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자본 공화국의 욕망'을 넘어서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자본 공화국의 욕망'을 넘어서

김민웅의 세상읽기 <91>

"'제네랄 모터스(GM)'의 이익은 곧 미국의 이익 그 자체다"라는 주장이 한때 미국 사회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 때가 있었습니다. 미국의 풍요를 주도하는 힘이 어디에 있는지를 강조하는 이야기이면서, 또한 이는 미국의 대기업이 곧 미국의 정책을 결정짓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논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거대한 독점자본이 국가를 장악하고 있는 셈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미국 자본주의의 정치경제적 구조는 폴 스위지(Paul Sweezy)나 폴 바란(Paul Baran) 등이 이 문제를 제기했던 때로부터 근 40년이 지난 지금, 더 심해졌으면 심해졌지 개선되었다고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가령 핼리버튼 사는 부시정권의 중동정책에 깊이 관여하고 있고, 월 스트리트의 금융자본은 미국의 대외정책에 중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새삼스러운 사실이 아닙니다. 돈이 곧 정치의 발언권이 되는 이른바 "금권정치"는 그래서 "자본주의 정치의 속성"일 수 있습니다.

1860년대 미국이 남북전쟁이라는 내전 상태를 끝낸 뒤, 동과 서를 잇는 철도 건설의 붐에 들어섰을 때 떼돈을 번 신흥 부자들이 출현하게 됩니다. 이들을 미국 경제사는 "강도 귀족(Robber Barons)"라고 부릅니다. 그 부의 축적 과정이 매우 약탈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매튜 조셉슨(Matthew Josephson)은 이 역사를 기록하면서, 이들이 시장에서 무한대의 자유를 요구하면서 미국 정치의 주도세력이 되어갔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J.P.모건 같은 경우는 이미 내전 당시 북부의 군대에 돈을 빌려줄 만큼 거부(巨富)였고, 전쟁 후 재건의 시기에 철강 가격이 오르면서 카네기는 명실상부한 "철강왕"으로서 군림하게 됩니다. 이밖에도 밴더빌트, 록펠러 등을 비롯해서, 미국의 독점자본이 성장하는 시기를 거치는 가운데 미국은 이들 큰손들이 좌지우지 하는 나라로 변해갔습니다.

1890년대에 이르면, 당시 제국으로서 위세를 떨치고 있던 영국이 쇠퇴의 조짐을 보이고 독일과 함께 미국은 신흥강국의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영토적 통합과 내부적 역량을 정비한 후, 이제 미국은 밖으로 자신의 힘을 뻗치는 <제국>으로서의 길에 매진하게 됩니다. 1898년 쿠바와 필리핀을 식민지화는 과정도 바로 이러한 역사적 단계에서 가능했던 현실이었습니다. "강도 귀족"들은 이 "제국의 건설자(empire-builders)"였습니다.

아시아와 중남미에 미국의 거대한 독점자본이 정치경제적 위력을 확대해나가면서 세계는 자본의 폭력적인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들어갑니다. 이러한 격동의 시대에 배후에서 작용한 것은 역시 미국의 남북전쟁 이후 주도권을 쥐게 된 독점자본의 힘이었습니다. 영국을 추격하고 독일과 경쟁하면서 미국이 패권국가로서 발돋움 하게 되는 데에는, 이렇게 대기업으로 대변되는 거대한 독점자본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그러니 자연 미국의 국가이익은 곧 이들 대기업 또는 독점자본의 이익과 일치된다고 주장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미국의 기업 브랜드는 미국의 국가브랜드와 통했고, 미국 제품은 미국에 대한 국가적 신뢰와 직결되었습니다. 미국의 기업이 잘 되는 것이 미국의 풍요를 지속시키는 일이라는 논리와 설득은 그래서 반론을 펴기 어려운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바야흐로 미국은 링컨이 말했던"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인민의 민주 공화정의 나라"가 아니라, "독점자본의 공화국"으로 그 위상을 세워나갔습니다. 경제적 민주주의의 근본은 기대하기 어려운 사회로 전락해갔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들 독점자본이 안팎으로 그 탐욕적인 실상이 드러나는 가운데 심각한 비판과 모순에 직면하게 됩니다. 대기업들, 또는 부자들이 생각보다는 선하고 자비롭다는 식의 기업신화를 문학과 영화를 통해 조작해내고 그래서 이들의 부당한 정치경제적 행위를 정당화시키거나 옹호, 내지는 은폐하는 일들이 벌어지게 됩니다. 미국 자본주의 발전사에서 이들에 대한 비판적인 거론과 논의는 삭제되어 갑니다. 그것은 반(反)시장적 논리이자 미국의 국익을 해치는 세력의 음모라고 정죄되었습니다.

하지만 존경받지 못하는 부자, 작은 자들을 짓밟고 독식하는 대기업의 문제는 미국사회에서 독점자본의 윤리적 지위를 약화시키고 맙니다. 그러자 이들은 부랴부랴 자선단체를 만들고 비영리단체에 기부하며 기타 사회적 존경을 받을 만한 작업들을 전개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이러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이러한 사업을 면세의 도피처로 삼는 이중적인 처신과 전략도 쓰게 됩니다.

그러는 중에도 이들 대기업, 또는 독점자본 내지는 부자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한 여러 가지 언론 작업과 교육, 문화적 여론 조작에 나서게 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들은 거의 모두 허상의 조작에 불과할 뿐, 이들의 기득권을 특권화 시키는 구조나 현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미국 사회 내부의 양극화를 위시하여 미국이 주도하는 제3세계의 정권 전복, 독재정권의 옹립, 전쟁의 뒤에는 거의 언제나 이들 대기업의 이해와 독점자본의 제국주의적 야욕이 버티고 있는 것이 계속해서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자본 공화국"의 현실과 미래는 누군가를 희생시키면서 자라나는 괴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입증되어 갔습니다. 그것은 이미 그 내부에 "야만의 비수"를 은닉하고 있는 존재입니다. 시장의 자유를 앞세워, 자신들의 특권을 성역으로 만들고 민주주의도 자신들의 전유물로 삼아 "자본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민주주의이자 다름 아닌 국익이라는 이데올로기로 무장합니다.

우리사회에서도 오늘날 <자본 공화국>의 폐해가 폭로되고 있는 과정에 있습니다. 권력과 동맹관계를 맺으면서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그 위세의 정체가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자본의 권력이 얼마나 부패하고 타락한 방식으로 유지되어 왔는가가 밝혀지고 있는 셈입니다. "강도 귀족"의 역사가 다만 미국의 경우로 국한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것을 일깨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어느 특정 기업의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거대한 독점자본이 이 사회의 정치경제적 또는 문화적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한, 그것은 이 사회를 끊임없이 비인간화 시키는 구조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정치사회적 윤리와 양심이 돈의 힘 앞에서 굴복하는 것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가르칠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단호하게 거부할 줄 아는 사회, 그런 사회에 온당한 미래가 주어지지 않을까 합니다. <자본 공화국>의 끝없는 욕망을 선택하기보다는, 정의로운 사회의 소박한 살림살이를 보다 소중히 여기는 용기를 우리 자신에게 기대하기에는 우리 자신이 혹 너무 속물이 되어버린 것은 분명 아니겠지요.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