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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국민들이 유럽헌법에 반대하는 이유

<기고> 신자유주의ㆍEU졸속확대에 대한 의구심 때문

지금 유럽연합(EU)에서는 유럽헌법조약 비준의 성패 여부를 놓고 뜨거운 열기가 가득하다. 이 조약의 비준 방식은 의회 방식과 국민투표 방식이 있는데, 25개 회원국의 국내헌법상 조약의 비준에 관한 규정의 내용에 따라 전자 내지는 후자, 혹은 두 가지 방식을 혼용하고 있다. 이미 슬로베니아, 리투아니아, 헝가리에서 표결을 통한 의회방식에 의거하여 유럽헌법이 이미 비준됐고, 지난 5월 20일에는 스페인이 처음으로 국민투표에 의해 유럽헌법을 비준하는 데 성공했다. 비록 투표율은 42.32%로 비교적 저조한 편이었지만 스페인 국민의 76.73%가 찬성하고, 단지 17.24%만이 반대함으로써 스페인에서는 압도적으로 유럽헌법이 비준되었다.

그리고 오는 29일, 프랑스에서도 유럽헌법조약 비준을 위한 국민투표가 행해질 예정이다. 하지만 스페인과는 달리 유럽통합의 주축국의 하나인 프랑스의 사정은 현재로서는 상당히 비관적이다. 그렇다면 프랑스 국민들이 유럽헌법 비준에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국민투표가 필요한 유럽연합의 기본조약에 대한 프랑스 국민들의 반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1992년, 현행 유럽연합체제와 유로라는 단일통화제도의 출범의 법적 근거가 된 마스트리히트조약의 비준 과정에서도 프랑스에서는 국민투표 결과 찬성 51%, 반대 49%, 즉 2%포인트라는 극히 미미한 차이로 통과되었다.

따라서 유럽연합법 체계의 지각변동을 가져올 유럽헌법조약이 프랑스 국내법에 미칠 영향은 마스트리히트조약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지대하다. 더욱이 프랑스 국민들은 유럽헌법의 제정 과정에서 정보의 공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정부의 적극적인 홍보가 부족했다는 불만을 가지고 있다.

또한 유럽헌법은 시민들이 읽어보기에는 그 분량이 만만치가 않다. 즉, 유럽헌법의 본문은 총 4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조문이 자그만치 448개인데다 그 외에도 86개의 선언과 의정서가 첨부되어 있다. 약 400쪽 정도의 책에 해당되는 분량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것도 각종 법률용어와 새로운 개념이 난마처럼 얽혀진...

유럽헌법 비준에 대한 프랑스 국민들의 반대 여론의 기폭제가 된 사건이 지난 3월 22일 일어났다. 프랑스 의회가 노조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현행 주당 35시간의 노동시간을 노사합의를 전제로 48시간까지 늘릴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대해 강력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던 국민들은 이와 같은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이 결국 미국식의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으로 전환하기 위한 신호탄이 아닌가에 대한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가 곧바로 유럽헌법 비준에 대한 반대 여론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사실 얼마 전부터 유럽연합 내부에서는 소위‘유럽통합 속도 조절론’이 대두되어 왔다.

유럽연합의 통합 과정을 살펴보면, 그동안 새 가입국을 받아들일 경우 1개국에서 3개국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 확대가 이루어져 왔다. 그런데 작년 5월 1일자로 유럽연합이 새롭게 확대되면서 중ㆍ동부 유럽 10개국이 대거 유럽연합에 가입함으로써 유럽연합은 일시에 15개국에서 25개국으로 늘어났다. 더욱이 앞으로 2~3년 이내에 불가리아, 루마니아 및 터키 등이 가입하게 되면 28개국의 거대유럽으로 거듭나게 될 전망이다.

