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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다 벗은 것을 알고 있는데..."

김민웅의 세상읽기 <99>

르느와르의 유화(油畵) 속에 담긴 풍성한 몸매의 벗은 여인은 아름다움을 칭송받습니다. 거기에서 우리는 예술의 투명한 시선(視線)과 육신(肉身)의 순수를 감지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같은 여인이 플레이보이지에 자신의 육체를 같은 방식으로 드러낸다면, 그것은 이미 예술이 아니라 성매매의 일종으로 간주됩니다. 육감적 매력을 앞세운 성적 도발과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 있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일 르느와르의 그림에서 성적 유혹을 느끼는 이가 있다면 그것은 르느와르의 책임일까요, 그 그림을 보는 이의 문제일까요, 또는 그 그림 속의 여인의 아름다움이 지나친 탓일까요? 이도 저도 아니라면, 본래 예술과 성적 매력은 서로 대치되는 것이 아닌데도 우리가 혹 그걸 서로 인연이 없는 것이라고 우기고 있는 것일까요?

명성이 높은 사진작가 앞에서 작가의 요구대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누드의 여인은 예술가와 합류한 존재가 됩니다. 하지만, 그 포즈의 목적이 다량으로 그 사진을 팔기 위한 것에 있다면, 그리고 그로써 대중의 관음증을 채우는 것이라면 그것을 예술행위라고 부르는 이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술의 장르에 속하는 누드 사진을 보면서 성적 상상력에 취해 탐닉하는 이가 있다면, 그건 누구의 책임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인지 애매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영화의 등급 판정에서 노출의 수위는 언제나 문제가 됩니다. 물론 그것은 그 시대마다 문화에 대한 사회적 이해와 합의가 밑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특정 부분만 놓고 보면 포르노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의 경계선이 점점 구별할 수 없어져 가고 있는 것은 우리 시대의 성에 대한 접근이 얼마나 달라져가고 있는가를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광고에서 '성'을 일종의 고리로 삼아 눈길을 끄는 것은 이미 고전적인 방식에 속합니다. 가령, 자동차의 성능과 미녀가 과연 어떤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이 둘은 자동차 광고나 자동차 쇼 현장에서 마치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세상입니다. 차보다 여인의 몸매와 미소에 먼저 눈이 가고, 그것이 곧 자동차의 이미지로 연결되어가도록 하는 것이 그 광고 전략 속에 숨어 있는 의도일 것입니다.

성적 노출에 따른 매력을 앞세우는 것은 여성의 경우에만 한하지 않습니다. 요즈음은 젊은 남성의 근육질 몸매를 드러내는 것도 숨겨져 있던 여성들의 성적 욕구를 자극하는 방식이 되고 있습니다. 얼굴도 잘 생기고 몸도 잘 다듬어져 있는 젊은 남성의 웃통을 벗어제낀 반라(半裸)는, 우람한 육체미를 자랑하는 전문적인 근육질의 보디빌딩 대회 출전 선수들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모양입니다.

우리는 알몸 노출의 현실에 대한 사회적 시선의 다양한 변화의 와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표현의 자유와 규제라는 낡고 지루한 논쟁의 대상으로 삼기도 하고, 성 담론의 주제로 격론을 벌이기도 합니다. 이는 사실 총괄해서 보자면 '육체가 행사하는 일종의 문화 권력'과 관련된 논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별로 아름답지 못하게 드러나고 있는 육체가 있습니다. '권력의 알몸'입니다. 그건 르느와르가 순간의 느낌을 포착하여 인상파적으로 그려도, 마릴린 몬로의 모습을 스크린 인쇄에 옮겨 대중적 폭발력을 부여한 앤디 워홀이 표현했다 해도 그건 여전히 추할 뿐입니다.

어떤 방송사의 성기노출 파행이 문제가 되고 있는 현실에서, '권력이 재물과 음란하게 정치적 교배를 한 장면'이 이미 그 노출 수위를 스스로 넘어섰는 데도 불구하고 정작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알몸 노출의 소문을 낸 자들에게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여름은 역시 좀 벗어야 제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안 그러면 땀띠로 고생하니까 말입니다. 게다가 이미 벗은 것을 다 알고 있는데 아닌 척 하는 것은 더욱 우습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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