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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프 안의 진실을 묻고 있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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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프 안의 진실을 묻고 있는 사회"

김민웅의 세상읽기 <97>

바위 고개가 아니라 더위 고개 언덕을 넘는 일이 간단치 않은 여름입니다만, 그래도 비가 때를 놓치지 않고 내려주어 땅도 그나마 한숨을 돌리는 것 같고 대기도 맑아졌습니다. 오후의 나른한 시간을 깨우는 여름 매미 소리도 우거진 숲에 어울리는 이 계절의 특별한 매력으로 추가되고 있습니다.

우리네 사는 세상이 이렇게 시간의 변화 속에서 즐거움을 발견하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불필요한 땀은 흘리지 않고, 쓸모없는 분쟁으로 숨이 차지 않도록 해주면 좋으련만 그렇게 되기는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결국 2005년도 올해 말, 돌아보면 어김없이 격동의 한해로 기록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데 그 격동이 의미 있는 결실을 이루어내는 노동의 과정이라면 모르겠거니와, 아쉽게도 하루하루의 지나가는 모양새가 거칠고 난폭하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옵니다. 그렇게 되는 까닭은 이 변화의 내용이 우리 사회를 평안하게 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이 여름의 더위는 우리들에게 더욱 힘겨운 일상의 부담으로 다가오는 모양입니다.

희망이 자라고 기대가 채워지며 전망이 보다 뚜렷하게 서는, 그런 격동보다는 상처와 낙담, 그리고 환멸과 체념이 더 깊어져간다면 그것은 분명 우울함입니다. 이 우울함을 씻어줄 소식도 잘 들리지 않고,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분노와 욕설이 자꾸 터져 나오고 그로 인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서로 간의 충돌이 이어진다면 세상을 살아간다는 일이 점점 더 무서워지고 말 것입니다.

"테이프 안에 있는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하고 묻고 있는 사회에,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테이프를 만들고 유포한 자들의 죄"라고 대답하는 권력 앞에서 우리는 진실의 정체를 발견할 수 있는 실마리가 실종되어 가는 것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어느새 내용적 본질에 대한 논쟁과 규명의 의지는 사라져가고, 테이프 단속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수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엉뚱한 대상을 골라 단속을 하고 있다, 공개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차단하고 있다, 규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은폐와 혼란을 주고 있다, 본질이 아니라 곁길로 들어서고 있다, 이런 식의 세간의 평가가 자꾸 확산되고 있는 것은 '테이프 정국'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본 우리 사회의 진상을 드러내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 결국 정보와 권력과 재력을 쥐고 있는 자에게는 언제나 유리하게 돌아가는 세상이로구나 하고 결론을 내리게 되면 그걸 갖지 못하고 있는 대다수의 무수한 사람들은 그런 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것을 탄식하고 저주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건 시간이 흐르면 누군가 특정한 이를 향해 집중되어 격랑을 일으킬 수 있는 독한 힘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정보를 독점하고 권력을 쥐고 재력의 힘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아무리 큰 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철벽같은 보호망이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이들은 작은 죄도 그에 대해 큰 징벌을 감당해야 한다면 그걸 공평하고 정의롭다고 믿을 이는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몸집이 큰 사람들은 거의 모두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갈 수 있는 틈새가, 그보다는 훨씬 몸집이 작고 가냘픈 이들에게는 도저히 출구가 보이지 않는 곳이 되어가고 있다면 그건 누구도 풀기 어려운 퍼즐이라고 치부해버리면 되는 것일까요? 무슨 수학 공식이나 물리학의 원리로 이를 설명해낼 수 있을까요?

휴가철이라고 합니다. 쉴 수 있는 자유와 평화가 주어진다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도시도 덕분에 체중을 줄이는 시간을 갖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휴가를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게 있습니다. 생계로 인해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이들이 이 감당하기 쉽지 않은 더위와, 매일처럼 쏟아지는 갑갑한 소식의 홍수 앞에서 누군가를 향해 화를 내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일상을 지내야 한다는 것은 고문에 가까운 질곡입니다.

여름은 덥기도 해야 하지만, 또한 시원해야 제격입니다. 그래서 여름이 여름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정치와 그런 사회를 한낮의 오수로 꿈꾸는 것 외에는 할 수 없는 처지가 되도록 사람들이 내버려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 8월이 이제 시작되었군요. 그래도 또 한번 기대를 가져볼까 합니다. 그러다가 가을은 오고야 말 테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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