온건적 유럽통합론자들은 최근 진행되는 급속한 유럽확대의 흐름에 대해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연합의 일부 회원국의 시민들의 상당수가 이에 동조하고 있는 실정이다. 유럽헌법이 발효하게 되면 사실상 미국과 같은 유럽연방주의 체제로의 이행을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는 것이므로 소위 ‘유럽정치공동체’의 결성이 졸속으로 이루어지는 데 대한 어느 정도의 회의와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분위기도 프랑스에서 유럽헌법의 비준에 대해 낙관할 수 없게 만드는 주요 요인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위의 내용과 관련하여 유럽연합의 확대에 대한 프랑스 시민들의 평가가 다르다는 점도 유럽헌법에 대한 반대 여론을 형성하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 유럽의 확대로 인하여 소위 3D업종의 부족한 인력을 중ㆍ동부 유럽 시민들로 보충할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반대로 그들의 유입으로 인하여 자국 시민들의 실업율이 증가하고, 복지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사회적 부담금이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또한 프랑스 국내기업이 고임금과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그 산업시설을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ㆍ동부 유럽지역으로 이전함으로써 소위 ‘사회적 덤핑’이 유발될지도 모른다는 비판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시장이 통합됨으로써 사회적 편익과 경제적 효과도 커지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부담을 감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시민들로서는 아직은 일반적으로 경제적 수준이 낮은 신입 회원국들에 대한 상당한 불신을 갖고 있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유럽헌법에 대한 프랑스 국민들의 반대 여론은 현 쟈크 시라크 정부에 대한 전반적 불신감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예상과는 달리 당시 사회당의 리오넬 죠스팽 총리가 3위로 밀려나고, 극우파인 국민전선의 장-마리 르팽 후보가 2위를 차지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이에 따라 프랑스 유권자들은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시라크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와 같은 사태는 프랑스 국민들의 자존심에 크나큰 상처를 안겨주었다. 결국 국민들의 신뢰와 지지를 얻지 못한 시라크 대통령과 정부로서는 사실상 유럽헌법의 비준과정에서 또 한번의 신임을 받게 된 것이다.

프랑스의 유럽헌법 비준이 이렇듯 초미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그동안 프랑스가 유럽통합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온 주축국이라는 점도 있지만 향후 있을 다른 회원국들의 비준과정에 미칠 파장이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ㆍ동부 유럽으로 유럽연합이 확대됨으로써 상대적으로 그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독일은 별 문제가 없겠지만 덴마크와 네덜란드에게는 적지 않은 영향이 있을 것이다. 특히 덴마크의 경우,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마스트리히트조약의 비준에 관한 국민투표 당시 1차에서는 실패, 2차에서 겨우 통과된 경험이 있다. 따라서 프랑스 정부만이 아니라 유럽연합 당국이 프랑스의 비준 결과에 바짝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만일 프랑스가 유럽헌법의 비준에 실패한다면 어떻게 될까?

유럽연합 내에서 프랑스의 위상에 중대한 타격을 입는 것은 물론 비준에 실패한 국가들의 처리 문제에 관한 논의를 촉발시킬 것이다. 현재로서는 개별 회원국별로 헌법의 규정을 개정해서라도 비준을 할 여지는 거의 없다고 보여진다. 유럽헌법은 이와 같은 경우를 상정하고 “헌법설립조약 서명의 최종행위에 있어서의 선언(declaration in the final act of signature of the Treaty establishing the Constitution)을 첨부하고 있다.

이 선언은, “만약 헌법설립조약의 서명 후 2년이 지날 때까지 회원국의 5분의 4 이상이 조약을 비준했고, 하나 혹은 그 이상의 회원국이 비준절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이 문제를 유럽이사회에 회부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이사회에서의 논의 절차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 이 문제는 정부간 회의(Inter-Governmental Conference: IGC)에서 재심사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법치공동체를 지향하는 유럽연합체제가 가지는 한계인데, 결국 본질적 사안에 대해 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치적 결정을 통해 해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5월 29일!
프랑스 국민들은 유럽헌법에 대해 과연 ‘Oui(예)'와 'Non(아니오)' 가운데 어떤 선택을 할까? 시라크 대통령과 유럽연합 당국의 고민이 깊은 만큼 프랑스 국민들의 고민도 깊어갈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비록 프랑스 국민들이 ’Non'을 표명함으로써 유럽헌법의 비준이 실패한다고 할지라도 이는 헌법을 비롯한 유럽통합 전반에 관한 문제점에 대한 재논의를 촉발시킬 것이므로 결국 유럽연합체제가 더욱 공고해지는 하나의 계기가 되리란 점이다. 우리는 지금 프랑스를 통하여 현실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유럽연합을 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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