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이른바 ‘The Lost Generation(길 잃은 세대)'을 대표하는 어네스트 헤밍웨이와 F. 스캇 피츠제럴드는 동시대의 문호로서 같이 어울려 지냈지만, 그들이 부자들을 응시하는 눈은 서로 사뭇 달랐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랬다.)
피츠제럴드: “The very rich are different from you and me.”
(큰 부자들은 당신이나 나와는 다르다네.)
헤밍웨이: “Yes, they have more money.”
(그래, 그들은 돈이 더 많지.)
이 말들은 피츠제럴드와 헤밍웨이의 글에서 나오는 각 작가의 부자관(富者觀)이다. 평생 상류사회에 대한 동경과 로맨티시즘에 사로잡혀 살았던 피츠제럴드는 ‘The Rich Boy’라는 단편(1926)에서 부자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맨 위의 문장으로 표현했다. 반면에 보다 서민지향적이었던 헤밍웨이는 단편 ‘킬리만자로의 눈’(The Snows of Kilimanjaro · 1938)에서 극중 인물의 입을 빌어 평소에 자신이 은근히 못마땅해 했던 피츠제럴드의 시각을 (약간은 비겁하게) 공개적으로 비꼬았던 것이다. 단순히 말해, 부자와 부자가 아닌 사람들의 차이를 피츠제럴드는 질적인 차원에서, 헤밍웨이는 양적인 차원에서 보았다.
여기에서 ‘부자’란 물론 돈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갑부들로 정의해야 한다. 흔해빠진 백만장자(millionaire)가 아니라 억만장자(billionaire)란 얘기다. 영어로는 tycoon, magnate, 또는 mogul이라는 칭호가 붙어 다니고, 속된 표현으로는 ‘filthy rich’로 분류되는 사람들이다. (주로 ‘더러운’, 또는 ‘불결한’을 뜻하는 ‘filthy’는 ‘남아 돌아가는’이라는 뜻도 있긴 하지만, 그렇게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어원을 따져보면 ‘filthy rich’는 ‘부정 소득’을 뜻하는 ‘filthy lucre’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아무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런 부자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지천으로 널려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부자가 되는 사람은 만나기 힘들다. 그들이 재산을 물려받았든, 자수성가했든, 그런 부자들은 특별한 사람들이다.
생각해 보건대, 부자들이 단지 돈이 많다는 것만 빼면 우리 – 이 글에서 편의상 ‘부자’와‘우리’로 편을 가르기로 한다 – 와 다를 게 없다는 헤밍웨이의 말은 객기 어린 호언에 지나지 않았다는 감이 없지는 않다. 귀족사회를 동경했던 피츠제럴드처럼 경외의 시선으로 보지는 않더라도, 쉽게 숫자를 떠올릴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돈을 쟁여두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와 어딘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실 그네들이 갖고 있는 돈에 대한 집착은 보통사람은 감히 흉내 낼 수 없으며, 이래저래 적지 않은 희생을 수반한다. (문제는 그 희생이 부자 개인의 희생보다는, 불특정 다수의 희생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에 대한 “생계형 집착”은 누구나 가질 수 있겠지만, 평생 펑펑 써도 다 못쓸 돈을 깔고 앉아 있으면서도 한없이 자산을 증식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 살고, 그래도 직성이 풀리지 않는 초인적인 욕심은 분명 아무나 부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그런 초인적 욕심의 소유자일수록 그 삶의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는 공허함은 더욱 처절하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 삶 속에 몸부림치는 욕정과, 물질적인 것들을 끊임없이 생산해내는 거칠게 끓어오르는 힘이 있다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의 밑에 결코 만족될 수 없는 바닥 없는 공허가 자리하고 있다면, 결국 남는 것은 절망밖에 없다. 이런 차원에서, 우리 모두의 삶이란 게 어차피 공허한 것이며 대체로 절망의 폭포를 향해 떠내려가는 조각배라고 한다면, 정말 헤밍웨이가 말한 것처럼 부자들과 우리의 차이는 가진 돈의 액수일 뿐, 그 이상은 아닐지도 모른다.
할리우드에서 만든 영화 가운데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Citizen Kane’(시민 케인 · 1941)은 그 공허함을 ‘로즈버드’(rosebud)라는 말 한마디로 정리해 주었다. 몇 차례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되면 그것이 일종의 맥거핀에 지나지 않는 하나의 트릭으로 보이는 측면도 없지 않으나, 그래도 그 트릭의 기발함은 견줄 데가 없다. 최소한 상징적인 차원에서 주인공 찰스 포스터 케인(오손 웰스)의 입에서 임종의 순간에 나오는 그 말 한마디는 거부하기 힘든 보편성을 갖고 있다. 케인이 물질적 차원에서는 세상에서 부러울 것이 없는 재벌(그것도 언론재벌)이었다는 사실이 그 비극성을 더욱 강조해 주긴 하지만, 그 한마디는 부자든 아니든 어느 한 순간에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돌아보게 되는 사람의 가장 순수한 유년의 추억을 상징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면에서 – 잃어버린 순수에 대한 동경 앞에서 부귀영화는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강조한다는 면에서 – ‘Citizen Kane’은 평등주의적인 시선을 가진 영화다. ‘Citizen Kane’은 개봉되기 전까지 제목으로 ‘American’과 ‘John Citizen’등이 거론됐었는데, 여기에서부터 이 영화의 평등주의적 시각을 엿볼 수 있다. (‘John Citizen’이란 ‘John Q. Citizen’과 같은 말로 ‘일반시민’이라는 뜻이다. 2002년에 나온 덴젤 워싱턴 주연의 ‘John Q.’라는 영화의 제목은, 주인공의 이름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 영화가 부각시키고자 하는 미국의 부조리한 의료제도에 일반시민들이 희생되고 있음을 상기시키기 위한 뜻을 담고 있다. ‘John Q. Citizen’의 동의어로는 ‘John Q. Public’이 있으며, 여성일 경우 ‘Jane Q. Public’이라고 한다.) 이 영화의 핵심에는 아무리 재벌이라 할지라도 결국 돈이라는 것을 빼면 우리와 다를 게 없다는 ‘헤밍웨이적’ 메시지가 있다.
