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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을 날조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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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을 날조하는 사회

김명훈의 '영화, 영어, 그리고 미국' <31> ‘Hero’

미국에서는 영웅(hero)이라는 말이 무척 많이 쓰인다. 어쩌다가 자그마한 공이라도 세운 사람은 졸지에‘hero’가 돼버린다. 평범한 사람도 자기 일을 열심히 하며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람은 ‘everyday hero’(일상의 영웅)라며 박수를 쳐주고, 흠모하는 사람은 ‘my hero’라는 표현을 써가며 받들어 준다. 소방관이나 경찰이나 군인은 ‘디폴트’로 영웅들이고, 순직이라도 한다면 신화적인 영웅이 되기 십상이다.

이것은 한편으로 칭찬에 인색하지 않은 사회의 양상이기도 하다. 보편적으로 말해, 미국인(= 미국문화가 본성화되어 있는 사람)들은 아주 사소한 일에도 고마움을 표시하고 격려를 해준다. “Thank you”는 기본이고, 수시로 동원되는 ‘Super!’(‘최고’라는 뜻인 ‘superfine’의 준 말) ‘Excellent!’ 같은 간지럽고 과장된 칭찬의 표현들이 입에 붙어있다. 절제와 겸양을 미덕으로 삼는 동양적 가치관으로 살아온 사람에게는 이 같은 호들갑스러움 앞에서 낯이 좀 뜨거워지기도 하고, 심지어 속내가 의심스러워지기도 한다. (그들에게서 끈끈한 정이나 미련 같은 증세가 감지된다면 또 모르되, 결정적인 순간에 냉정해지는 것을 너무도 많이 봐왔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어쨌든 칭찬을 한다는 것을 나쁘게 생각할 이유는 없다.

칭찬문화가 정착된 지 오래인 미국인들은 ‘일상적인 영웅’들을 부지런히 찾아내고 그들을 인정하는데 적지 않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매달 ‘이 달의 직원(Employee of the Month)’ , 또는 ‘이 달의 영웅(Hero of the Month)’을 선정해 ‘띄워주는’ 인센티브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회사나 단체는 수도 없이 많다. 미국의 여러 작업장과 매장에서는 출입구 근처의 벽면에 ‘이 달의 직원’(Employee of the Month)이라는 사인이 붙어있는 근사한 공간을 마련해 놓고 매달 한 명씩 선정되는 직원의 이름과 사진을 올려놓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필자가 사는 동네 근처의 대형 가구점 아이키아(IKEA)의 주차장에는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임원전용 주차구역에 ‘Employee of the Month’라는 사인이 붙어 있는 주차공간이 하나 마련돼 있다.‘이달의 직원’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차지하는 직원은 한달 동안이나마 임원들과 나란히 차를 댈 수 있는 것이다.

뉴욕 롱아일랜드에서 발행되는 유수 일간지인 트리뷴사(Tribune Company) 계열의 <Newsday>는 9/11 참사 이후 일요일마다 ‘Everyday Heroes’라는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다. 이 시리즈는 말 그대로 일상적인 영웅, 즉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사는 평범한 모범시민들을 소개한다. (이제까지 실린 프로필 중에는 뉴욕의 한인드라이클리너 협회 회장을 비롯한 한인교포 3명도 포함돼 있다.) 신문은 이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취지를 이렇게 말했다.

“…The unsung heroes of our times. These are our neighbors, and coworkers; they are men and women who go about their busy lives, working and raising children… These are the stories of the everyday heroes among us. We share in their accomplishments because in these times, perhaps more than any other in our history, inspiration is essential.”

