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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 해법 - 미국을 설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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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과거사 해법 - 미국을 설득하라

미래전략연구원의 '지구촌, 분석과 전망' <21> 정상회담 이후의 한일관계 (6ㆍ끝)

***1. 한일 정상회담: 너무나 낮은 수준의 합의**

대단히 딱딱한 격식의 한일 정상회담이 6월 20일 청와대에서 열렸고, 회담의 성과는 예상했던 대로 매우 미미하였다. 특히 관심의 주요 대상이었던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 교과서 왜곡 시정문제 등, 과거사 관련 이슈에서는 양국 정상이 합의점을 찾는 데 실패하였다. 교과서 왜곡 시정과 관련해서는 그간 특별히 약발을 보이지 못했던 공동역사연구위원회 2기의 발족과 그 산하에 교과서연구위원회를 신설하는 수준에서 회담이 막을 내렸다. 그리고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와 관련해서는 고이즈미 총리가 “앞으로는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된다는 다짐을 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을 하였고, 또 야스쿠니 신사를 대체할 제3의 참배시설 건립에 대해서도 “일본 내 여론 등 제반사정을 고려하여 검토하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한편 노무현 대통령은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관련하여 “총리께서 어떻게 설명하더라도 나와 우리 국민에게는 과거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이해된다”라고 논박하였으며 일본의 지도급 인사들의 과거사 관련 망언도 유의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정상회담이 끝난 지 이틀 후인 6월 22일 고이즈미 총리는 국회에서 내년도 예산안에 야스쿠니 신사를 대체할 추도시설 조사비용을 배정해야 한다는 연립여당인 공명당의 주장에 제동을 걸었고, 자민당 소장파 의원 50여명은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계속 참배를 주장하는 의원모임 (4선인 마쓰시다 다다히로 의원이 회장 내정, 고문에는 차기 총리로 유력한 아베 신조 자민당 간사장 대리 내정)을 결성키로 하였다. 다시 정상회담이 끝난 지 5일 후인 6월 25일에는 야스쿠니 신사 측에서 신사에 합사된 A급 전범들은 범죄인이 아니며 이들을 재판한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은 부당하다는 주장을 제기하였다. 즉 “A급 전범 무죄론”이 등장하고 있는 것인데,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계속 참배를 주장하는 자민당 소장파 의원모임도 “A급 전범 무죄론”을 모임의 논의과제로 삼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본 지도급 인사들의 망언도 정상회담이 끝난 지 며칠 안 되어서 바로 나오기 시작하였는데, 예를 들어 22일 일본 중의원인 모리오카 마사히로 후생노동성 정무관은 극동국제군사재판의 정당성에 관한 이의를 제기하였고, 26일에는 “A급 전범 무죄론”을 주장하였다. 또한 “종군위안부”는 애초에 없었다“라는 망언을 하였던 나카야마 나리아키 문부과학상도 위안부 발언 사과문제와 관련하여 ”사과한 적이 없다“라고 서슴없이 발언하였다.

정상회담이 끝난 지 채 2, 3일도 안 되어 일본은 정상회담에서 거론된 “낮은 수준”의 합의가 정말로 “낮은 수준”임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정상회담 중 고이즈미 총리의 제3의 참배시설 건립 검토발언은 애초부터 “낮은 수준의 발언”이었고, 노무현 대통령이 일본의 지도급 인사들의 과거사 관련 망언 유의 요구도 애초부터 “낮은 수준의 요구”였던 것이다. 이제 과거사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과 일본 정부는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간다”는 강경노선의 평행선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과거사 관련 평행선의 문제점은 무엇이고, 우리 한국의 대처 방안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진단이 이 글의 목적이며 그 진단을 일본전문가의 시각이 아닌 국제정치학자의 시각으로 내려보고자 한다.

