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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주미대사 어디 없나요?

김민웅의 세상읽기 <94>

19세기 중반 즈음 프랑스의 정치학도 토크빌(Tocqueville)이 미국의 민주정치에 대한 긴 논설을 썼다면, 우리의 유길준은 19세기 말 <서유견문(西遊見聞)>을 남겼습니다. 격렬한 혁명의 시기를 통과하고 있던 유럽의 토크빌이 미국의 새로운 민주정치의 현실에서 귀족질서와는 다른 평등한 사회를 이루어내는 사회적 조건을 발견하려고 노력했다면, 유길준은 낙후한 조선의 운명을 개척할 방도를 미국을 비롯한 서양문명에서 모색하려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26세였던 1881년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을 방문했고, 그 뒤 1883년 이른바 '보빙사(報聘使)'라고 해서 답방 형식의 사절단으로 미국에 갔다가 그곳에서 최초의 도미(渡美) 유학생이 됩니다. 조선이 미국과 서구의 문물에 직접 눈을 뜨게 되는 통로가 이로써 만들어진 셈이었습니다. 물론 이미 실학파의 노력으로 서양문명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가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풍문(風聞)으로 전해들은 것에 대한 갑론을박(甲論乙駁)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림자를 보고 실체를 더듬는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서유견문>이 당대의 조선 정치가 직면했던 여러 우여곡절로 인해 갑오경장이 있었던 1894년, 일본의 후쿠자와 유키찌의 도움으로 그의 출판사 교문사에서 출간되었던 것은 이 책의 한계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 까닭은, 후쿠자와 유키찌의 입장 때문입니다. 그가 비록 일본 근대화의 중요한 사상적 지도자였고 그래서 조선조의 개혁적 청년세대에게는 당시 사표(師表)처럼 여겨지는 위치에 있었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일본의 팽창정책을 지지했고 따라서 조선의 식민지화에 일조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1890년대는 이미 미국과 서구가 아시아를 제국주의적 침략의 대상으로 삼아 유린하고 있을 때이며, 이들 서구 제국을 본 따 자신도 제국의 일원이 되고자 치열하게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던 일본에게 조선은 마구잡이로 당할 판국이었습니다. 바로 이 같은 전체 판도를 읽어내면서 자신을 제대로 지킬 수 있는 길을 찾아나서야 했던 조선의 지식인들과 지도자들이, 일본이나 미국 또는 서양을 단지 선망의 대상으로만 파악하고 있었던 것은 자기방어의 능력을 스스로 상실해버리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특히 미국을 선망의 대상으로 여기는 생각은 제2차 세계대전 종결 이후 더욱 깊어지게 됩니다. 최대의 승전 국가이자 엄청나게 풍요한 부를 가진 나라로 다가온 미국의 이미지는 식민지 시절과 가난, 그리고 전근대적 낡은 틀에 묶여 있던 이 나라를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미국과의 인연을 갖는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그래서 행운과 은총의 의미를 갖기도 했습니다.

일제 식민강점기를 거쳐 남한의 이승만 정권 성립 이후 초대 주미대사로 나갔던 인물은 장면 박사였습니다. 훗날 5.16 군사쿠데타로 인해 비운의 처지에 처하고 맙니다만, 이 초대 주미 대사의 경력을 토대로 그는 그 뒤 4.19 혁명의 흐름 속에서 국가 최고 권력자로서 내각제 하의 총리가 되었을 때도 미국의 전폭적인 승인과 환대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위치에 서게 됩니다. 주미대사가 대미외교의 모든 것을 관장하고 지휘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그가 누구인가 하는 것은 우리의 민족적, 국가적 이익을 어떻게 파악하고 실현시키는가를 규정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장면 대사에서부터 오늘날, 얼마 전 사임의사를 표명하고 이것이 받아들여져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홍석현 주미대사의 경우에 오기까지 우리는 흔히들 말하는 미국통 내지는 친미인맥을 거론하면서 주미대사의 인선을 결정짓고는 했습니다. 결국 이런 식이 되어 오다 보니 주미대사라는 자리는 미국의 마음에 들기 위한 일을 하는 자리인지 아니면 우리의 외교적 이해관계를 실현시키는 자세를 당당히 갖춘 인물을 앉히는 자리인지 명확치 않아지고 말았습니다.

홍석현 주미대사 인선과정에서 적지 않은 말이 있었습니다만, 결론적으로는 당사자에게 있어서나 정부 차원에서나 또는 국가적 견지에서 볼 때에도 잘한 선택이라고 하기는 어려워진 것 같습니다. 물론 결과론적인 논평이 될 수도 있지만, 그의 주미대사직 선정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우리 사회의 논의들을 정부가 제대로 경청하기만 했어도 아마 그 선택의 내용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합니다.

지금 주미대사로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유길준도 아니며 장면도 아니고 또 기타 우리가 이미 보아 왔던, 미국에 굴신해 온 무수한 인물들도 아닙니다. 부드럽게 웃으면서도 따질 것은 따지고, 격하게 얼굴을 붉히다가도 풀어야 할 것은 풀 줄 아는, 민족관과 국가관이 분명하고 세계정세를 훤히 내다볼 줄 아는 그런 사람 어디 없을까요?

혹, 정부로부터 주미대사로 일해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되면 '이라크 파병 철회'의 업무를 중대조건으로 내걸고 나설 사람을 찾는 것은 과연 절대적으로 무망한 일에 속하는 것일까요? 그런 인물을 또 삼고초려(三顧草廬)로 기어이 모시는 정부를 보는 것도 이 시대를 사는 즐거움의 하나가 될 듯도 한데 말입니다. 아아, 상상이 너무 지나치면 망상이 된다고 하는데 그래도 상상에는 세금이나 벌금은 없을 테니 누가 뭐래도 개의치 않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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