“…알려지지 않은 영웅들. 이들은 우리의 이웃이고, 직장 동료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바쁜 삶을 살아가는, 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는 남녀들이다… 여기에 실리는 기사들은 우리 사이에 있는 일상적인 영웅들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이 시대에, 아마도 우리 역사의 다른 어느 시대보다도 감화가 절대 필요하기에, 그들의 업적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대단치도 않은 것을 꽤나 엄숙하게 표현하려 애썼다는 생각을 잠시 거두고 ‘감화’(inspiration)를 운운한 마지막 부분을 들여다보면, 감화가 필요한 시대에 감화를 줄 만한 인물들을 일상에서 찾겠다는 소박한 의지를 보게 된다. 설사 광고를 더 받기 위해 지면을 늘리는 과정에서 생겨난 기획시리즈라 할지라도, 최소한 이를 통해 신문이 대변해주는 것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도‘영웅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일반인들의 소시민적 자세이다. 이같이 일상적인 영웅을 인정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일 터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미국 사회는 그다지 건강하지 못하다. 앞서 말한 보기 좋은 소시민적 정서 내지는 덕목이 사회 일부에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미국의 국가적 가치의 대세적 흐름은 그러한 정서나 덕목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국가가 불의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와중에서, 일상적인 영웅들을 인정하는 여유보다는 허황된 영웅들의 그림자를 좇는 절박함이 팽배해 있다. 은폐의 장막이 과거 닉슨 정권의 그것을 무색하게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현정권은 그 치밀한 우민화 정책하에 진실을 호도하고 여론을 주무르기 위한 ‘영웅 이야기’들을 날조하고, 머리를 성조기 속에 파묻은 언론은 이를 액면 그대로 신난 듯이 보도한다.

필자가 좋아하는 영화 중에, 영웅이 언론에 의해 부풀려지는 현상을 재치 있게 풍자한 ‘Hero’(1992)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의 영웅인 버니 라플랜트(더스틴 호프먼)는 좀도둑이고 사기꾼이며 거짓말쟁이다. 이런 시원치 않은 인간이 어느 순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시종 투덜대면서도 폭발 직전의 추락한 비행기에서 승객 54명을 구조해 낸다. 이윽고 광분한 언론이 엉뚱한 작자를 영웅으로 지목하고 그를 신화적인 인물로 만들어 주면서 전개되는 영화의 스토리는 이상화된 영웅에 굶주린 사회의 불안한 정서를 꼬집는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시종 잔잔한 미소를 머금게 하는 재미나는 픽션에 그쳤으나, 최근에 다시 보면서 영웅 만들기에 혈안이 된 미국 언론의 현주소를 생각했다.

팻 틸먼(Pat Tillman)의 이야기를 아시는가. 미 NFL(National Football League) 아리조나 카디널스 소속 수비선수였던 틸먼은 백만 달러가 넘는 연봉을 포기하고 육군에 자원입대, 아프가니스탄에 갔다가 지난해 4월 22일 사망했다. 당시 국방부는 틸먼이 적군 복병의 기습을 받은 동료들을 구하려다가 적의 총에 맞아 전사했다고 발표하고, 수상쩍을 만큼 빠른 속도로 그에게 은성훈장을 추서했다. 국방부의 발표가 나기가 무섭게 미국의 언론은 틸먼의 영웅담을 대서특필했으며, 그는 곧바로 전쟁영웅의 만신전에 오르기에 이르렀다. 미 전역에 방송되고 아리조나주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 등 수천 명이 참석한 장례식에서 한 동료군인은 조사(弔詞)에서 “틸먼은 빗발치는 적군의 집중포화를 받고 있던 제75 레인저연대 동료들을 구하려다가 사망했습니다…… 그는 다른 동료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졌습니다”라며 당시 상황을 실감나게 묘사했다. 신문 방송들은 이 스토리를 한달 이상 우려먹었다.2004년 4월 아프가니스탄에서 죽은 팻 틸먼을 커버스토리로 다룬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와 뉴욕 데일리 뉴스.