***2. 일본의 우경화되는 역사인식, 왜 문제인가?**

***(1) 일본의 국가 정체성의 문제**

특정한 기억에 대한 해석이 반복적으로 주입되고 강화(reinforce)되면 그 과정이 개인의 정체성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주게 된다. 예를 들어 조직 폭력배가 상대편을 때려눕히는 기억에 대한 해석이 “멋있다”로 내려지고, 그 이후 영화나 책, 경험을 통하여 이러한 해석이 반복적으로 주입, 강화되면 나는 조직 폭력배를 닮아가는 정체성을 갖게 될 것이다. 조직 폭력배의 정체성을 가질 용기가 없다면 조직 폭력배를 숭앙하고, 직간접적으로 지원하고자 하는 정체성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 마찬가지로 한 국가의 기억에 대한 특정한 해석이 국민들에게 반복적으로 주입되고 강화된다면 그 과정이 그 국가의 정체성 형성에 강하게 영향을 주게 된다. 예를 들어 그 국가의 선조가 강한 군사력으로 남의 나라를 정복하고, 지배하였던 기억이 “멋지게” “위대하게” 해석되고, 그 이후 그러한 기억이 교과서, 정치 행사, 영화, 언론 등에서 반복적으로 주입, 강화되면 그 국가는 군사적 정복자의 정체성을 닮아가거나, 군사적 정복자를 숭앙하거나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는 정체성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 물론 국가 안에는 다양한 사고를 하는 국민들이 있기 때문에 국가의 정체성이 그렇게 간단하게 또 일차원적으로 형성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반일의식이 전 국민에 걸쳐 공유되고 있는 것을 보면 다양한 기억이 일원적인 기억으로 바뀔 가능성과 위험성은 언제든지 존재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일본의 과거사 인식, 높아질 수 있는 극우 교과서 채택률 (2001년 0.039%에서 이번에는 3%가 마지노선으로), 야스쿠니 신사참배, 일본지도급 인사의 반복적인 망언 등은 한국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그리고 국제사회의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국제사회에 참여하는 국가가 어떠한 정체성으로 참여하느냐의 문제는 국제질서 창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군사적 힘과 팽창이 영웅시되고 당연시 되는 정체성을 가진 국가들이 국제사회에 참여하게 되면 19세기말의 제국주의적 국제질서로 회귀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타 국가에게 심어줄 것이다. 반면 군사적 힘의 위험함을 인식하는 정체성을 가진 국가가 국제질서를 창출하면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국제질서와 같은 매우 진보적이고 평화지향적인 국제질서 창출에 기여할 것이다.

만일 일본이 군국주의를 영웅시하는 정체성을 다시금 갖게 되고 또 힘만 있으면 이러한 정체성을 되찾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인식을 갖게 되면 향후 주변국들은 매우 불안해 할 것이다. 일본은 군에 대한 문민통제가 아직 강력한 민주주의 국가이고, 또 건강한 시민사회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당장 군국주의로 회귀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러나 주변국에게 불안감을 주게 되면 주변국 역시 그에 대응하는 행위를 하게 되고,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 상호 불신, 안보 딜레마, 긴장상태까지 유발할 수 있다. 그리고 장기간에 걸쳐 일본의 지도층이 특정한 국가적 기억을 칭송하고, 그것을 교과서와 상징적 의식으로 제도화하여 국민들로 하여금 알게 모르게 반복적으로 학습하게 하면 매우 위험한 일본 국가의 정체성이 형성될 수도 있는 것이다. 자유주의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이 일순간에 전체주의적인 나치 독일이 된 것을 상기하면 그 위험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러한 과거사 인식이 일본 사회의 전반에 침투하고 스며들기 전에 일본의 건강한 시민사회와 국제사회의 일원들은 이를 막고, 올바른 역사인식과 미래상을 심어 줄 필요가 있다. 그것이 동아시아와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일본을 만드는 길이다.

***(2) 탈냉전기 미일 동맹의 문제**

미국과 일본은 미일동맹이라는 군사동맹을 맺고 있다. 물론 일본은 정식 군대가 아닌 자위대라는 “유사 군대”를 가지고 있지만 미일동맹은 군사동맹임에는 틀림이 없다. 냉전기간 중 미일동맹은 미국이 일본을 외부의 침공, 특히 공산권의 침공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하여 기능하였지만, 동시에 일본이 군사적 부활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이중의 기능이 있었다. 이러한 기능의 미일동맹은 냉전이 끝나면서 그 목적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공산화를 외치는 공산국가로 남아있는 국가는 북한이고, 중국도 이미 개혁ㆍ개방의 길로 들어섰다. 따라서 이들 국가가 일본을 무력으로 공산화시킬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탈냉전기에도 지속적으로 강화되는 미일동맹의 의미는 무엇인가? 왜 일본은 탈냉전기 안보환경이 개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미국에게 자국의 주권과 땅과 돈을 내주면서까지 미일동맹을 강화시켜 나가려 하는가?

