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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동맹 '이탈' 아닌 동맹 '재조정'의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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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지금은 동맹 '이탈' 아닌 동맹 '재조정'의 시기

미래전략연구원의 '지구촌, 분석과 전망' <15> 한미 차세대 포럼

삐걱거리는 한미동맹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면서‘동맹 표류’라는, 일본 언론인 후나바시의 책을 기억에 올린 적이 있다. 지금은 전후 최고의 밀월기로 보이는 미일동맹이 현재의 단계에 오기 전인 90년대 초반 미일동맹은 크게 흔들린 적이 있었다. 일본의 경제성장이 미국을 위협하면서 무역마찰이 불거지고, 미국도 냉전후 동아시아 주둔 철수계획을 내놓으면서 방향성을 잃은 미일동맹은 1995년 클린턴-하시모토 공동성명에 의해 재정의될 때까지 흔들리는 동맹의 모습 그 자체였다. 후나바시는 당시 미일동맹이‘표류’한다고 했다.

현재의 한미동맹을 보면 동맹이 표류한다는 표현이 걸맞는지도 모른다. 미국측에서는 한국이 정치적 변화를 거치면서 ‘좌편향’으로 흐르고 있어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정책의 전개를 보이고 있다고 푸념한다. 급기야 한미동맹이 위험하다고 진단하는 이가 늘어나고 있다. 한국내에 진보세력이 급성장하면서 친중, 친북적인 목소리가 배어나오고, 반미감정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가 하면, 한반도 안보만을 걱정하는 자기중심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한국측에서도 미국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의 이른바 네오콘들은 세계적으로 일방주의를 내세우며 군사수단에 의존한 패권적 질서를 만들어가는가 하면, 한국민의 의사에 무관하게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할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팽배해 있다. 미국 지식인의 일부는 이러한 인식의 갭을 바라보면서 한국과 미국이 이제 우정어린 이별을 준비해야 할 때라고까지 단언한다. 한국에서도 왜 미국과 꼭 같이 가야 하느냐며 대안적인 동맹체제나 자주국가론을 외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한미 양국간의 이견의 존재나 불협화음을 반드시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이것은 민주화되고 성숙해진 한국의 자존심이 표현된 결과이자, 미국이 세계적인 차원에서 동맹과 기지를 재편하면서 나오는 필연적인 재조정의 여파이다. 지금은 동맹 이탈의 시기가 아니라 동맹‘재조정’의 시기인 것이다. 미일동맹이 순탄하지만은 않은 동맹재조정의 시기를 거쳤듯이, 한미간에도 새로운 시대에 맞는 재조정을 요구하고 있다. 양국간 이견이 표출되는 것은 서로가 갈라서기 위한 전주곡이 아니라, 동맹을 새로운 단계로 높이고 질적인 심화를 하기 위해 필요한 조율과정에서 파생하는 잡음이다. 그것은 위험하다기보다는 건강한 것이다. 왜냐하면 일방적인 강요나 단순한 저항만으로 한미동맹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의 삐걱거리는 한미동맹을 바라보면서 양국간에는 메울 수 없는 인식의 갭과 추구하는 목표의 불일치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이도 많다. 하지만 한미 양국간의 이견은 목표보다는 수단과 방법에 관한 차이가 더 많다. 한미 양국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체제와 가치관을 수호하면서 동북아의 안정을 도모하는 점에 있어서 다름이 없다. 두 나라 모두 이 지역에서 패권국가가 등장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한국도 미국도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의 정당한 일원으로 나와주길 바란다. 양국 모두 테러리즘에 대항해 싸울 의지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한국도 이라크에 파병을 했고, 주한미군 기지의 재배치에 동의하였으며, 동맹유지에 필요한 분담금을 부담하고 있다. 다만 인식의 차가 크게 드러나는 부분은 막무가내로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고 핵포기보다는 보유를 향해 달려가는 북한의 태도를 변화시키기 위해 어떤 수단을 사용해야 보다 효과적이냐 하는 점이다. 이것은 목표의 차이가 아니라 방법론적 차이이며, 상황의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미양국간에 존재하는 인식의 갭과 오해는 서로간의 노력의 부족으로 점차 증폭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미 차세대 포럼에서의 다양한 논점은 이를 여실히 드러내 주었다.

