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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멘붕' 치유해준 분들 돕고자 카페 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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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멘붕' 치유해준 분들 돕고자 카페 열었어요"

[현장] 동국대생들이 쌍용차 분향소 옆에 카페 차린 사연

서울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분향소 바로 옆에 작은 카페가 생겼다. 카페 이름은 '어쩌다 열리는 Cafe'. 학과 구조조정에 반대하며 작년 12월 총장실을 점거했던 동국대학교 학생들이 이 카페를 열었다.

이들은 왜 쌍용차 분향소 옆에 카페를 차렸을까? 지난 28일 폭염을 뚫고 분향소 앞을 지나는 시민들에게 음료를 팔고 있던 학생들을 만났다.

학교는 떠올리기만 해도 무서운 곳

작년 9월 동국대는 문예창작학과, 북한학과, 반도체학과, 윤리문화학과 등 9개 학과를 없애거나 다른 과와 통합하는 '미래지향적 학문구조 개편안'을 발표했다. 학과 통폐합을 반대하는 학생들은 "취업률이란 획일적 잣대로 학과를 평가해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며 구조조정 철회와 민주적 논의체 구성을 요구하며 12월 5일 총장실을 점거했다.

점거 9일째 새벽 6시 45분쯤, 100여 명의 교직원들이 학생들이 점거 중이던 본관에 들이닥쳤다. 교직원들은 폭력과 욕설을 서슴지 않았고 급기야 학생들의 사지를 들어 본관 밖으로 끌어냈다. 그러나 사건이 벌어지기 불과 16시간 전, 동국대 교수들과 학생들은 사태 해결을 위해 대화를 하기로 약속했었다. 약속한 지 채 하루도 되지 않아 본관에서 강압적으로 쫓겨나게 될 것이라곤 학생들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리고 며칠 후, 본관 앞에 설치한 농성 텐트를 교직원들이 철거하는 과정에서 또 한 번 폭력 사태가 벌어졌다. 술에 취한 교직원 한 명이 한밤중에 나타나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고 이내 교직원들은 30여 명 정도로 늘어났다. 상황을 기록하기 위해 카메라를 든 학생들은 교직원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옷이 찢어졌고 안경이 깨졌다. 사태가 진정된 후, 학생들은 학교에선 "혼자 걸어 다니지 말자"고 다짐했다. 교직원들에게 또 폭행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동국대 학생 문가람 씨는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교직원들도 있어서 배신감이 더 컸다. 교육공간에서 교직원들이 이런 폭력을 쓸 줄은 정말 몰랐다"고 말했다. 이어서 문 씨는 "(텐트가 철거되고) 몇 주 후 징계공문을 받으러 본관에 오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 그 교직원들이 있는 본관을 걸어 들어야 한단 생각이 들어 끔찍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버티다 어쩔 수 없이 공문을 받으러 가는 길이 정말 힘들었다"고 말했다.

학교는 당시 총학생회장단을 포함해 9명의 학생에게 퇴학, 유기·무기정학, 사회봉사명령 등 초강도의 징계를 내렸다. 유기정학을 받았던 6명은 이미 징계 기간이 끝났고, 무기정학을 받은 학생들의 징계도 31일부로 해제된다. 하지만 불교학과 김정도 씨는 여전히 퇴학 상태다.

▲ 지난 28일 대한문 앞 쌍용차 분향소 옆에 '어쩌다 열린 Cafe'가 열렸다. 카페를 연 동국대 학생들이 밝게 웃고 있다 ⓒ프레시안(최하얀)

"기댈 곳 되어준 분들께 힘이 되고 싶었다"

사건 발생 초기와 달리 시간이 흐르며 동국대 사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줄어들었고, 퇴학 등 문제 해결의 가능성은 적어졌다.

문 씨는 "기댈 곳이 없었다. 외로웠고, 무력감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쌍용차 해고자와 그 가족들을 심리 치유하는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에게 도움을 요청하고자 무작정 '와락'을 찾았다. 5주 동안 주 1회 씩 8명에서 12명의 학생이 집단 상담을 받았다. 상담에는 쌍용차 해고자 가족들도 함께했다.

문 씨는 "첫날 상담하고 울면서 더는 안하겠다고 했다. 그 날을 떠올리고 말한다는 거 자체가 너무 힘들다"고 했다. 하지만 상담이 있는 날마다 쌍용차 해고자 가족들이 학생들의 곁을 지켰다.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학생들은 폭력으로 생긴 상처를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었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동국대 퇴학생 김정도 씨는 "우리도 쌍용차 해고자들께 무엇이든 도움이 되고 싶었다"며 카페를 열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비록 큰돈을 모금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학생들은 대한문 분향소 가까이서 쌍용차 해고자들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점에 의의를 두고 있었다. "쌍용차 해고자들을 곁에서 지원하며 더 치유가 되는 것 같다"고 김 씨는 말했다.

이들의 목표는 '어쩌다 열리는 Cafe'가 '언제나 열리는 Cafe'가 되는 것이다. 문 씨는 "지금은 고정 스태프가 5명이다. 다들 학생이기 때문에 주말에만 문을 열 수 있다"며 카페 이름을 지은 이유를 설명했다. 문 씨는 "하지만 누구나 와서 카페를 열고 영업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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