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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숲속에서 실종된 권력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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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숲속에서 실종된 권력의 슬픔

김민웅의 세상읽기 <110>

인생의 역정 절반쯤 되는 지점에서 단테는 자신이 어떤 어두운 숲 속 한 가운데서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똑바로 나 있는 '진리의 길'에서 그만 벗어나 헤맨 결과였습니다. 그 숲은 너무도 쓸쓸하고 황량했으며, 빛이 좀체 보이지 않는 깊고 깊은 계곡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이제 막 꺼질 듯한 촛불처럼 절망적으로 흔들렸고, 출구는 그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사태였습니다. 파라다이스를 향한 순례의 길이 이토록 어려운 일일 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음울하고 비통하기조차 한 자리에서 오로지 자기 홀로 있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다급해진 그는 어떻게든 속히 그곳을 빠져나갈 궁리를 하게 됩니다.

가파른 언덕을 가까스로 오르기 시작하니 햇빛이 손에 잡혔고, 안도감으로 공포는 사라지면서 사방으로 뻗은 길이 비로소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건 마치, 숨을 헐떡이며 아무런 방책도 없이 물 속으로 빠지려는가 했는데 다행히도 해변에 표류하여 안전을 확인하게 된 자의 처지와도 같았습니다. 자신이 나온 숲을 다시 보니, 그곳은 그 어떤 살아 있는 자의 영혼도 탈출할 도리가 없는 곳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안심하고 있던 순간도 잠시, 거대한 맹수가 자신을 향해 덮쳐 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표범이, 그 다음에는 사자가,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늑대가 거칠게 그의 길을 막아섰습니다. 더 이상 앞으로 진전하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서는 살아날 길이 없었습니다. 겨우 무언가 이루어냈다고 여겼지만 그건 소리 없이 종적을 감추고 말았습니다.

조금 전과 현재를 비교해보면, 너무나도 슬픈 일이었습니다. 암흑이 장막을 친 숲이 도리어 안전한 곳이 될 지경이었습니다. 태양이 침묵하고 있는 그 계곡으로 그는 다시 돌아서서 가지 않으면 그의 목숨을 장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느 쪽의 야만이 그에게 더 유리한지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그 어느 쪽도 자신이 원하던 현실은 아니었지만, 맹수의 습격을 당장에 피할 수 있다면 그 편이 훨씬 나아보였습니다.

1265년 플로렌스에서 태어난 당대의 문호 단테의 <신곡(神曲)>, 그 첫 장면입니다. 맹수에 쫓겨 그 어둡기가 캄캄한 지하의 세계와 다를 바 없는 곳으로 다시 들어설 수밖에 없게 된 순례자 단테는 그 황무지의 밑바닥에서 어떤 알지 못할 존재의 그림자와 마주치게 됩니다. 그건 역사의 대하(大河)를 그의 정신세계에 품은 고대 로마의 서사시인 베르길리우스였습니다.

지옥과 연옥의 안내자가 되는 그의 뒤를 이어, <신곡>은 그가 사랑했던 여인 베아트리체가 파라다이스의 안내자가 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베르길리우스는 우주의 중심에 존재하는 절대자를 향해 인간의 영혼을 인도하는 지혜를 상징하고, 베아트리체는 단테의 사랑의 대상이자 결국 파라다이스로 들어서는 문은 사랑으로 열리게 됨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애초에 가려 했던 길과는 전혀 다르게, 미로처럼 얽혀 있는 숲 속에서 나갈 방향을 찾지 못해 계속 헤매다 지쳐 차츰 생명이 고갈되어 가든지, 아니면 도저히 싸워 이겨내기 힘든 맹수와 격돌하면서 위태로운 상황에 몰리든지 그 어느 쪽도 단테에게는 유리한 선택이 될 수 없습니다. 이건 마치 우리의 인생이 때로 겪게 되는 진퇴양난과 흡사합니다.

절반의 반환점에 서 있는 참여정부. 칭찬보다는 가혹한 비판이 더 많은 현실에 분명 고뇌가 깊을 것입니다. 눈을 뜨고 깨어보니 혼자서 빛이 차단된 숲 한 복판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일지도 모릅니다. 그곳에서 겨우 벗어나와 보니 맹수가 버티고 서서 길을 막고 있는 것을 또한 목격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로 이러한 때에, 그 발걸음을 목적지까지 안내해줄 역사의 지혜가 그득한 베르길리우스의 이름을 겸허한 마음으로 부르고, 인간에 대한 마르지 않는 사랑을 품은 베아트리체를 갈망한다면 하늘의 문을 여는 <신곡>은 완성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건 개인의 인생이나 권력의 운명, 모두에게 마찬가지의 원리가 아닐까 합니다.

혼자 다 알고 있는 듯, 국민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소리에 경청할 능력을 잃어버린 권력은 자신이 어느 숲 속 한 가운데서 스스로 실종되고 있는지 끝내 알지 못하고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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