이미 지적된바 있듯이 (박영준, “일본의 안보정책과 미일동맹 변화,” 미래전략연구원 이슈와 대안, 2005년 3월 24일), 일본은 2004년 12월 10일 “방위계획 대강”과 “중기방위력정비계획”을 안전보장회의를 거쳐 각의 결정하였다. 방위계획대강은 이미 1976년과 1995년에 각각 결정된바 있는데 2004년의 대강은 9-11테러 이후의 안보환경을 고려하여 새롭게 결정된 것이다. 이 대강은 북한과 중국의 실명을 거론하여 안보위협을 규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제테러조직, 대량살상무기와 탄도미사일 확산 문제 등 새로운 안보위협에 대처하는 방위계획 대강이다. 이미 일본만의 안전 확보개념에서 벗어난 미일 동맹 재조정이 1995년의 방위대강에서 규정되었고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위한 동맹), 1996년 미일안전보장 공동선언에서도 미일 동맹의 적용범위를 아시아 태평양 지역으로 확대하였는데, 2004년 방위계획 대강도 그 연장선 상에서 동맹의 기능을 확대 강화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GPR (Global Defense Posture Review,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 계획)과 한미동맹의 조정과정에서 이미 나타났듯이 미국은 일본을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중추기지로 만들고자 하고, 일본 역시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보도된 바에 의하면 미일 양국은 워싱턴 주에 소재한 미 제1군단의 일본 자마기지 이전을 심도 있게 논의할 예정이며, 일본이 동아시아 전역 미군기지의 Hub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미일동맹의 변화와 함께, 국제분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전쟁을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한 일본 평화헌법 9조의 개정 여론이 일본에서 강력하게 일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이러한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과 군사적 역할 확대를 꾀하는 일본의 일련의 변화를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 가장 보편적인 시각은 일본이 세계 2위의 경제력에 걸 맞는 “보통국가”로 변신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세계 2위의 경제력을 가진 대국이 제대로 된 군대하나 갖지 못하고, 또 그를 통한 세계평화에 공헌 하나 제대로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기 때문에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군대를 보유하고, 또 국제사회의 위상에 맞는 권리와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보통국가론은 일본이 민주주의 국가인 점과 국제사회에서의 긍정적 이미지 덕분에 국제사회에서는 매우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이다.

그런데, “보통국가”론에서 간과하고 있는 문제는 미일 동맹의 존속 및 강화가 가지는 자체적인 동학(dynamics)의 문제이다. 동맹이 “방어형 동맹”으로서 존재할 필요가 약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강화된다면 이는 동맹이 “확장형 동맹”으로 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방어를 주목적으로 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동맹이 오히려 강화된다면 이는 방어 이외에 다른 역할을 하게 된다는 의미인데, 논리적인 귀결은 “확장”이다. 그렇다면 일본이 보통국가화되고, 정상적인 군대를 보유하고, 동맹의 지역적 범위가 동아시아 태평양으로 넓어지고, 또 동맹이 “확장형 동맹”으로 성격전환하면 이는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위협요인이 된다. 미일동맹의 명목이 세계평화의 유지와 구현을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동맹이 어떠한 목적으로 어떻게 작동할 것인지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특히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과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인 일본이 “일방주의적”으로 군사ㆍ안보 정책을 추진해 나간다면 주변국은 원하지 않는 피해를 입을 가능성도 있다.

일본의 정체성이 과거 군국주의를 칭송하는 정체성으로 향하고, 또 힘과 민족의 우월함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정체성으로 간다면 “확장형” 미일동맹이 일방주의적으로 갈 가능성은 더욱 크다. 이러한 의미에서 일본의 과거사 인식과, 과거사 관련 국가적 행사 및 제도화의 문제는 단순히 일본의 주권적인 국내사안이 아니라 주변국과 국제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국제적인 사안이다. 결국 일본의 우경화되는 역사인식은 우리에게 안보위협의 문제인 것이다.

***3. 과거사 문제, 해법은 무엇인가?**

***(1) 일본 우경화 세력의 무기: 미국과 반공**

일본의 우경화 세력은 2차대전 후 미국과 반공이라는 무기로 부활하였고, 탈냉전기에도 미국과 반공이라는 무기로 강력해지고 있다. 일본의 왜곡된 역사관을 탄생시키게 된 계기는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에서 전범으로 분류된 보수 정치인들이 미국의 “역코스” 정책으로 인하여 사면되고, 다시 등용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람이 전후에 수상까지 지내고 사임 후에도 경제적으로 계속 영향력을 미친 기시 노부스케이다. 도쿄재판에서 기시 노부스케는 A급전범으로 분류되었으나 미국이 소련과의 냉전이 시작되면서 냉전 정책에 필요한 반공노선의 보수 정치인들을 사면, 복귀시키는 과정에서 (“역코스”) 정치활동에 복귀하였다. 기시와 함께, 전시에 중국대륙에서 암약한 고다마 요시오와 같은 거물 우익을 포함한 많은 A급 전범 혐의자가 기소되지 않고 “역코스”에 의해서 석방되었다.