그 대표적인 논의의 하나가 한국의 균형자론에 대한 논란이었다. 이번 포럼에서 가장 많이 제기된 문제의 하나가 한국의 균형자론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미국측의 의구심이었다. 지금까지 한미동맹을 중시하고 일본과의 협력을 강화해 온 한국이 갑자기 균형자론을 제기한다는 것이 곧 친중 친북적인 노선으로의 급선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은 충분히 제기될 수 있는 의문이었다. 한국내에서도 미국의 일방주의와 일본의 우경화 경향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중국과의 협력을 통해 ‘균형’을 잡아가야 한다고 급진적인 주장을 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균형자론이 애초 일본과의 과거사에 대한 분쟁의 와중에서 제기되었다는 점을 상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의 지나친 과거사 집착과 우파 정치인들의 거리낌없는 문제발언들이 튀어나오면서 한국은 일본의 과도한 정치외교적 행위에 대해 견제할 필요성을 느꼈고, 역사인식이라는 아주‘한정적 의미’에서 ‘소프트파워’를 바탕으로 주변국과 협력할 필요성이 있다는 문제제기를 한 것이었다. 그러나, 균형자가 지나치게 해석되어 미일동맹에 대항하는 현실주의적, 군사적 동맹질서로부터의 이탈을 의미한다고 하면 한국의 국익에 걸맞지 않는 선택일 수밖에 없다.

한국은 군사적 균형자 역할을 하기에는 힘이 모자란다. 아울러 한국이 미국과의 동맹이나 일본과의 우호관계와는 무관하게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한번은 중국 편을, 다른 때는 일본 편을 들면서 절제없는 자유왕래를 꿈꾸었다면 이 또한 환상일 뿐이다. 그럴 경우 결국 한국은 국가적 신뢰도를 상실한 채 늘 상대국의 의심을 받으면서 표류하는 외톨이가 되고 말 것이다. 한미동맹의 기초위에 서지 않은 한국이 서러움을 받을 것이라는 점도 명확하다. 중국이나 일본이 한국을 업신여기지 않는 이유의 하나는 미국과의 동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영토적 야심을 가지지 않은 미국과 동맹을 유지하는 것은 한국의 이익에 합치한다. 따라서 균형자라는 표현을 확대해석한 나머지 이것이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듯 떠벌일 일은 아니다.

이번 포럼에서 한미동맹과 관련하여 제기된 또 다른 이슈의 하나는 한국이 지나치게 대북 억지력에 국한한 ‘붙박이형’ 동맹질서에 안주한 나머지, 한반도 이외의 지역에서의 주한 미군의 역할에 대해 냉소적이거나 지나치게 비판적이라는 미국측의 지적이었다. 최근 제기되는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한국측의 입장을 확실히 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구체적으로 미국은 한반도 주변, 특히 대만해협에서 위기상황이 발생할 경우 주한미군을 활용하는 것에 어떠한 태도를 보일 것인가 하는 점을 들고 나왔다. 친중적인 정책태도를 보이는 한국이 협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이 문제의 본질은 결국 냉전 이후, 특히 9.11 이후 한미동맹의 존재이유가 무엇인가 하는데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는 인식의 표현이었다.

9.11 이후 신속하게 이동하는 경량화된 기동군적 양상을 가지면서 세계 어느 지역에나 자유로운 군사력 전개를 원하는 미국으로 보면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도 예외일 수는 없다. 잘 훈련된 육군중심의 주한미군을 자유자재로 활용하고 싶다는 미국 정책당국의 속내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냉전형 분단과 대치가 지속되고 있는 지역이다. 현재도 정전상태인 한반도의 유사시에 대비하여 한반도로부터 빠져나가는 주한미군의 규모를 무제한적으로 허용하는 것은 안보의 공백상태를 조장할 수도 있는 문제이다. 또한 어떤 장비라도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도 없다. 북한과의 대치가 지속되고 군사적 신뢰감이 부재한 상태에서 한반도에서의 일정 규모의 미군주둔은 필요불가결한 조치이다. 미국은 유사시 미군의 유입(inflow) 가능성을 주로 이야기 하지만, 한국에서 걱정하는 것은 대책없는 주둔군의 송출(outflow)이다. 때로는 이것이 돌아올 기약없는 외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호간 의견조정과 사전합의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주한미군의 전개 그 자체에 대해 한국의 주권으로 이를 막으려는 시도는 가래로 홍수를 막으려는 시도일지 모른다. 미국도 주한미군이 한반도 이외의 지역에 전개될 경우, 한국군이 함께 작전에 나갈 것을 요구하고 있지는 않다. 원치 않는 전쟁에 한국이 말려들어갈 것이라는 염려는 정당한 것이기는 하지만 지나친 우려일 수도 있다. 한국의 안보를 위한 미국의 기여를 당연시하면서 한반도 지역 이외에서 미군이 활동하는 것은 나 몰라라 하겠다는 것은 지나치게 아전인수격인 해석일 수 있다.

