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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 그 갈등의 교차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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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 그 갈등의 교차점"

김민웅의 세상읽기 <102>

지금의 미국 대통령 부시의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당시 아칸서스 주의 풋내기 정치인이라고 여겼던 빌 클린턴에게 패배해 재선의 문턱을 넘지 못합니다. 미국에서도, 현직 대통령이 선거에서 졌을 때에는 새로운 대통령의 취임식장은 미묘한 분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부시는 중앙정치무대에 잘 알려지지도 않았던 클린턴에게 대통령 자리를 넘겨주어야 했던 것이 못내 아쉬웠던 모양입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사임하면서 등장했던 케네디와는 다른 분위기였던 것입니다. 아이젠하워는 젊은 대통령 케네디를 마음껏 축하해줄 수 있었고, 그로써 두 대통령 모두 미국인들에게 찬사를 받는 취임식을 거행할 수가 있었습니다.

일단 자리에서 물러나고 나면, 현직일 때와는 다른 처우와 시선을 받게 마련입니다. 8년의 대통령 직책에서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클린턴도 과거 자신의 경쟁자의 아들인 부시가 대통령이 되면서 전임 대통령이 착석하게 되는 곳으로 자리를 옮기게 됩니다. 그는 더 이상 현실 정치에서 찬란한 조명을 받는 주역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클린턴을 비롯해서 전임 대통령들 가운데는 현직에 있을 때와는 다른 차원에서 공적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현직의 권한을 누리지는 못해도, 그 이상의 권위와 위상을 확보하게 되는 기회를 얻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을 보면, 그 직위가 그 사람의 위상을 결정짓기도 하지만 그 사람 자체가 그 위상의 진정한 핵심임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이따금 전직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의 정책이나 입장에 대해서 비판적인 견해와 입장을 표명하는 경우가 생기게 됩니다. 클린턴과 카터가 부시의 이라크 전쟁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표명하면, 이는 매우 무게 있는 정치적 담론을 형성하게 됩니다. 이미 자리를 물러난 지도자가 현실정치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미국 사회도 그리 반기는 것은 아니지만, 참으로 중요한 사안에 대해 침묵하는 것을 답답하게 여기기도 합니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대통령제를 오랜 전통으로 하고 있는 미국도 전임 대통령과 후임 대통령 사이에 일정한 정치적 긴장이 발생하기도 하고, 그것이 또 의미 있는 정치적 논쟁의 동력이 되어 정치를 변화하게 하는 조건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그것이 건강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지만 대체로 이러한 상황은 현직 대통령이 무언가 좀 더 조심해서 처신하게 하는 상황을 만들어냅니다.

이렇게 되는 까닭은 분명합니다. 전임 대통령이 현실에 대해 발언할 때에는, 그가 제대로 된 지도자라면 대체로 현직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깊이 숙고하고 신중하게 결정하게 되는데, 이는 그의 발언이 미칠 파장이 결코 간단치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직 대통령은 전임자의 발언을 맞받아치고 나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대로 수용하기도 어려운, 대단히 지혜로운 입장 설정을 해야 하는 형편이 됩니다. 이 지점에서 현직의 역량이 가감없이 드러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도청 문제와 관련한 정국의 파란이 현직 대통령과 전임 대통령 간의 정치적 긴장에까지 이르는 상황을 기어코 만들고 말았습니다. 현직 대통령은 도청 문제의 정치적 의도에 대한 질문에 이는 자신에 대한 모욕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 관련 사안에 대해 전임자가 이를 어떻게 느끼게 될 것인지는 혹 깊이 사려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이 일고 있습니다. 게다가 상대인 전임 대통령은 현직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역사적 무게를 가진 존재입니다. 현직이 사용한 '모욕'이라는 단어가 자칫 우습게 되어버릴 지경입니다.

"그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내가 당할 수도 있는데…" 라는 식의 발언도 자신의 위상에 스스로 훼손을 가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적어도 대통령이라면 그보다는 "내가 혹 어떤 어려운 일을 겪는다 해도 이 일은 역사의 장래를 위해 결단해야 한다"는 수준의 발언을 우리는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현직도 언젠가는 전임자가 되는 순간이 온다는 사실입니다. 더구나 이제는 장기집권이라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무엇을 하건 언제나 긴 안목과 진지한 마음으로 역사를 먼저 염두에 두는, 그런 지도자를 바라는 우리가 너무 순진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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