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을 방문중인 미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가 제4차 6자회담을 앞두고 있는 부시 행정부에게 따끔한 조언을 했다. 지난 1968년 1월 북한에 나포됐던 미 첩보선 푸에블로호의 사건을 교훈 삼아 북핵 문제를 평화적, 외교적으로 풀라는 것이다.
푸에블로호는 1.21 청와대 습격사건 이틀 후인 1월 23일 동해상에서 대북 정보수집을 하다 북한군에 나포됐다. 나포 당시 미군 수병 1명이 사망했으며 부커 함장 이하 82명은 11개월 이상 북한에 억류돼 있다 그해 크리스마스 직후에 미국으로 송환됐다. 1807년 이후 평화 시에 미국의 전함이 외국군에 나포된 것은 푸에블로호가 처음이었다.
그 뒤 푸에블로호 선체는 원산항에 전시돼 있다가 1999년 한반도 남쪽의 공해를 통해 9일을 항해한 끝에 평양으로 옮겨져 현재 대동강변에 북한의 대미 항전의 상징으로 전시돼 있다. 당시 북한은 푸에블로호를 화물선으로 위장해 북한 국기를 달고 항해했는데 미국 등 서방 정보기관은 푸에블로호의 이동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푸에블로호가 원산항을 출항할 당시 일본측 배들이 선체 확인을 위해 접근했으나 푸에블로호라는 사실을 모른 채 돌아갔을 뿐이라는 것이다.
크리스토프는 '푸에블로호를 기억하라(Remember the Pueblo)'라는 제목의 19일자 칼럼에서 "위성사진 등을 통해 북한 곳곳을 샅샅이 감시하고 있는 서방측 전문가들이 푸에블로호의 이동 사실을 알아내지 못한 것은 안 된 일"이라며 북핵문제의 외교적 해결이 실패할 경우, 북한 핵물질의 해외반출을 무력으로 저지하겠다는 부시 행정부의 이른바 '확산방지구상(PSI)'은 '헛된 꿈(wishiful thinking)'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길이 176피트(약 53미터)인 푸에블로호의 이동사실조차 알아내지 못한 실력으로 자몽(grapefruit) 크기만한 플루토늄의 해외 유출을 어떻게 막겠느냐는 것이다.
크리스토프는 이어 푸에블로호 사건의 해결과정은 이번 북핵문제의 해결과정에도 시사점을 던져준다고 말했다. 푸에블로호 나포 당시 미국은 강경론 일색이었고(핵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를 원산 앞바다에 출동시킨 데 이어 항공모함 2척을 추가 배치하고, 일본 오키나와에 있던 공군전투기 361대를 한반도 주변으로 전진배치), 하원 군사위원장은 북한에 대한 원폭 투하를 주장했지만 결국은 전면적인 외교 노력 끝에 억류 미군을 송환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크리스토프는 결론적으로 "이제 푸에블로호의 교훈을 또 다시 배워야 할 때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과의 진지한 양자협상을 거부함으로써 북한을 더욱 위험한 나라로 만들었다. 협상(engagement)은 힘들고 지리하며, 때론 불만족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 길만이 우리에게 남겨진 유일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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