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템즈강을 배 한 척이 가로질러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변호사, 사업가, 회계사 등 내로라는 명함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거들먹거리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대영제국의 영광을 빛내고 있는 세력에 속한 자들이었습니다. 이런 명사들 가운데 “말로우(Marlow)”라는 한 사나이가 초라하게 끼어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입을 열어 아프리카 체험담을 풀어 놓자, 처음에는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다가 점점 그의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19세기 말 아프리카 콩고는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의 개인 사유 식민지였습니다. 세계적 탐험가, 의료 선교사로 유명한 리빙스턴을 찾아낸 뉴욕 헤랄드 기자 스탠리는 바로 이 콩고가 레오폴드의 개인적인 식민지 콩고 “자유국”이 되도록 역할을 했던 인물이었습니다. 대단한 언론인이요, 그 자신 역시 탐험가로 알려졌던 스탠리는 그러나 야만적인 권력욕에 취한 식민주의자였을 뿐이었습니다.
레오폴드 국왕의 개인 식민지가 된 콩고에서 스탠리는 문명의 사도처럼 자신을 내세웠지만, 사실은 전제군주와 같은 식민지 총독과 다를 바 없는 야만적 행위를 자행합니다. 바로 이 스탠리를 모델로 한 작품이 1899년 조셉 콘라드(Joseph Conrad)가 출간한 소설 <어둠의 심연(Heart of Darkness)>입니다. 아프리카 기행의 체험을 털어놓은 “말로우”는 바로 이 작품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어둠의 심연>은 유럽 식민주의의 위선과 아프리카 현지인들이 겪은 고통을 고발하고 정작 어둠의 심연은 어디에 있는가를 묻고 있습니다. 당시 유럽인들에게 아프리카는 암흑의 대륙이었고, 자신들의 식민주의는 이 대륙에 문명의 빛을 전파하기 위한 것이라는 논리를 폈습니다. 따라서 유럽의 식민주의는 아프리카에게 은총이고 구원의 통로가 열리는 감격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말로우는 아프리카에서 만난 커츠(Kurtz) 대령의 모습을 통해 유럽 식민주의가 지니고 있는 문명적 이중성과 야만을 폭로합니다. 바이런의 시를 읊으면서 아프리카인의 목을 칼로 베는 커츠 대령의 면모는 문명을 앞세우면서 착취와 학살을 일삼는 19세기 유럽 제국주의의 진정한 얼굴을 압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암흑의 대륙에 대한 유럽의 책임은 종교적 사명의 의미까지 담은 <백인들의 질고(white men's burden)>라는 말로 포장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아프리카를 질식할 것 같은 암흑의 세상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유럽이라는 조셉 콘라드의 통박은 당대의 유럽 지식인과 상류세계에 일대 충격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커츠 대령은 아프리카인들은 본래부터가 독립의 의지가 결여되어 있고, 그대로 놔두면 야만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전제하고 있고, 따라서 이들은 유럽 문명의 교사와도 같은 지도가 필요한 족속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럽 식민주의자들의 일반적인 주장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커츠 대령은 이들 아프리카인들을 모두 문명개화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숨을 거두는 순간, “이들 야만인들을 모두 이 지구상에서 살육, 제거하라!(Exterminate all the brutes!)”라고 절규하듯 토해냅니다. 유럽 문명의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본질적으로 문명의 능력을 갖지 못한 자들을 없애버리는 편이 낫다는 이 논리 속에는, 이들 아프리카인들을 애초부터 자신과 같은 생명과 존엄성을 지닌 인간으로 인식하지 않고 있는 잔혹하고 야만적인 식민주의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것입니다.
영국 템즈강은 어둠의 심연을 향해 문명을 전파하는 길목입니다. 그러나 그 강 위에서 말로우는 식민주의를 질타하며, 영국을 비롯한 유럽 문명이야말로 다름 아닌“어둠의 심연”이라고 일깨우고 있습니다. 자신의 야만을 모르고 있는 식민주의자들에 대한 경고였던 것입니다. 조셉 콘라드가 이 작품을 쓰기 시작한 1898년은 미국이 쿠바와 필리핀을 점령하여 식민지로 만든 해이기도 합니다.
부시가 이끄는 미국은 이 조셉 콘라드의 고발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미국은 한반도 남과 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생명과 존엄성을 가진 존재로 여기고 있기는 한 것일까요? 혹 이들은 커츠 대령과 닮아 있는 것은 아닐까요? 상대를 끊임없이 모욕하면서, 여차하면 모두 한방에 날려 보낼 수 있다고 자신 있어 하는 이 문명의 강자는 벨기에의 국왕 레오폴드 2세와 얼마나 다를까요?
오늘도 템즈강은 예처럼 흐르고 있겠지만, <어둠의 심연>이 어디에서 비롯되고 있는지 여전히 모르고 있는 이들이 1898년처럼 세상을 주름잡고 있다면, 조셉 콘라드는 무덤에서도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 센타"(오후 4시-6시/www.ebs.co.kr )에서 하는 5분 칼럼을 프레시안과 동시로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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