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이 인터넷언론에 대한 강제반론권의 법제화를 추진 중이라고 한다. 인터넷언론 보도의 대상이 된 당사자는 해당 사업자에게 이메일로 소명문 게재를 요청할 수 있고 해당 사업자는 요청받은 때로부터 6시간 이내에 반드시 소명문을 게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움직임에 대한 시중의 첫 반응은 인터넷언론에 대한 한나라당의 불편한 시각이 반영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나아가 자신의 저서 <일본은 없다>의 표절 논란, 차기 대통령 학력 발언 등으로 일부 인터넷언론과 불편한 관계를 맺어 온 전여옥 의원의 개인 감정도 거론됐다.
설마 그럴 리야. 국민의 대표로서 국사를 논하는 국회의원이, 그것도 제1야당의 대변인이 개인감정 때문에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법률을 만들려 하지는 않을 것으로 믿는다. 전 의원측의 말대로 인터넷언론 보도에 의한 사회적 피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한 충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받아들이자.
하지만 그렇다 해도 전여옥 의원이 내놓은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 개정안'은 중대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 첫번째는 언론규제의 임의성이다. 유독 인터넷언론만이 신문이나 방송 등 다른 매체보다 강력한 사회적 규제를 받아야 할 이유가 있느냐는 것이다. 전 의원측이 말하는 '소명문'이란 현행법상의 '반론보도'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현행법상 반론보도는 보도대상이 된 당사자의 신청에 의해 언론중재위의 중재과정 등을 거쳐 게재하게 돼 있다. 인쇄매체, 방송매체, 인터넷매체 할 것 없이 모두 동일한 절차를 밟게 돼 있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유독 인터넷매체에 대해서만 '소명문'이란 이름의 '반론보도'를 보도 대상자의 요구만으로, 법적으로 공인된 제3자의 아무런 조정 과정 없이, 단 6시간 만에 게재토록 의무화해야 하는가. 전 의원측은 급속히 확산되는 인터넷 보도의 특성상 신속한 반론보도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과연 그것이 피해를 줄일 수 있는 효과적 방법인지는 의심스럽다. 더욱이 급속히 확산되는 인터넷 보도가 반드시 사회적 피해만을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문제제기를 한 사례도 많다는 것이다. 예컨대 극빈가정에 대한 부실도시락 사건이 대표적인 경우다.
사실 지난해까지 법외지대에 머물러 있던 인터넷언론이 올해부터 법의 테두리 안에 들어온 것은 한국인터넷신문협회를 비롯한 인터넷언론측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서였다. 많은 언론학자와 일부 국회의원들이 인터넷언론의 핵심은 '자유'에 있으므로 당분간 법외지대에 머물러 있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으나 인터넷언론 측에서는 다른 언론매체와 동일하게 언론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다하겠으며, 이를 위해 법적으로 언론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해달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언론의 의무에는 법에 규정된 대로 언론중재위원회의 중재와 조정을 따르는 것도 포함된다. 다시말해 인터넷언론 스스로 언론에 대한 법적ㆍ사회적 규제를 감수하겠다고 자청했던 것이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한 것처럼, 모든 언론매체도 법의 동일한 적용을 받아야 한다. 인터넷언론에 대한 법적ㆍ사회적 규제는 인쇄매체, 방송매체와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는 말이다. 만일 보도대상자의 요구만으로 반론보도를 의무적으로 게재해야 한다면 그 법조항은 신문, 방송, 인터넷 모든 매체에 동일하게 적용돼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된다면, 보도대상자의 요구만으로 반론보도를 의무적으로 게재해야 한다면, 그것은 편집권의 심각한 침해가 될 것이다. 보도대상자가 요구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소명문(반론보도)을 게재해야 한다면 언론은 더이상 사회적 공기(公器)가 아니라 길거리의 낙서판으로 전락해버릴 것이다.
우리가 언론행위를 하는 것은 민주시민으로서의 소신과 양심, 그리고 자신의 특정한 관점에 따라 사회적으로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다고 판단되는 의견을 제시하며 나아가 건전한 논쟁의 장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보도대상자의 요구만으로 그의 입장과 의견을 의무적으로 게재해야 한다면 해당 언론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여지없이 침해당하는 것이다. 바로 그러하기 때문에 반론보도나 정정보도의 경우 언론중재위나 법원 등 법적으로 권위가 인정된 제3자의 조정을 거치도록 돼 있는 것이다.
전 의원측은 "인쇄매체는 지면상의 제약으로, 방송매체는 전파의 독점성 등으로 인해 이런 규제가 적용되기 어렵고 인터넷매체는 (쌍방향이라는) 매체소비 방식이 달라서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바로 그 매체소비 방식에 의해 지금도 댓글이라는 형식을 통해 보도대상자의 반론이 게재되고 있다. 그것을 법적으로 강제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지난해 신문법 제정과정에서 한나라당은 종이신문의 소유지분 제한, 시장점유율 제한, 경영자료 제출 등에 대해 언론자유 침해라며 강력 반발했다. 그러나 지금 한나라당이 추진하고 있는 인터넷신문에 대한 강제반론권은 언론자유의 핵심인 편집권을 중대하게 침해한다는 점에서 소유지분 제한 등보다도 훨씬 본질적인 언론자유 침해에 해당한다. 종이신문의 언론자유와 인터넷신문의 언론자유는 다르다는 말인가.
지난 2000년 이후 인터넷언론이 급속하게 늘어나면서 미확인보도, 추측보도 등 무책임한 보도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현상이 인터넷언론만의 문제점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또한 인터넷언론이 지난 날 권력과 자본에 유착했던 기존언론의 독점, 배타성, 폐쇄성을 타파한 성과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모든 새로운 현상에는 명과 암이 있기 마련이다. 어두운 측면만을 문제삼아, 더구나 공명정대하지 못한 방법으로 이를 바로 잡으려 한다면 더 큰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우리가 진정한 법치국가, 민주사회라면 언론의 자유도, 언론에 대한 법적ㆍ사회적 규제도 모두 동일하게 차별 없이 적용돼야 한다. 그것이 언론을 대하는 권력자가 명심해야 할 기본적 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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