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 노부히로 감독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いま, 會いにゆきます)>라는 제목의 일본영화. 이야기의 겉모양은, 사별한 아내가 “비가 내리는 계절”, 장마가 일본열도를 뒤덮은 때 어느 숲 속에서 홀연 다시 살아 돌아와 6주간의 장마전선이 거두어지는 시간까지를 시한부로 새로운 행복을 서로 나누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쉬움 없는 사랑, 그리고 그 어떤 것으로도 가로막을 수 없는 사랑의 선택을 이 영화는 놀라운 환상과 예기치 못할 반전(反轉)의 방식으로 충격과 감동을 줍니다.
소년 시절부터 사랑해온 소녀를 결국 아내로 맞아들이는 남자. 그리고 이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몸이 아파 결국 가족들에게서 영영 떠나버리고 말게 되는 여인. 이 세 가족의 서로에 대한 깊은 마음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끊을 수 없는 인연의 운명적 설정. 이러한 것들이 작품의 내면에 설치된 여러 가지 사연들을 비밀의 열쇠로 하여 슬프고도 아름답게 전개됩니다.
아들은 아들대로,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그리고 엄마는 엄마대로 서로에 대한 기억과 사랑을 간직하면서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데, 그것이 어느 날 마치 퍼즐처럼 맞추어지면서 하나의 완성된 그림이 됩니다. 그리고 그 그림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마주하며 결국 모든 것을 걸고 선택하는 사랑 그 자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품의 내용을 조금이라도 설명해버리면 영화의 “상상을 초월하는 매력”을 상실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거의 한마디도 언급할 수가 없을 지경인데, 지금 이 순간 중요하게 강조하고 싶은 것은 자신에게 닥쳐올 미래가 어떤 것인지 훤하게 알고 있다 해도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선택은 무엇인가라는 문제입니다.
스무 살의 여인이 스물아홉의 내일을 이미 보아 버리고 나서 자신에게 다가올 수 있는 비극이 예감되어도 이 모든 것을 감당하고도 기뻐할 수 있는 현실에 대한 선명한 응시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도록 만듭니다. 일본에서 장마전선이 펼쳐지는 때는 우리와 다를 바 없이 그리 반갑지 않은 계절이고, 그 계절 속에는 바람과 장대비와 먹구름이 존재합니다.
하여 장마의 시기는 우울하고 막막한 슬픔과 연결되는 시간처럼 여겨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비가 내리는 계절에 온다는 엄마의 약속이 지켜지는 장면에서 그 지겨운 장마전선이 도리어 기다림과 사랑의 기간으로 역전되는 비밀을 드러내어 줍니다. 그리고 도리어 비는 계속 와야 이 모든 아름다움이 지켜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을 먹게 만듭니다.
비가 그치면 결국 모든 사랑의 장면들이 정지되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돌아온 아내를 맞이한 남편, 돌아온 엄마를 반긴 아들은 비가 그치는 것을 시한부의 신호로 받아들이고는 하늘이 개일 것을 반길 수가 없게 됩니다. 장마 뒤에 떠오르는 태양은 이제 거꾸로 그들에게 이 소중한 행복이 종지부를 찍는 시간의 시작처럼 각인되어 갔던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 장마전선 뒤에 찾아오는 햇볕 속에서도 사랑은 여전히 새롭게 빛나게 되는 것을 해바라기 밭의 장관을 통해 보여줍니다. 그건 마치 오래전 소피아 로렌과 마르첼로 마스트로야니가 주연했던 <해바라기>라는 제목의 영화에서 보았던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모든 희망이 소멸하고 모든 꿈이 비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고 그 마음이 좌초해버리고 만 순간, 태양을 향해 온 육신을 던지며 피어난 존재가 있음이 드러났을 때 우리는 새로운 감격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름 철 작열하는 태양과 함께 쏟아지는 비가 <장마의 계절>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때로 짜증이 나고, 때로 우울해지며 때로 후끈한 열기와 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우리의 발걸음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말 때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이 긴 까닭은 무언가 기다리는 것이 있어서일 수 있습니다. 그건 안에서 익고 익은 마음만이 발견하게 되는 삶의 비밀이기도 합니다.
비가 그치면 개인 날이 열리고 그 열린 하늘을 통해 바라보게 되는 세상은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과 기쁨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방황과 주저함이 그치고, 이제 자신이 선택한 미래와 “지금 만나러 가는” 그 모습이 아름답게 빛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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