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지하의 본명은 김영일이라고 합니다. 그가 그의 필명을 지하라고 했을 때 그것은 땅 밑 지하(地下)의 뜻이었지만, 당시 언론인들이 그의 한자 이름을 풀의 이름 지와 강을 뜻하는 하를 뽑아 지하(芝河)라고 붙였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시인의 이름으로서는 그것이 도리어 적당하고 여겼던 모양입니다만, 아무튼 애초에 그는 자신의 문학적 행위를 언더그라운드의 혁명 의지로 분출하고 싶어 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지상의 세계가 억압과 질식으로 가득 찼을 때, 지하에 숨어들어 밖을 향한 절규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지하는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시대를 잉태하는 현장이기도 했고, 그곳에서 훈련된 이들은 광장의 전사로 나갈 준비를 하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하의 시대는 본질적으로 광장의 역사를 지향합니다. 그래서 땅 속 깊은 곳에서 용틀임치고 있던 기운은 점차 모이고 강해지면서 지진을 일으키고, 그로써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광장의 드라마를 연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소설가 최인훈은 남과 북 그 어디에도 속할 수 없었던 고뇌의 지식인 이명준을 통해, 자유의 광장을 꿈꿉니다.
역사의 호출을 받고 지하에서 광장으로 나온 이들이 자신들이 세웠던 전망이 무너지고 좌절하면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60년대와 70년대가 지하의 기록을 남겼다면, 80년대는 광장의 깃발이 휘날렸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90년대는 개인의 방, 또는 자신만의 밀실로 발걸음을 돌리기 시작했던 시간이라고 할까요.
그러나 그 돌아간 방에서 자신을 새롭게 만나는 희열 대신, 역사에 대한 낙관적 의지와 희망의 열정을 상실해가고 있는 존재가 되어간다면 그것은 그 자신과 역사가 시들어가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흥분에 빠져 너무도 떠들썩하고 그래서 자신을 제대로 챙길 여유도 없었던 세대가 자기만의 방을 갖게 된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로 하여금 더 이상 광장의 에너지를 기대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면 그건 아마도 자신의 진정한 꿈을 상실해가는 존재로 낙착되는 종착지점일 수 있습니다.
4.19 혁명 이후의 좌절과 아픔을 껴안고 쓴 시인 김수영의 “그 방을 생각하며”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 버렸다
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나는 모든 노래를 그 방에 함께 남기고 왔을 게다
그렇듯 이제 나의 가슴은 이유 없이 메말랐다
그 방의 벽은 나의 가슴이고 나의 사지일까
일하라 일하라 일하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나의 가슴을 울리고 있지만
나는 그 노래도 그 전의 노래도 함께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 버렸다
나는 인제 녹 슬은 펜과 뼈와 광기-실망의 가벼움을 재산으로 삼을 줄 안다
이 가벼움 역시 혹시나 역사일지도 모르는
이 가벼움을 나는 나의 재산으로 삼았다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었지만
나의 입 속에는 달콤한 의지의 잔재 대신에
다시 쓰디쓴 냄새만 되살아났지만
방을 잃고 낙서를 잃고 기대를 잃고
노래를 잃고 가벼움마저 잃어도
이제 나는 무엇인지도 모르게 기쁘고
나의 가슴은 이유 없이 풍성하다”
지하에서 걸어 나와 광장으로 뛰어든 이후, 이 모든 것이 흔들리고 말았을 때 시인 김수영은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그는 혁명을 하면서 집을 송두리째 바꾸려했으나 기껏 그가 바꾼 것은 방밖에 없었다고 자조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무엇을 잃고 말았는지 고백합니다. 그 상실의 자리에서 시인은 그러나 우두커니 있지만은 않았습니다.
혁명의 바람이 수그러들고 광장을 다시 차지한 자들의 군가와 행진곡 소리가 들리고 있었지만, 그는 차츰차츰 그의 뇌리 속으로, 그의 가슴 속으로 그 방을 한때 채웠던 희망과 열정이 살아 오르고 있는 것을 느껴갑니다. 그는 “이유 없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이유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광장의 역사를 체험한 이들 모두의 포기할 수 없는 꿈의 꿈틀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쟁의 기억과 저항의 함성으로 점철되었던 유월의 한 복판에서, 한때 지하에서나 부를 수 있었던 노래들이 광장에서 들려오는 것을 듣게 됩니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던 희망의 전사들이 다시 뜨거워진 가슴을 안고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듯한 환영에 사로잡힙니다. 아, 우리는 방만 바꾼 것이 아니라 이제 집을 바꾸어가는 자들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지하의 그 방에서 끄적였던 이름들과 희망의 낙서들은, 결코 헛소리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 센타"(오후 4시-6시/www.ebs.co.kr )에서 하는 5분 칼럼을 프레시안과 동시로 연재하는 것입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