다만, 분단된 한국으로서는 일방적으로 대만을 돕겠다고 나서기 힘든 점을 미국에 이해시켜야 한다. 경우를 불문하고 대만을 도울 경우 중국이 한국의 분단을 고착화하려는 시도에 대해 반대할 명분이 적어지기 때문이며, 중국이 북한에 대해 편향적인 태도를 취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대만 해협 위기의 발생 양상 및 시기에 따라서는 한국이 다양한 대응을 할 수 있다는 유연성을 남겨둘 필요가 있다. 중국의 일방적인 군사적 조치나 선제공격에 의해 대만이 위협받을 경우 국제적인 보편원칙에 따라 한국도 미국과 보조를 같이 할 수 있다. 역으로 대만이 독립선언을 하거나 일방적으로 중국을 자극하는 조치를 통해 위기가 발생할 경우 한국은 대만편에 설 수 없다는 원칙을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에 요구되는 접근법은 미국이 요구하는 군사적 수단 사용에 대한 유연성 확보가 아니라 상황에 대응하는 정치외교적 수단 사용의 유연성이어야 한다.

한일간의 과거사를 둘러싼 대립은 언뜻 보면 한미동맹과는 무관한 사안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회의에서 한일간 갈등에 대한 논의가 많이 제기되었다. 일본과 한국 모두 미국과의 동맹을 가진 국가들이기 때문이었다. 최근의 밀월관계를 반영이나 하듯이 미국측 참석자들의 다수는 동북아의 주요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이 과거사라는 작은 굴레를 벗어나 보다 커다란 맥락에서 성숙하고 건강한 관계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한국측으로서는 한국이 지나치게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는 투로 들렸고, 실제로 몇몇 인사는 일본이 도대체 몇 번이나 한국과 중국에게 사과해야 만족하겠느냐, 한국이 말이 아니라 행동이 필요하다고 하는 데 도대체 어떤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냐며 일본측을 대변하는 듯한 발언마저 있었다. 워싱턴에 산재한 일본의 영향력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미국도 한일간의 갈등관계를 아주 불편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미국의 동맹국들간의 분쟁이기 때문이다.

워싱턴에서는 한국측의 대응의 결과만 주목할 뿐, 원인의 제공자가 일본이었다는 사실에 지나치리만치 둔감했다. 과거사에 민감해진 것은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고 사과를 거부하고 일방적으로 무신경하게 자극적인 발언을 쏟아놓고 있는 것도 일본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일본이 과거사로 한국을 자극하게 되면 한국민이 원해서가 아니라 일본이 싫어서 역사인식이 비슷한 중국과 동질감을 가지게 되고 만다는 사실을 안타깝게도 아시아통들이라고 하는 사람들까지 읽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은 결국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공유하는 한국과 일본이 가깝게 지내기를 원하는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과도 상충되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도 타인의 일이거나 강건너 불이 아니라 바로 자국의 이익을 위해 개입해야만 하는 사안이다. 미국이 진정한 일본의 우방이고 지역질서의 안정과 평화를 원한다면 주변국을 자극하지 않도록 우정어린 충고를 아끼지 않을 때인 것이다.

이번 포럼을 통해 한국의 대미 민간외교(public diplomacy)는 거의 완전히 실패하고 있다는 점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직접 한국과 협상에 나서고 매일같이 의견을 교환하고 있는 정책당국자들은 오히려 한미관계가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반면 소위 Korea Watcher라고 부를 한반도 전문가들이나 동아시아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한미동맹은 끝났다고 목청을 높였다. 다시 말해서 정부당국간에는 어느 정도 이해와 동의가 있지만, 한국 전문가그룹이나 여론지도층의 시선은 냉냉하기만 했다. 미국내, 특히 워싱턴의 정가 주변에서 여론몰이를 하는 이들 한반도 전문가 그룹들에 대해 한국이 당면한 고민과 숙제를 털어놓고 함께 고민하고 설득력있게 한국의 입장을 대변하도록 유도하는 작업이 꾸준하게 전개되어야 함을 절실하게 느꼈다.

그러나, 미국을 설득하는 작업이 한국의 현 정부에 대한 일방적인 비난의 소리로 채워질 때 미국의 불만은 더 높아질 것이다. 역으로 미국과 똑같은 입장에 서서 한국이 무조건 미국을 이해하도록 소리를 높여도 성숙해진 한국민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미국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한국의 입장에 서서 한국의 국익을 당당하면서도 설득력있게 설파하는 한국의 목소리(Voice of Korea)이다.

포럼에 참석했던 한 미국측 참석자는 지금까지 한미 양국이 모두 서로 변화된 현실을 따라 잡으면서 동맹을 현실감있게 재조정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점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미국은 한국사람들의 요구를 귀기울여 들으려 하지 않았고, 한국은 지나치게 미국에 의존하려 하면서 동등한 파트너로 자신을 인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지금이야말로 한국과 미국은 한미동맹을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재조정을 해 나가면서 서로를 동아시아지역의 협력적 파트너로 만들어가는 노력을 배가시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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