기시는 역시 수상을 역임한 사토 에이사쿠의 친형이며, 현재 차기 총리로 유력한 아베 신조의 할아버지이다. 기시는 냉전과 함께 미국의 반공 노선에 철저히 협조하여 정치생명의 부활과 연장이 가능했던 사람인데, 냉전이 구제해 준 또 다른 정치인들은 도쿄재판에서 종신금고형을 받은 가야 오키노리, 금고7년형을 받은 시게미쓰 마모루 등이 있고, 시게미쓰는 하토야마 내각에서 외상을 하였고, 가야는 이케다 정부에서 자민당 정조회장과 법상을 역임했다. 가야는 특히 최근 우경화를 주도하고 있는 “일본 유족회”의 회장직도 오래 맡았었다. 그리고 A급 전범으로서 교수형에 처해진 이타가키 세이시로의 아들인 다다시는 “일본 유족회”의 사무국장을 맡았었다. 또한 일본의 보수 본류를 형성하는 데 핵심 인물인 요시다 시게루 수상도 중국 및 아시아인에 대한 멸시와 우월감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기시와 요시다의 보수 본류는 자민당의 정책노선으로 이어져서 그 다음 세대 역시 친미 반공 노선을 걸었고, 이 노선을 줄기차게 이어 받은 사람들이 현 일본의 보수 정치인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의 냉전 정책이 전후 일본의 주류 정치인들이 올바른 역사관을 갖지 못하게 한 배경으로 작동하였고, 전후 일본의 주류 정치인들은 친미 반공이라는 무기를 갖고 있으면 과거의 오점이 덮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이를 철저히 이용했던 것이다. 즉 힘 있는 쪽에 붙어서 이들이 원하는 정책을 지지하면 살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현재 이들 보수 세력이 올바른 역사관을 갖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물론 일본은 전후에 건강한 시민사회와 사회당을 중심으로 하는 진보세력이 자민당의 보수세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비교적 미래지향적인 국가로 발전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두 가지의 사건이 일본의 진보세력과 보수견제 세력을 크게 약화시키게 된다. 그 하나는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촉발된 냉전의 종식이고, 또 다른 사건은 북한이 일본인의 납치를 인정한 것이다 (진보세력은 북한의 일본인 납치사건이 허구라고 주장했었다.) 이 두 가지 사건을 계기로 일본에서 사회주의 및 진보세력이 설 자리를 잃어버리게 되었고 친미 반공의 보수세력이 일본의 우경화를 주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이들은 미일 동맹을 강화하고 9-11 테러사태 이후 보수화된 미국과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면서 보통국가로의 부활을 강하게 꾀하고 있다.

전후 미국의 “역코스”는 잘못된 역사관을 갖고 있는 일본 보수세력의 부활을 허용했고, 이제는 이들이 주류 세력이 되어서 그들의 역사관이 올바른 역사관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부시행정부의 미국은 이들이 자신들의 반공노선(중국과 북한에 대하여)과 반테러 정책에 적극 협조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 보수세력을 전적으로 지원하였고, 일본의 보수세력은 반북, 반중이라는 친미 반공 노선으로 자신들의 우경화 정치노선을 일본 내에서 점차 강화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과거사 문제의 해법은 일본 보수 세력의 무기인 미국과 반공이라는 변수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필요가 있다.

***(2) 과거사 문제의 해법: 미국에서, 그리고 동북아를 벗어나서**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잘못된 역사인식을 갖고 있는 일본의 보수세력은 미국의 정책과 여론에 매우 민감하다. 또 반공이라는 소위 “인류보편적” 이념적 무기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과거사 문제의 해법은 한국과 일본이라는 공간을 이용하게 되면 큰 실효를 거둘 가능성이 적다. 한국이라는 공간에서는 일본을 움직이기 어렵고, 일본이라는 공간은 이미 보수세력이 상당 부분 장악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의 보수세력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미국이라는 공간에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

