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주 할머니의 '종군위안부 증언'을 93년 하와이 대학 인권집회에서 처음 접했어요. '그동안 그렇게 역사를 공부했는데 왜 나는 몰랐지? 왜 세계는 이토록 충격적인 사실을 모르지?' 상당히 충격받았습니다. 그래도 누군가는 알리는 역할을 해야 된다 생각했지만 제가 쓰게 될 줄은 몰랐어요."
***"전세계인들이 '종군위안부' 알아야 한다고 생각"**
'전세계인들이 알 때까지 얘기해야겠다'며 1997년 종군위안부(Comfort Woman)라는 작품을 낸 한국계 미국인 노라 옥자 켈러(40)가 세계여성학대회를 찾았다. 유아 때 하와이로 건너가 성장한 켈러의 한국 방문은 이번이 두번째.
"5년 전 일본 대사관 앞에서 시위하시는 할머니을 찾아뵜어요. 이 책의 한국 번역본을 드리며 '증언을 해주셔서 감사하다. 그 용기에 상당한 존경심을 갖고 있다'라는 뜻을 전했죠. 그 때 한 분이 '착한 사람'이라며 제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더군요. 축복받은 느낌이었어요."
켈러씨는 22일 수요시위에 참석하고 '나눔의 집'도 방문할 예정이다. 이번에는 두 딸과 함께다. 이번 대회 때 초청연사로 발표한 내용이 '자궁으로부터의 글쓰기와 이야기 키우기(Writing from the Womb, Mothering the Story)'인 만큼, 여성으로서의 경험은 그녀 작품 세계의 핵심이다. 이 소설에도 작가 자신의 어머니와의 관계, 딸 두명을 키운 경험들이 그대로 녹아들었다.
"여성의 입장에서 쓴 전쟁의 비극과 경험을 말하고 싶었어요. 보통 전쟁은 군인의 입장에서 쓴 것이 대부분이잖아요. 또 제가 쓰는 모든 글에는 모녀 관계가 반영됩니다. '종군위안부'를 쓸 때 제 딸이 애기였는데 나중에 성인이 될 딸이 독자가 된다고 생각하며 글을 썼죠."
***"처음엔 '한국계 미국인'인 게 싫었다"**
베카와 아끼꼬 모녀를 통해 종군위안부들의 참혹한 과거와 심리적 상처, 이들 이민 생활의 현재를 다룬 이 작품에는 '한' '엄마'등의 한국어가 그대로 등장한다. 또한 켈러씨는 두 딸의 이름을 한국식(태, 선희)으로 지을 만큼 자기의 정체성의 한 켠을 한국에 단단히 뿌리박고 있지만, 이 과정은 꽤 고통스러웠다고 회고한다.
"책에서 베카가 어머니에게 반항을 많이 하는데, 그건 제 청소년기 경험의 반영이에요. 전 그냥 미국인이고 싶었어요. '한국계 미국인'인 게 싫었고 부정하려고 했죠. 김치 등 엄마가 해주는 음식을 먹기 싫다고 하고, 저보다 영어를 못하는 엄마에게 '돈 지불할 줄 모르냐, 이런 말도 모르냐'며 발음을 흉보고 버릇없는 행동을 많이 했죠."
'종군위안부'를 쓰는 것은 한국계 미국인임을 부정하던 작가가 정면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며 어머니에게 속죄하는 과정이었다.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이혼했어요. 전 바로 엄마가 만들어낸 작품이었죠. 특히 애를 낳고 키우면서 우리 애들은 나중에 '자기를 어떻게 생각할까'를 고민했어요. 뿌리를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아이덴티티가 구체화됐습니다."
그녀의 미들 네임 '옥자' 역시 어머니가 지어준 것. 그녀는 어머니가 자신이 갈등할까봐 영어만 가르쳐 한국어를 못하는 것이 너무 아쉽다. "한국어를 모른다는 것을 굉장히 불행하게 생각합니다. 제 자신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느낌이죠. 지금은 말 배우는 게 어렵고(웃음) 대신 어머니가 방문하시면 제 딸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하죠."
<종군위안부>는 '1997년 최고의 도서'로 꼽히며 98년 '어메리칸북어워드'를 수상했고, 현재 대학강좌의 텍스트로 쓰이고 있다. 기지촌 여성의 혼혈 자녀 3명의 힘겨운 생존을 그린 그녀의 두번째 작품 <여우 소녀(fox girl)> 역시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우수한 문학작품에 수여되는 영국의 'Orange Prize'에 후보작으로 추천되어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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