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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되는 로렌조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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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되는 로렌조의 밤"

김민웅의 세상읽기 <108>

영화 <로렌조의 밤>은 제2차 세계대전이 마무리되어가는 시기, 이탈리아의 한 농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입니다. 전쟁이 막바지로 가면서 패퇴하는 나치스와 이태리 파시스트 부대는 성당을 빼놓고 마을 전체를 폭파시키겠다고 위협합니다. 성당의 주교신부는 어떻게든 마을 사람들을 살려내기 위해 이 경고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결국 마을 주민들은 성당으로 집결해야 살게 된다는 것인데, 늙은 목수 하나는 이 말을 믿기 어렵다고 여기고 자신의 선택을 따르는 마을 주민 일부를 끌고 몰래 이웃 마을을 향해 피신하게 됩니다. 영화는 이들의 피난 행렬이 마주치게 되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서 전쟁과 사랑, 그리고 생명과 죽음의 가려진 사연들을 드러내줍니다.

영화는 한 소녀의 시선으로 본 전쟁이, 그녀가 어른이 되어 자신의 아기에게 들려주는 회고담처럼 이어지면서 전개됩니다. 소녀가 본 전쟁은 일상의 지루함에서 벗어난 단지 특별한 사건이었을 뿐이었고, 그 과정에서 인간의 생명은 매우 어이없게 사라지고 맙니다. 그건 얼른 이해할 수 없는 사태였습니다. 친구 사이에 서로 총을 겨누고, 아직 어린 소년이 파시스트가 되어 사람 사냥에 나서고 전투 같지 않은 전투가 아무런 준비나 전술도 없이 벌어집니다.

그런 과정에서 서로 전혀 죽일 이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뒤쫓아 가서 죽이는 일들이 벌어지는 장면들은, 전쟁의 어리석음을 고스란히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함께 땀을 흘리며 추수하고 목마른 자에게 물병을 건네고 사랑하면서 서로 기뻐했을 텐데 졸지에 적이 되고, 아무런 생각도 없이 상대를 사살하는 상황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성자(聖者) 로렌조를 기리는 밤에도 전쟁은 지속되었고, 그날은 특별한 소망을 기원하는 날이라는 것도 모두 잊고 맙니다. 전쟁은 인간에게 온통 얼이 빠지게 했고, 종교적 경건함은 물론이고 일상의 소박한 기원조차 떠올릴 힘을 박탈해갔던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이외의 명제는 전부 부차적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꺼지지 않는 불꽃이 되어 도리어 인간의 실존적 고독과 갈구의 실체를 보다 명료하게 확인해줍니다. 일상의 질서가 무너진 자리에, 그 일상의 질서가 막아 온 마음의 흐름이 자신의 진정한 표정을 되찾기도 했던 것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모든 것을 잃어도 잃을 수 없는 가장 귀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절감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파시스트와의 전쟁에서 승자가 된 미국은 당시 모두가 보기를 고대하는 해방자로 각인됩니다. 2차대전은 이들 미국의 군대가 인류적 위상을 선하게 확보하는 역사의 경계선이었습니다. 이태리 농부와 그들의 아들과 딸에게 미군은 평화였고, 승리였으며 또한 초콜릿이자, 캐멀 표 담배였습니다. 그건 말하자면 어리석은 전쟁을 넘어서 있는 약속의 땅이 주는 젖과 꿀이었습니다.

오늘날, 스물네 살의 아들 케이시를 이라크 전선에서 잃은 마흔여덟의 여인 신디 쉬한은 부르짖고 있습니다. 부시의 위선과 거짓말이 자신의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고 말입니다. 자신의 아들은 아무런 현실적 근거도 없는 전쟁에 끌려들어가 죽었다고 절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운동으로 전쟁이 1분이라도 빨리 끝날 수 있다면, 그래서 한 사람의 목숨이라도 살려낼 수 있다면 자신의 운동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말입니다.

로렌조의 밤에 선한 해방자로 나섰던 미군은 지금 그 로렌조의 밤을 파괴하는 병사들이 된 지 오래입니다. 어이없이 죽어간 사람들의 수도 헤아릴 길이 없을 정도입니다. 우리의 김선일도 그 명단에 추가되어 있습니다. 지금 이라크에서 전쟁을 마주하고 있는 우리의 젊은이들이 있는데도 우리는 그 전쟁을 마치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망각하고 있습니다.

가장 소중한 가치는 역시 사랑과 생명입니다. 이걸 구해내지 못하는 한, 우리에게 양심의 평화와 진실의 깃발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센타"(오후 4-6시/www.ebs.co.kr )의 5분 칼럼을 프레시안과 동시에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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