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국적이요? 그냥 ‘한반도 사람’이라 불러주세요”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국적이요? 그냥 ‘한반도 사람’이라 불러주세요”

[인터뷰] ‘세계시민기자포럼’ 참석한 재일교포 3세 김향청 씨

“나 또한 기자인데 언론의 취재대상이 되고 보니 상당히 쑥스럽네요.”

재일교포 3세로 현재 일본에서 발행되고 있는 좌파신문 <주간 금요일>의 3년차 기자인 김향청(28세) 씨는 자신에게 쏠린 국내 언론의 관심이 꽤나 부담스러운 듯 첫 인사말을 이렇게 꺼냈다. 김 씨는 <오마이뉴스>가 올해 처음으로 마련한 ‘세계시민기자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23일 한국에 왔다. 이번이 6번째 방문이라는 김 씨는 <주간 금요일>의 기자가 아니라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 신분으로 모국을 찾았다.

***“분단조국에서 어느 한 쪽 국적 갖고 싶지 않아”**

그런 김 씨에게 국내언론이 큰 관심을 가진 이유는 그의 특이한 ‘국적’ 때문이다. 김 씨의 국적은 아직도 한국전쟁으로 남·북한이 갈라지던 55년 전 상황 그대로다.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귀화하지 않았기에 일본에선 외국인 신분이고, 남·북한 각각의 국적법에 따르면 남한사람이기도 하고, 또는 북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김 씨가 이렇듯 복잡한 국적을 갖게 된 이유는 그의 할아버지 세대로 거슬러올라 간다. 경북 의성 출신인 김 씨의 할아버지는 1912년 만주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 정착했다. 그 뒤 1965년 한일조약과 동시에 일본 정부가 발행하는 등록증 국적표기란에 ‘한국’이라는 항목이 생겨나면서 ‘한국’은 대한민국 사람을, ‘조선’은 아무 국적을 표기하지 않은 것으로 분류됐다. 당시 김 씨의 할아버지는 ‘조선’을 선택했고, 47년 일본에서 태어난 그의 아버지도 이를 고수했다.

“대개의 한국사람들은 ‘조선’이라고 하면 북한 출신자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조선’을 고집하는 재일 교포 가운데 대부분은 남한 출신자들이거나 그 후손입니다. 이는 그들 나름대로의 저항 의지였던 셈이죠. 저는 왜 국적을 선택하지 않았냐고요?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났으니 내가 선택할 문제는 아니죠. 그리고 분단된 한반도 상황에서 어느 한 쪽의 국적을 갖고 싶지도 않아요. 그냥 ‘한반도’라는 국적을 가질 수는 없나요?”

김 씨는 일본에선 외국인이기 때문에 학교도 조선민족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그 곳에서 김 씨는 내내 “조국통일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라”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그래서 대학생 때는 6개월 동안 북한으로 건너가 그 곳 사정을 공부하기도 했다. 기자가 된 이유도 “남·북한을 동시에 일본에 제대로 알리는 일을 하고 싶다”는 소박한 생각에서 시작했단다.

“얼마 전 집을 이사하게 될 때의 일 이었어요. 외국인이기 때문에 별도의 관리회사에 외국인등록 복사본을 제출해야 하거든요. 사실 일부 관리회사들은 외국인들을 꺼려해 관리를 거부하는 곳도 있죠.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문제가 없어 다행이다 싶었는데 내 일본인 보증인에게 관리회사 직원이 전화를 걸어 ‘북한사람의 보증을 서면 무섭지 않냐’고 했다는 거예요. 그가 한국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사실 마음의 상처를 받았죠.”

김 씨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면서 일본에 남은 7만여명 ‘조선’ 표기자들의 이같은 삶을 한국사람들에게 올바르게 인식시켜 주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올해 안에 중국 상하이를 방문해 핏줄도 찾을 계획이다. 2년 전에야 평양에 사는 큰아버지를 통해 상하이에 작은 할아버지 일가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김 씨와 24일 오전 서울 태평로 세실레스토랑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나올 즈음, 덕수궁 앞에는 일본 관광객과 중국 관광객들이 뒤섞여 시끌벅쩍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제는 그들 외국인들도 모두 올 수 있는 한국이 됐지만 김 씨의 일가들은 아직도 남한과 북한, 중국, 일본에 흩어져 살아야 하는 운명이라는 것이 왠지 가슴 한 켠을 짓눌렀다.

다음은 김 씨와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재구성한 글이다.

***“일본 내 남북대화 노력 시기하는 이들 있어”**

프레시안 : ‘조선’으로 남아 있는 7만여명 재일교포들의 국적을 ‘한반도’로 표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인가.
김향청 : 아무래도 민단과 조총련으로 나눠져 있어 의견을 모으는 일이 쉽지 않다. 그렇다고 통합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프 : 일본 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 느끼는 남·북한에 대한 일본인들의 시각은 어떤 것 같나.
김 : 남한은 독도문제와 관련해 갈등이 있다. 개인적으로 독도문제는 학교에서도 그렇고 항상 한국의 영토로 배워왔다. 하지만 나중에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무척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한국 우익들이 이를 항의하는 수단으로 손가락을 자르는 모습 또한 당황스러운 장면이다.
북한에 대해서는 납북자 문제도 있고 해서 일본 내 인식이 좋지 않다. 이런 때일수록 한국이 북한을 대화 상태로 여겨야 한다. 하지만 일본 일부에선 이 마저도 좋지 않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는 점 또한 알야야 한다.

프 : 개인적으로 남북한 통일방식에 대한 견해가 있다면.
김 : 내가 취재할 때 남북문제 전문가들에게 자주 묻는 질문이다(웃음). 개인적으로 단계적 통일이 좋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민간 차원의 교류가 활발해야 한다. 90년대 북한에서는 남한에서 온 한총련 소속 학생들을 영웅시 할 정도로 교류가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북한에서 남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게 됐다. 그런 것이 단계적 통일의 첫 걸음이 아니겠나.

프 : 외국인 신분으로 일본에서 언론인 활동을 하는 것에 어려움은 없나.
김 : 내가 일하는 <주간 금요일>은 10년 전 ‘자유로운 언론’을 기치로 창간됐다. 자본으로부터의 자유를 위해 상업광고도 받지 않고 있다. 또, 인권과 환경을 중요시 하는 신문이기도 하다. 외국인이기 때문에 받는 불이익은 없다. 다만, 한국인들이 북한사람이라고 오해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프 : 한국과 일본의 언론상황을 비교한다면.
김 : 한국에서도 출입기자실 문제가 사회문제로 불거졌던 적이 있다.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한국의 출입기자실과 같은 ‘기자클럽’의 폐쇄 문화에 대한 문제가 심심찮게 제기되고 있다. 한 프리랜서 기자는 취재도중에 기자클럽에 소속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쫓겨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한국 언론계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고 있는지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전반적으로 한국의 언론계가 언론자유 측면에서 일본보다 앞서 나가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