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처럼 전화와 이메일로 간단하게 교신하는 세상에서 다음과 같은 풍경을 보기란 어느 전설 속의 사라져가는 그림자를 밟는 것 같을지도 모릅니다. 동요를 지으셨던 윤석중 선생님의 동시입니다. 아니, 동시라기보다는 하나의 아련한 흑백사진을 보는 듯 합니다.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답니다. “비를 주룩주룩 맞으며/우체부가 걸어왔다/오막살이 앞에서 발을 멈추고/”편지요, 편지요“//마나님이 나와 받아 보니/병정 나간 막내아들 편지였다//우체부 품속에서 나온 편지는 물 한 방울 묻지 않고/말짱하였다/비를 주룩주룩 맞으며/우체부는 다시 또/걸어가고 있었다.”
우체부 자신은 우산도 없이 오막살이 초라한 집을 향해 걷습니다. 비도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주룩주룩 오고 있었답니다. 그러면 비를 피할 법도 하건만 그는 자신이 전할 편지를 오매불망(寤寐不忘)으로 기다리고 있을 이의 마음을 먼저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체부는 자신의 몸에 비가 내려 온통 젖는 것이 그리 문제가 되지 아니합니다.
오막살이에 무슨 마나님이 사시겠습니까? 그런데 윤석중 선생님은 그 빈한한 살림살이로 이어가는 여인을 깍듯이 마나님이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우체부가 “편지요!”, 하고 외치는 소리에 여인은 얼마나 반가운 마음으로 우체부를 맞이했을까요? 아니나 다를까 그건, 아직도 어린 아이 같기만 했을 막내아들의 “어머니 전상서”였습니다. 병정이 된 아들의 편지는 언제나 어머니를 울리겠지요.
비가 오는 날의 우체부가 전해주는 편지는 그런데 하나도 비에 젖어 있지 않았습니다. 편지는 우체부의 품 속에 간직되어 여기까지 왔기 때문입니다. 우린 이 장면에서 우체부의 소박한 따뜻함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건 마치, 병사로 나간 아우를 지켜내는 듬직한 형의 모습이기도 하고 편지를 받아들 여인의 마음을 소중히 여기는 인정 깊은 이웃 아저씨의 미소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비가 많이 내려도, 그 비는 오막살이를 향해 가던 우체부의 발걸음을 돌리지 못했고 머언 곳에서부터 날아온 편지를 얼룩지게 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편지만큼은 했을지도 모를 우체부는 제 공을 치하 받으려 하거나 또는 잠시 비를 피해 있다가 가려하거나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다시 묵묵히 주룩주룩 내리는 빗속을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대지의 열기가 여름을 실감하게 할 때 내리는 비는 고마운 손님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그 비를 맞으며 가려는 이는 없습니다. 우중(雨中)의 우체부는 그래서 마치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선사(禪師)처럼 보입니다. 전할 것이 있다면, 그리하여 그로써 기쁨이 이루어진다면 그 어디인들 마다하지 않고 그 어떤 경우라도 손사래 치지 않고 유유히 가는 그런 인품의 향기가 느껴지는 존재 말입니다.
사는 것이 각박하다보니, 비가 오면 오는 대로 구름이 끼면 끼는 대로 태양이 작열하면 작열하는 대로 “편지를 전할 수 없는 이유”는 늘어만 갑니다. 그러다가 그 편지는 그만 젖어버리기도 하고 어딘가에 꽂혀 있다가 잊혀지기도 하며 밤을 새며 공들여 썼던 깊고 깊은 사연의 잉크 빛은 바래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결국, 그 마음이 어디에 먼저 있느냐로 결정될 것입니다. 또한 오막살이에 살고 있는 여인쯤이야 대감 집 마나님에 비기겠나 싶어 그저 가볍게 여기고 지나친다면 우체부의 품속에 편지가 있을 리 만무할 지도 모릅니다.
언덕이 생각보다 가파르다고 가던 발걸음을 멈추어버리거나, 강의 물살이 빠른 것이 보기보다는 예사롭지 않다고 저편으로 건너갈 뜻을 접어버리든지 아니면 비는 오는데 몸을 가릴 것이 없다고 돌아서버리고 만다면, 이 세상의 외로움은 더욱 깊어만 갈 것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그 가슴의 따뜻한 온도로 비 내리는 마음을 감싸는 이가 있는 한 희망과 사랑은 현실에서 자기의 진실을 여전히 드러낼 것입니다.
*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 센타"(오후 4시-6시/www.ebs.co.kr )에서 하는 5분 칼럼을 프레시안과 동시로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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