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은 8일 미국과 유럽의 거듭된 안보리 제재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스파한에 있는 우라늄 전환시설의 가동을 재개했다. 지난 6일 강경파 정치인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가 대통령에 취임한 지 불과 이틀만에 이란의 핵활동이 재개됨으로써 핵개발을 둘러싼 이란과 서방측의 갈등은 한층 고조될 전망이다.
특히 이란은 자국의 핵활동을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이번 갈등은 핵의 평화적 이용 문제로 타결이 연기된 북핵 6자회담의 추이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이날 핵활동과 관련한 이란측 협상 대표를 온건파에서 강경파 인물로 교체했다.
모하마드 사이디 이란 원자력청 부청장은 이날 이스파한 핵시설에서 기자들에게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독 하에 우라늄 전환시설 가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날 시작된 공정은 우라늄 원석을 4불화우라늄(UF-4) 가스로 전환하는 초기 단계의 우라늄 재처리 작업이다.
핵무기에 쓰일 수 있는 농축우라늄을 얻기 위해서는 4불화우라늄 가스를 6불화우라늄(UF-6) 가스로 전환한 다음 이 가스를 원심분리기에 넣어 농축시켜야 한다. 농축도가 낮으면 발전용 핵연료로, 높으면 핵무기에 쓰이게 된다. 이란은 당분간 우라늄농축 작업을 재개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이란의 핵활동이 핵무기 개발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란이 우라늄 전환시설을 재가동한다면 유엔 안보리에 회부할 것이라고 경고해 왔다. 유럽연합은 지난 주 이란이 핵연료 작업을 영구 중단할 경우 정치,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고 제의했으나 이란은 6일 이 제안을 거부하고 지난해 11월 이후 중단해 온 우라늄전환을 이날 재개했다.
이란은 핵시설 가동 중단에 앞서 37t의 우라늄 원석을 4불화우라늄(UF-4) 가스로 전환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양의 UF-4 가스는 초기단계 핵무기를 5기나 제조할 수 있는 무기급 우라늄 100㎏을 생산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국제원자력기구는 이날 이란의 핵활동 재개 사실을 확인하면서 9일 긴급 이사회를 열어 이란 핵 문제의 유엔 안보리 회부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국과 유럽 정부는 이란의 핵활동 재개에 대해 중대한 우려를 표명했으며 특히 미 국무부는 오는 9월 유엔총회 참석 예정인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에 대한 비자를 거부할 수도 있다고 시사했다.
그러나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8일 이번 IAEA 이사회에서 이란의 안보리 회부가 결정될지는 미지수라고 분석했다. 이란의 핵무기 개발 증거가 불충분한 상황에서는 안보리 회부를 위한 과반수 득표가 불확실하며, 설사 안보리 회부가 결정된다 해도 이란은 지난 2003년 2월 북한이 그랬던 것처럼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위협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미국은 지난 7월 NPT 비회원국인 인도의 핵무기 보유를 묵인하는 한편 평화적 핵기술 이전을 약속한 바 있어 '미국 스스로 핵확산을 부추기며 핵의 평화적 이용에 대해 이중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지난 7일 3주간 휴회가 결정된 제4차 6자회담의 경우에도 핵의 평화적 이용 권리를 주장하는 북한과 모든 핵활동의 포기를 요구하는 미국의 상반된 입장이 타결 실패의 주요 원인이었다는 점에서 이란 핵활동의 추이는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편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은 8일 하산 로하니 국가안보최고회의(SNSC) 사무총장 후임에 알리 라리자니 SNSC 위원을 임명했다. SNSC 사무총장은 대외 핵협상을 책임지는 자리이다.
지난 2년간 EU와의 핵 협상을 주도했던 로하니는 중도온건 노선을 추구하는 실용주의자로 분류되는 반면 라리자니는 로하니의 협상 태도를 비판해 왔다. 특히 지난해 11월 이란 협상단이 EU 측과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핵활동을 잠정 동결"하는 내용의 `파리 합의'를 도출한 것에 대해 "사탕 하나에 귀중한 진주를 내준 꼴"이라며 강력 성토했었다.
지난 6월 대선에서 아흐마디네자드 현 대통령과 격돌하기도 했던 그는 이란 최고지도자이자 보수 강경세력의 구심점인 아야툴라 알리 하메네이의 최측근으로 지난 94년부터 10년간 이란 국영 라디오와 TV 방송사 사장을 역임한 뒤 곧바로 국가안보최고회의 위원으로 영전했다.
중동지역 언론들은 라리자니의 핵협상 대표 임명은 이란 정부가 향후 핵문제를 다뤄나가는 과정에서 강공 드라이브를 계속 걸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이 핵협상을 직접 챙기겠다는 신호로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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