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와 함께‘엘도라도’의 땅이라 불리며 유럽정복자들과 일확천금을 노리는 모험가들 사이에서 황금의 땅이었던 볼리비아가 독립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볼리비아의 수도‘라 파스’는 이제 그 이름처럼 더 이상 평화의 땅이 아니다. 배고픔을 견디지 못한 성난 군중과 중무장한 군경이 자욱한 최루탄 가스 연기 속에 대치하고 있어 전쟁터를 방불케 하고 있다.
지난 6일 까를로스 메사 대통령이 사임을 선언했지만 광부들과 학생, 노동자, 농부, 교사들까지 합세한 시위대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어 볼리비아사태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볼리비아 의회는 시위대와 대치하고 있는 군경의 지휘관들에게 “실탄 지급을 금지하고 고무탄만을 소지케 하라”고 명령을 했지만 시위가 시간이 흐를수록 과격해지고 있어 이 지시가 먹혀 들어갈지는 미지수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되자 미국정부는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에게 “볼리비아사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도록 노력을 해달라”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볼리비아사태의 표면적인 이유는 지난 달 7일 볼리비아 의회가 자국에 진출한 외국 에너지회사들이 생산하는 원유와 천연가스에 18%의 생산 로열티와 32%의 환급 불가한 특별관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부터였다. 메사 대통령은 이 법안을 “해외투자를 가로 막는 법”이라며 볼리비아에 진출한 외국 다국적기업들의 눈치만 살피면서 승인도 거부도 미룬 채 시간 보내기로 버티었다.
그러나 볼리비아 헌법은 의회가 통과시킨 법안을 대통령이 10일 내에 거부권을 행사하든가 아니면 승인을 해야 한다. 만일 대통령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10일의 기한을 넘기면 국회의장이 곧바로 상정된 법안의 승인을 공포하고 시행에 들어가도록 규정하고 있다.
메사 대통령이 엉거주춤10일을 넘기자 오르만도 디에즈 상원 의장은 지난 달 17일 “이 에너지특별법을 승인한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는 전국적으로 산발적으로 시위를 하던 볼리비아노들에게 기름을 부은 격이 되어 성난 시위대가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며 라 파스로 모여들어 볼리비아의 모든 에너지자원을 국유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남미 현지언론들은 날로 과격해지고 있는 볼리비아사태의 해결점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논평을 내놓고 있다. 메사의 사임으로 볼리비아 국정을 책임질 인사로는 오르만도 디에즈 상원 의장과 마리오 코시오 하원 의장, 에두와르도 로드리게스 대법원장 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으나 어느 누구도 현 사태를 매끄럽게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만큼 볼리비아인들이 현 정치권 모두를 불신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이민 원해’**
9백만명의 인구를 가진 볼리비아는 석유와 가스, 그리고 상당량의 광물과 마약의 일종인 코카나무 재배가 산업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 가난한 남미의 대표적인 빈국이다. 그나마 에너지자원은 해외 다국적기업들이, 농지는 까우디죠(Caudillo)라는 전통적인 대지주들이 차지하여 볼리비아 전역의 길거리는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젊은이들이 행인보다 더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가난에 찌든 시골가정에서 태어난 어린아이들의 생활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하다고 현장취재에 참여했던 현지기자들은 전하고 있다.
국민들의 삶이 이 지경이다 보니 이번 사태는 오랜 착취로 인해 배고픔에 지친 가난한 일반서민들의 분노의 폭발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역대 정권은 선거 때마다 빵을 약속했지만 서민들의 생활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어 근본적인 민생고를 해결해달라는 것이 이들의 기본적인 요구인 것이다.
고산지대에 위치한 볼리비아는 먹을 것이 풍부한 다른 남미국가들과는 달리 그야말로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인구가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지긋지긋한 가난과 배고픔을 피해 해외로 이민을 가는 것을 최고의 꿈으로 여기며 마지못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최근 볼리비아 현지의 한 언론이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61%가 넘는 볼리비아인들이 다른 나라로 이민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나라는 단연 미국이다. 그 다음이 스페인과 아르헨티나를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들에게 미국과 스페인은 과다한 비용문제로 이민은 꿈일 뿐이며 기차나 버스를 이용, 비교적 쉽게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아르헨티나로 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인지 아르헨 현지의 모든 3D업종은 대다수가 볼리비아인들의 차지다. 심지어는 자영업을 하고 있는 2만여명의 한인교포들도 현지종업원은 볼리비아인들을 주로 고용하고 있는 실정이기도하다.
한때 중남미의 중심지였던 볼리비아는 1825년 중남미의 독립영웅이었던 시몬 볼리바르장군이 독립국가를 세운 후 중남미전역을 독립시켜 하나의 연합국가를 건설할 원대한 꿈을 가진 축복의 땅이었다.
풍부한 금과 은, 석유와 천연가스 등의 천연자원을 보유, 황금의 땅으로 불리던 볼리비아가 무차별한 외국기업들의 자원개발과 정치인들의 부패로 인해 남미 최악의 빈국으로 변해 배고픈 시민들이 외국기업 철수와 정치인 모두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는 남미의 모든 정치인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은 틀림이 없어 보인다.
볼리비아에서 대학을 나왔으나 일자리를 찾지 못해 최근 아르헨티나로 넘어와 한인교포가 운영하는 한 봉제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오스까르 구스만이라는 젊은이는“만일 남미 독립의 영웅 볼리바르 장군이 지금의 볼리비아 꼴을 본다면 무엇이라고 말할지 위정자들이 생각이나 해보는 건지 궁금하다”며 “뿌리깊은 토호세력들과 외국기업, 부패한 정치인들을 모두 몰아내야 볼리비아가 살 수 있다”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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