그러나 이 스토리는 결국 거짓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말쯤부터 틸먼은 사실 동료의 총에 맞아 숨진 것으로 보인다는 기사들이 몇몇 신문의 구석에 ‘조용하게’ 나더니, 지난 5일에는 <워싱턴포스트>가 마침내 틸먼의 영웅담은 군 지휘관들이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는 특종기사를 써버린 것이다. “현장에 있던 군인들은 틸먼이 미군의 집중 사격을 받고 사망한 것이 분명함을 그 자리에서 알았다고 말했으며, 그의 사망에 대한 육군 보고서에 따르면 전역사령관 존 P. 아비자이드 장군을 포함한 고위 육군 고위장성들도 틸먼의 죽음이 동료에 의한 살해(fratricide)였음을 장례식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 사실이 알려질까 봐 육군은 틸먼의 유니폼과 방탄복을 모두 소각 처리하기까지 한 것으로 뒤늦게 조사됐다.

그러나 이 같은 날조행위는 전례가 있기에 놀랄 일은 아니다. 2003년 4월의 ‘제시카 린치 일병 구하기’의 스토리를 다시 보면 무슨 할리우드 프로덕션을 연상케 한다. 이때 미군은 이라크의 나시리아 인근의 병원에서 8일 동안 치료를 받고 있던 린치를 육ㆍ해군 특수부대를 출동시켜 ‘구출’한 다음, 방송사들에 배포한 5분짜리 국방부 비디오를 통해 린치 일병이 자상과 총상이 있었으며, 병원에서 심문을 당하고 수 차례 뺨을 맞았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린치가 미국으로 돌아오고 그녀의 건강상태와 당시 상황에 대한 보다 자세한 정보가 알려지면서, 국방부의 발표는 터무니없이 과장된 것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린치가 자상도 총상도 입지 않았고, 병원에서 학대를 받은 사실도 없었으며, 단지 교통사고로 인한 골절상으로 치료를 받았다는 것은 이제 주지의 사실이다.

영국의 <가디언>지는 미국측의 날조행위를 보도하면서 미군 특공대가 병원에 난입한 장면을 지켜본 이라크인 의사의 말을 이렇게 인용 보도했다.

“놀랬습니다. 왜 이래야 합니까? 병원에는 군인이 없었어요… 할리우드 영화 같았습니다. 그들은 공포탄과 폭발음을 터뜨리면서 ‘Go, go, go’를 외쳤습니다. 한바탕 쇼를 했지요 – 실베스터 스탤론이나 재키 챈 같은 액션영화에서처럼, 뛰어다니고 소리를 지르고 문을 부수면서 말이죠.”

‘린치일병 구조작전’을 통해 만들어진 영웅이 또 하나 있다. 국방부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린치의 소재를 미군에게 알려준 이라크인 변호사 모하메드 알-레하이예프의 덕분으로 구출됐다고 했다. 알-레하이예프는 그 후 곧바로 미국으로 왔고, 도착한 지 불과 2주 만에 망명승인을 받았다. 그리고 얼마 후 이 사건에 대한 책을 내는 조건으로 루퍼트 머독이 소유하고 있는 하퍼 콜린스 출판사와 30만 달러의 출판계약을 했다. 2003년 10월에 나온 그의 책(영어제목이 장황하기도 하다: ‘Because Each Life Is Precious: Why an Iraqi Man Came to Risk Everything for Private Jessica Lynch’)은 처음에는 불티나게 팔리다가, 린치 일병 구출에 대한 진상이 대체로 알려진 요즘에는 아마존 사이트에서 중고책이 최저 1센트에 팔리고 있다.

영웅을 날조해야 하는 사회는 자신감이 없는 사회다. 영웅이 애국심이나 당파성을 충동질하려는 목적으로 날조된다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문학평론가 김현의 말처럼, 자기 나라가 좋은 나라라는 것을 선전해야 하는 나라는 이미 그렇게 좋은 나라가 아니다.) 사실 영웅이란, 아무리 영웅적인 일을 해낸 사람이라 할지라도, 가까이 들여다 보면 초라한 것이다. 한 사람을 영웅으로 지목하고 그를 이상화하게 되면 언젠가 반드시 실망이 따르게 된다. 극우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미국의 언론은 요즈음 주기적으로 그런 실망을 안겨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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