실제로 영화는 여러 대목에서 돈 자체를 경멸하는 태도를 다소 직설적으로 드러낸다.
[케인의 매니저 Mr. Bernstein]
돈을 많이 버는 건 대단한 재주가 아닐세… 오로지 돈을 벌기만 원한다면 말이지.
(It’s no trick to make a lot of money…if all you want is to make a lot of money.)
[수잔 알렉산더]
그건 돈일 뿐이에요. 그건 아무 의미가 없어요.
(It’s only money. It doesn’t mean anything.)
[케인]
내가 큰 부자가 아니었더라면… 난 아주 위대한 사람이 될 수도 있었을지 몰라.
(If I hadn’t been very rich…I might have been a really great man.)
이 영화의 가치의 중심과 어젠다(agenda)는 여기에 있다. 어떻게 보면, 이 같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케인을 우리에게 친근한 캐릭터로 만들어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솔직히 이 세상의 부자 중에서 이같이 말할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케인의 캐릭터가 우리의 마음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는 대목 중 하나를 들자면, 초반에서 케인은 그가 발행하는 뉴욕 인콰이어러지가 부자들을 괴롭히고 약자를 대변하는 자선사업이나 마찬가지이며, 1년에 1백만 달러의 적자가 나고 있다는 은행가의 지적에 대해 “맞습니다…그리고 내년에도 1백만 달러 적자가 날 것으로 봅니다. 1년에 1백만 달러면…이 신문사를 60년 후에는 문을 닫아야 하겠군요”라고 대답한다. 또 한가지 예를 들면, 후반에서 케인은 그의 두 번째 부인의 오페라 공연에 대해 혹평을 쓰다 말고 잠이 든 친구 리랜드의 원고를 그의 의도를 그대로 반영시켜 밤새 손수 마무리한다. 이처럼 멋지고 호걸스러운 신문사 발행인이 어디에 있을까.이 정도면 ‘Citizen Kane’이 모델로 삼은 실제 인물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William Randolph Hearst · 1863~1951)가 이 영화에 대해 그다지 반감을 가질 이유도 없었을 것 같은데, 허스트는 자신의 인생에 인간미를 부여해준 이 영화를 왜 목숨을 건 듯 죽이려 했을까?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영향력을 동원하여 영화의 배급과 상영을 막으려 했고, 자신이 소유했던 27개 신문에서 이 영화나 감독 오손 웰스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을 일체 불허했다. 영화가 1941년에 나왔는데 허스트 계열 신문에 이 영화에 대한 리뷰가 처음 나온 것은 1970년도 중반이었다. (아, 언론의 힘이여.) 이 때문에 영화감독으로서 천재적인 소질을 지닌 오손 웰스의 커리어가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끝내 그 잠재력을 다 발휘하지 못한 것은 영화사의 비극이며, 그 내막은 기록영화 ‘The Battle Over Citizen Kane’(1995)과 TV영화 ‘RKO 281’(1999) 등에서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허스트는 살아 있을 때 자신이 그토록 이 영화를 증오했던 이유가 영화가 자신의 정부였던 배우 매리언 데이비스(Marion Davis)를 백치미로 묘사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는데, 이보다는 약간 더 설득력 있는 설(說)이 작가 고어 비달(Gore Vidal)에 의해 제기된 바 있다. 비달은 권위 있는 서평지인 <The New York Review of Books>에 기고한 “Remembering Orson Welles”라는 글에서 허스트와 어울렸던 동시대 인물들의 진술을 토대로, 장미 꽃봉오리를 뜻하는 ‘로즈버드’는 허스트가 데이비스의 클리토리스를 즐겨 부르던 애칭이었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Citizen Kane’에 대한 허스트의 과잉반응은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이해가 간다는 것이었다. (못 믿겠다면 찾아보시라. 1989년 6월1일자다.)
‘로즈버드’에 관한 진실이 어쨌든, 허스트라는 막강한 언론재벌이 자신이 갖고 있던 재력과 힘을 얼마나 치졸하고 옹졸하게 휘둘렀는지는 역사가 증언해 준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허스트의 가장 중요한 ‘업적’으로 알려진 것은 오손 웰스의 인생을 망치는 것이었다. 허스트는 영화의 케인과 마찬가지로 캘리포니아 샌 시미언(San Simeon)에 위치한 24만 에이커 대지에 ‘허스트 캐슬’이라 명명한 성채를 지어놓고 거기에서 말년을 보냈다. 줄거리상은 영화와 같다. 그런데 왠지 영화 속의 찰스 포스터 케인은 문학에서 말하는 ‘Everyman’, 즉 우리의 거울이 될 수도 있는 보편적 캐릭터로 와 닿지만, 실제인물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는 오늘날까지도 평민들에게 한없이 괴리감을 주는 기형적 부자의 인생을 살다 간 사람으로 인식되어 있다. 현실 속의 부자들은 모두 우리와 그렇게도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일까.
참고로, 허스트는 아틀란타(조지아주)에 있는 오글소프 대학(Oglethorpe University · 1835년 설립)에 엄청난 대지와 지원금을 기부했다. 그리고 1927년에, 법을 공부한 적이 없는 그는 이 대학에서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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