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었던 셈이었습니다.

성채의 질서는 당연히 근대적 요구 앞에서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고정된 신분제도와 성 밖의 세계와는 담을 쌓고 살아가는 폐쇄적 체제라는 점에서 변화에는 무능력한 상황에 있었습니다. 절대군주를 중심으로 하는 국가적 통합의 새로운 흐름 속에서 봉건적 지역성에 머물러 있던 성 안과 성 밖의 구별 또한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봉건영주의 책임도 자연 해체되었고, 중세의 현실을 떠받치고 있던 사회적 연대도 하나씩 붕괴되어 나갔습니다. 그것은 일면 봉건적 속박으로부터의 자유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을 홀로 지켜야 하는, 무자비한 경쟁이라는 맹수가 출몰하는 광야의 시작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부르주아 혁명이 가져온 사회변화 앞에서 아무런 보호장치도 없는 상태로, 사람들은 이를테면 성 밖으로 내던져진 것이었습니다. 근대의 진전과 함께 동반된 비극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역사가 수수방관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비극을 해결하기 위해 무수한 노력이 기울여졌고, 그 성과도 있습니다. 이 노력의 수준에 따라 그 사회의 진정한 발전이 있는가 없는가가 판가름 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는 사회적 양극화의 결과로 성문 밖에 버려진 사람들이 자꾸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의 문제는 여전히 사각지대에 있습니다. 지역주의가 우리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주범으로 지목된 채, 성밖에 유기(遺棄)되어진 사람들의 아우성과 절규는 묻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과연 중세 유럽의 성채보다 못한 현실에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영주가 되겠다는 이들은 여기저기서 깃발을 휘날리며 나타나고 있지만, 중세의 봉건영주가 가지고 있던 덕목에도 이르지 못한 이들이 성을 차지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기만 한 것은 혹시 아닐까요?

*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센타'(오후 4-6시/FM 104.5, www.ebs.co.kr )의 5분 칼럼을 프레시안과 동시에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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