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년간 주미 사우디아라비아 대사로서 미국 정계와 외교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던 반다르 빈 술탄 왕자(56)가 '개인적인 이유로' 사임한다고 주워싱턴 사우디 대사관이 20일(현지시간) 발표했다.
후임에는 현 주영 대사인 투르키 알파이잘 왕자가 임명됐다. 알파이잘 왕자는 현 사우디 외무장관의 동생이며 2001년 9.11사태 사태 이전 사우디 정보기관 책임자로서 지난 90년대 아프간에 은신해 있던 오사마 빈 라덴의 신병 인도를 위해 당시 탈레반 정권과 여러 차례 협상했던 인물이다.
물러나는 반다르 왕자는 최근 수개월간 대사관을 비우고 있어 지난 6월에도 BBC, 로이터 등이 사임설을 보도한 바 있다. 반다르 대사가 마지막으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4월 사우디의 실질적 통치자 압둘라 왕세자가 부시 대통령의 텍사스 크로포드 개인목장을 방문했을 때였다.
반다르 왕자는 부시 가문과의 친밀함으로 미국 정계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해 왔으며 특히 9.11사태 직후 모든 항공기의 이ㆍ착륙이 금지된 상황에서 백수십명의 사우디인을 전용기에 태워 미국을 빠져나가게 함으로써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그러나 서방 언론이 반다르 주미 대사의 거취에 관심을 쏟는 이유는 사우디 내 권력교체의 가능성 때문이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는 21일자 인터넷판 기사에서 전임 부시 행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브렌트 스코크래프트의 말을 빌어 반다르 왕자는 현 국왕이며 그의 삼촌인 파드 국왕과의 친밀함에 힘입어 사우디 내에서 상당한 발언권을 가졌지만 파드 국왕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1995년 이후로는 영향력이 약화됐다고 전했다. 파드 국왕 사후 왕위계승이 확실시되는 압둘라 왕세자와는 그다지 친밀한 사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서방 언론들은 반다르 대사의 교체를 사우디 권력교체와 연결지어 관측하고 있다. 즉 식물인간 상태인 파드 국왕의 사망이 임박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아프간, 이라크전쟁을 계기로 중동지역에서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의 영향력이 점점 커져가고, 미국과 사우디 관계가 악화돼 가고 있는 가운데 사우디 정권교체가 아랍지역에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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