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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범에게 가장 큰 벌이 과연 '죽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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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범에게 가장 큰 벌이 과연 '죽음'일까"

<데드 맨 워킹> 원작자 헬렌 프리진 수녀의 '호소'

"살인죄를 범한 사형수에 대한 가장 큰 벌이 과연 '죽음'일까. 저라면 '너도 죽어봐라'한다면 '그래 죽지 뭐. 죽여봐' 대들것 같다. 그러나 만약 누군가 제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사람을 죽인다는 것의 의미를 절절히 깨우쳐 준다면 그보다 더 큰 벌은 없을 것 같다." (소설가 공지영)

"현재 미국 전역의 2백50만 재소자 중 3분의 1은 '20~29세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며, 대다수가 남미계, 인디언등 유색인종이다. 또 이들은 대부분 가난하고, 33%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Dead Man Walking>의 저자, 헬렌 프리진(Helen Prejean) 수녀)

<사진 1>

지난달 7일 국가인권위는 국가기관으로서는 처음으로 "국가의 사형 제도는 인간의 존엄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위헌"이라며 '사형제 폐지'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당시 법무부는 이에 "생명을 빼앗았으면 생명으로 대가를 치르는 게 국민 정서상의 정의"라며 "형벌에는 교화뿐 아니라 응보도 포함된다"고 반박했다. 최근 마지막 사형 집행은 김영삼 정부 말기인 1997년 12월에 있었으며, 이 때 사형수 23명의 형이 집행된 뒤 현재 59명의 사형수가 '집행'을 기다리고 있다.

***헬렌 수녀, 오는 6월 임시회 '사형제 폐지' 논의 앞서 방한**

이 가운데 오는 6월 임시국회에서는 우리당 유인태 의원등 여야의원 1백75명이 발의한 '사형제 폐지 법안'이 논의될 예정이다. 이에 사형수에 관한 영화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Dead Man Walking>의 원작자 헬렌 프리진 수녀가 한국을 방문해 소설가 공지영씨와 얘기를 나눴다.

1981년부터 시작한 루이지애나 교도소 사형수들과의 만남을 토대로 1993년 출간된 <Dead Man Walking>은 31주간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를 차지했고, 이를 원작으로 팀 로빈스 감독이 연출한 영화는 96년 베를린영화제, 아카데미 영화제 상을 휩쓸며 사형제와 사형수에 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소설가 공지영씨 또한 최근 '범죄의 수렁에서 사형수가 된 스물 일곱 젊은이와 세번의 자살시도를 한 부유한 집안의 미대 교수인 한 여성의 만남'으로 죄와 벌, 사형제에 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펴냈다. 세 차례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던 헬렌 수녀는 지난해 후속편 격인 <The Death of Innocents>를 펴내며, 사형수들과 사회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 2>

***공지영 "매스컴에 '보이지 않는 살인자'는 나오지 않는다"**

20일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센터에서 열린 대담에서 공지영씨는 "사실 '사형제 폐지'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이를 주장하기 위해 소설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는데, 취재중에 마침 유영철 사건이 일어나 치열한 고민을 할 수 있었다"며 운을 떼었다.

"이렇게 격렬한 심정으로 소설을 써본 것은 처음인 것 같다. 나쁜 사람은 꼭 죽여야 한다는 것도 사회적 산물 아닌가. 아무리 벌레만도 못한 인간이라도 다시 복원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누구도 한 인간의 생명을 빼앗을 권리가 없다. 그를 인정할 때, 진정으로 살인도 전쟁도 나쁜 일이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매스컴에는 정치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악행과 범죄만 부각될 뿐, 권력과 부를 가지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을 불행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보이지 않는' 살인자들은 없다.

살인죄를 범한 사형수에 대한 가장 큰 벌이 과연 '죽음'일까. 저라면 '너도 죽어봐라'한다면 '그래 죽지 뭐. 죽여봐' 대들것 같다. 그러나 만약 누군가 제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사람을 죽인다는 것의 의미를 절절히 깨우쳐 준다면 그보다 더 큰 벌은 없을 것 같다. 소설을 마치면서 인간은 그가 한 어떤 행위보다도 위대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헬렌 수녀 "재소자들과 나는 서로 북돋아주는 관계"**

<사진 3>

이에 대해 헬렌 수녀는 20여년이 넘게 해온 활동들의 경험을 얘기하며, 죄수들도 사람의 온기가 필요한 인간임을 강조했다.

"현재 미국 전역의 2백50만 재소자 중 3분의 1은 '20~29세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며, 대다수가 남미계, 인디언등 유색인종이다. 또 이들은 대부분 가난하고, 33%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제가 살고 있는 루이지애나 교도소의 재소자들도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이다.

제가 죄수에게 해줄 수 있는 건 큰 건 아니고. 우표 없어서 편지를 못쓰면 우표 제공하고 가족들하고 연락이 안되면 연결을 도와주고, 고아라면 말벗이 되주는 것 정도다. 이런 것만 해도 그들에게는 큰 의미다. 죄수는 아침에 일어나서 옷을 입고 생활을 시작하지만, 만날 사람도 없고, 자신의 존재 또한 죄수 번호 이상의 의미는 없다.

저는 이러한 격리 상태속에서 이들에게 당신은 공동체와 연결돼 있으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가질 수 있다고 전하려고 노력했다. 그렇다고 제가 일방적으로 힘을 주는 관계는 아니다. 혼자 외롭게 지내는 죄수와의 관계는 피곤함으로 제가 고갈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적이고 서로를 북돋아주는 관계였다."

<사진 4>

***"피해자 가족들 상처 치유의 어려움"**

공지영씨 소설의 실제 모델이기도 한 조명애 수녀는 "사형수의 가족 또한 힘들지만, 피해자 가족들의 씻기지 않는 원한과 상처로 치유가 정말 어렵다"고 어려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피해자 가족은 두 종류다. 보통 나이 드신 노인분들은 그나마 결국 용서하고 원한을 푸는 경우가 많은데, 그 형제나 부인, 자녀들은 절대 그렇게 못한다. 그리고 피해자 가족들이 사형수 가족들에게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더 용기를 가져야겠지만 참 슬프다."

이에 헬렌 수녀는 "피해자 가족을 도와주는 모임이 따로 필요하고 이를 위한 공동체의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피해자 가족의 말을 경청하고 심정을 느껴야지, 무작정 뭘 주고 도와주려고 해서는 안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알베르 카뮈는 <단두대에 대한 성찰>에서 "사형 제도는 그 벌을 당하는 자들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있으나 마나 한 제도"라고 단언한 바 있다. 정신적으로 수개월 내지 수년동안 육체적으로 생명이 다하지 않은 제 몸뚱이가 둘로 잘리는 절망적이고도 잔인한 시간은 그 형벌을 당하는 사형수에게만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다른 품위가 없으니 진실이라는 품위라도 회복하자. 인정하자, 사형의 본질은 복수라는 것을"이라고 말한다. 오는 6월 임시국회에서는 이 '국가가 대신해주는 복수'에 대한 치열한 논란이 전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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