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990년대 중반부터 사실상 붕괴됐던 식량 배급제를 재개할 움직임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북한 정부가 경제 관리 능력과 경제 개혁에 자신감을 회복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내각 명의 지시문 내려져"**
31일자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10월 1일부터 국가배급망을 정상적으로 운영하라는 내각 명의의 전화지시문을 19일 전국에 내려보냈다.
<동아일보>는 이와 함께 북한과 중국간 무역에 종사하는 한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내각 지시문이 내려진 다음 날 각 도의 시군에서 양정(糧政) 부문 종사자 회의가 열렸다"면서 "배급망 구조 및 인력체계 재정비는 물론 개인 토지에서 생산된 식량을 6개월 배급 분으로 간주해 식량공급가격에 해당하는 돈만큼 개인에게서 징수하는 문제도 논의됐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또 북한에 정통한 또 다른 소식통이 이 사실을 확인했다고 전하고 최근 북한 전역에서 식량 가격이 폭락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6월 말 전국적으로 평균 북한 돈 1100원(약 500원)을 호가하던 쌀(1kg) 가격이 8월 말 700원대로, 옥수수(1kg) 가격은 500원대에서 200원대로 떨어졌다"는 내용이다.
***시장경제적 요소 도입, 후퇴인가 확대인가**
북한의 이같은 움직임이 정확히 어떤 배경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또한 이같은 움직임을 뒷받침할 만큼 충분한 식량이 확보됐는지도 분명치 않다.
북한 문제 전문가들은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북한 정부가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60돌을 맞아 체제 정당성을 확보하고 선전하기 위한 조치라고 입을 모으면서 '경제 관리 능력 회복' '7.1 경재관리 개선조치의 연속선 상의 조치' 등의 해석을 내놨다.
박순성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과거와 같은 의미의 전면적인 배급제가 재개된 것은 아닐 것이라며, 오히려 시장경제적 요소를 도입하려 했던 2002년의 '7.1 경제관리 개선조치'가 확대된 것일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박 교수의 이같은 분석은 "개인 토지에서 생산된 식량을 6개월 배급 분으로 간주해 식량공급가격에 해당하는 돈만큼 개인에게서 징수하는 문제도 논의됐다"는 대목에 따른 것이다.
박 교수는 "이는 개인 영농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배급제와 개인 영농을 조화시키면서 개인 영농을 국가 체제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것"이라며 "국가 권위를 회복함과 동시에 시장에의 의지를 확대하는 양면적인 조치"라고 말했다.
***"배급제가 폐지된 적은 없다"**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안보팀의 이정철 박사는 배급 부분에 대한 관리 능력을 회복하면서 경제개혁을 점진적으로 추진하는 방식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이 박사는 "지난 10여년간 배급이 줄어들긴 했지만 배급제 자체가 없어졌던 적은 없고, 배급량이 과거 1일 쌀 380g에서 200g으로 줄었다가 올 7월에 250g으로 회복됐다는 얘기가 있었다"며 "이는 배급이 맡고 있던 쿼터가 안정화됐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 박사는 이어 "배급을 점진적으로 줄여가면서 시장경제적 요소를 도입한다는 큰 트렌드는 유지될 것"이라며 "그러나 급격한 변화의 충격을 막고 국가가 생존을 보장해 준다는 측면에서 배급제를 다시 정비하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다시 계획경제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배급 재원 확보는 의문"**
그러나 이같은 조치가 사실이라 해도 북한이 식량난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평가는 성급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국제사회의 추가적인 식량지원이 없으면 1990년대 중반처럼 대량 아사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세계식량계획(WFP)의 경고가 올해 초부터 계속돼 왔기 때문이다.
박순성 교수는 "배급 재원이 어디서 났는지 의문"이라며 "자체의 생산 역량이 증대해서 공급이 늘어났다는 얘기는 유보적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북한에 다녀온 <좋은벗들> 같은 구호단체들의 말에 따르면 물가가 떨어지기는 했지만 식량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다고 전했다.
이렇게 볼 때 8.15 민족대축전 행사차 내려온 김기남 노동당 비서가 "지금은 형편이 좋다"고 했던 말은 남한과 국제사회에서 유입된 원조량이 늘어남에 따라 북한 당국이 관리하는 식량 사정이 나아졌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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