미국에서의 승부는 미국의 학계와 여론 주도층을 대상으로 일본의 과거사와 관련한 담론싸움에서 이기는 것이다. 이는 지난한 싸움이 될 것이다. 일본은 이미 미국에서 자국과 관련한 담론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퍼뜨렸으며, 친일 학자 및 오피니언 리더들을 많이 만들어 놓았다. 우리가 미국에서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제기하면 미국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리둥절해 하면서 이해하지 못한다. 이미 그들은 일본의 담론 영향권에 들어가 버렸다. 따라서 미국에서의 담론싸움은 상당히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제3의 공간이다. 그리고 미국 학계와 여론은 비판적인 담론과 합리적인 담론이 수용되는 공간이다. 따라서 일본의 과거사문제에 대하여 인류 보편적인 시각과 객관적인 자료의 발굴, 그리고 정교한 담론을 만들어서 미국의 여론과 학계를 움직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과거 사실의 과학적 진위만을 따지는 역사학자들만으로는 역부족일 것이다. 앞에서 설명하였듯이 과거사의 문제는 국제사회의 안보이슈가 될 것이므로 안보위협의 시각이 포함된 역사학적 해석과 자료를 인류보편적 가치라는 틀에서 제기하여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담론싸움에 국제정치학자들의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본다.

미국에서의 싸움은 영어담론의 싸움이기 때문에 우리가 싫더라도 영문으로 기고하고, 발표하고, 토론하는 횟수를 늘리고 이를 위한 체계적인 외교적 인프라를 구축하여야 한다. 그리고 한국의 시각을 갖는 유능하고 똑똑한 미국의 학자들을 조직적으로 길러내야 한다. 따라서 첫 번째 해결 방안은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국에서 일본에 대항하는 담론싸움을 하라는 것이다.

두 번째로 일본의 보수세력은 반공이라는 무기를 사용하고 있으며 이러한 반공은 미국과 국제사회의 인류보편적 가치로 여겨지고 있다. 따라서 매우 강력한 무기이다. 그런데 동북아시아에서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제기하는 국가들이 공교롭게도 공산국가이거나 북한에 친밀하다고 “소문이 나 있는” 국가이다.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가장 강하게 제기하는 국가가 중국과 북한 그리고 한국인데, 중국과 북한은 공산국가이고 한국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이래로 “친북”국가로 이상하게 소문이 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국가들이 일본의 과거사에 대하여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 순수한 의도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대부분 정권유지를 위한 “국내용”으로 해석된다. 이들 국가의 과거사 해석은 객관적이 아니고 “이념적”이며 인류보편적이지 못한 것으로 인식되게 된다. 이에 대해 일본의 보수세력이 반공이라는 무기를 사용하게 되면 과거사 문제는 희석된다.

한국의 경우에는 한국이 “친북”국가로 이상하게 소문이 나서 일본은 한국의 과거사 문제 제기를 순수하지 못한 것으로 보고, 오히려 북핵문제에서 북한을 돕기 위한 음모로까지 보는 시각이 있다. 아무리 우리가 “인류보편적 가치”를 근거로 하여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제기해도 한국이 “친북”국가로 소문이 난 이상 그 약발은 떨어지게 되어 있다. 따라서 과거사 문제와 관련한 두 번째 해법은 담론싸움의 지평을 동북아 3국에서 다른 민주국가를 포함한 보다 국제화된 지평으로 넓히는 것이다.

민주국가이며, 인류보편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국가가 일본의 과거사와 관련한 담론싸움에 참여하게 되면 일본은 한국의 시각을 “친북”적인 시각으로 물리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비교적 소프트 파워에 강한 북유럽국가와 캐나다 등의 국가들과 같이 담론싸움의 전선을 형성하게 되면 일본도 상당히 수세에 몰릴 것이다. 구미의 강대국들은 대부분 과거에 식민지를 가졌던 제국들이었다. 따라서 식민지 경영 그 자체만을 문제삼게 되면 국제사회의 여론을 움직이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나치의 잔혹함이 인류보편적 가치에 위배되었던 것 같이 일본의 과거사가 인류보편적 가치에 위배되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는 데 있다.

한국은 이러한 미국과 반공이라는 두 개의 변수를 고려하여 일본과의 과거사 관련 담론싸움에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여야 한다. 물론 이러한 과거사 해법은 장기전이 될 것이므로 앞으로 어떠한 정권이 새롭게 정부를 구성하더라도 일관되고 체계적으로 과거사 관련 전략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일본의 과거사 관련 문제는 단순한 역사 해석의 자존심 문제가 아니라 국제사회의 안보와 직결되는 국제정치의 문제이기 때문에 신중하고 진지하게 다루어야 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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