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1) 최근 과거사 논란이 여러 곳에서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미-러 양국 정상 간에도 과거사 논란이 벌어졌죠? 구경하기는 재미있지만 한편으론 미묘하기도 합니다.
A1) 포문은 부시 미 대통령이 먼저 열었습니다. 러시아의 제2차 세계대전 전승 60주년 기념식 참석을 겸해 유럽 4개국을 순방 중인 그는 7일 “옛소련이 2차대전 이후 동ㆍ중부 유럽을 속박한 것은 역사상 가장 큰 과오”라고 평가했습니다.
부시는 첫 방문지인 라트비아에서 옛소련의 동유럽 지배를 ‘점령’ ‘압제’로 표현하며 이오시프 스탈린에 의한 철의 장막을 비난했죠. 부시의 대 러시아 비난은 민주화에 이어 옛소련의 발트해 3국 불법합병, 동유럽 지배로 확대된 것인데요.
Q2) 양국간 설전 가운데 부시 대통령이 옛소련 과거사를 비난하기 위해 ‘얄타회담에 대한 반성’까지 동원한 것에 대해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는데요.
A2) 그렇습니다.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당시 미국 대통령이 스탈린에게 사실상 동유럽을 떼어준 이 회담을 비판하며 미국의 책임까지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얄타회담은 우리로선 천추의 한을 남긴 한반도 분단이라는 의사결정이 이뤄진 회담이죠.
부시는 “얄타회담이 몰로토프-리벤트로프 협정의 불의(不義)한 전통을 답습했다”며 “나치의 패배가 유럽의 속박을 확산시킨 것은 모순”이라고 말했습니다. 몰로토프는 시위때 사용되는 화염병의 개발자죠. 그래서 화염병을 몰로토프 칵테일이라고도 부릅니다.
아무튼 미 보수 진영이 얄타협정을 ‘자유에 대한 배신’이라고 평가한 것은 오랜 일이지만, 미 대통령이 해외에서 이 같은 발언을 한 것은 처음입니다.
외신들은 부시의 발언을‘자유와 민주주의 확장에 대한 의지’로 보고 얄타회담 전반에 대한 반성으로 확대 해석하지는 않고 있습니다만, 한반도와 유럽을 비롯해 제2차대전 이후 세계를 서로 분할, 냉전체제로 이끈 밀약에 대한 반성은 예기치 못할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Q3) 부시의 이런 시각에 대한 푸틴 대통령의 반응은 정 반대죠?
A3) 당연하죠.
9일 있었던 러시아 제2차 세계대전 승전 60주년 기념식에 고춧가루를 뿌리는 부시의 발언에 대해 러시아는 예상했던 대로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토로했습니다.
민주주의를 내걸고 러시아를 압박하는 부시의 행보는 당사자인 러시아뿐 아니라 옛소련국들로부터도 늘 환영받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미국은 옛소련권인 벨로루시를 동유럽에 마지막 남은 ‘폭정의 잔존기지’라며 맹비난하지만, 민주화가 미국 이익과 일치하지 않을 우려가 있는 카자흐스탄 등에는 민주화 압력을 넣지 않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거든요.
Q4)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이었던 독일과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에서도 미국과 러시아의 입장은 서로 갈리고 있죠?
Q4) 미국으로서야 각각 유럽과 아시아에서 미군의 해외 허브 기지역할을 할 정도로 가까운 독일과 일본 두 나라, 특히 미국의 대 중국 견제 앞잡이인 일본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두발 벗고 나서서 부추기고 있는데 비해, 러시아로선 이것이 상당히 불쾌할 뿐 아니라, 북방 4개섬 반환 사안이 걸려 있는 등 수세 입장이어서 난처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죠.
Q5) 과거사 논란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고 나라마다 각국의 이해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문제입니다만 우리 스스로도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없는지요?
A5)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역사왜곡 및 사상 갈등, 특히 개발 독재 시절의 인권 탄압 등과 관련된 반민주, 반민족 또는 반인권적 공권력 행사 등으로 왜곡되고 은폐된 진실을 밝혀내자는 제기가 계속 불거지고 있지만, 좀 다른 측면에서 우리 스스로 반성과 자각을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Q6) 어떤 측면인가요?
A6) 우리는 일본과 중국에 대해 우리 민족에 대한 탄압과 역사 왜곡과 관련, 엄청난 분노와 항의를 하고 있습니다. 일응 타당한 이유가 있는 대응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타민족에 대해 저지른 저열하고 야비한 행위를 구렁이 담넘어 가듯 외면하고 우리가 당했던, 우리끼리 저질렀던 과거사만을 확대경으로 들여다보는 행위는 성숙한 행위로 볼 수 없습니다.
Q7)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A7) 가장 비근한 예로, 화교에 대한 우리 민족의 어줍잖은 우월의식과 그로 인한 폐해는 정말 우리들이 화교들에게 석고대죄(즉, 거적을 깔고 엎드려 사죄) 해도 시원치 않을 정도입니다.
전세계에 어느 곳이든(심지어 공산주의 국가 한 모퉁이에도) 있었던 화교와 차이나타운이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번성하지 못하고 자멸했던 것은 박정희 시절 의도적인 고사정책 때문이었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화교를 백안시하거나 거의 인간 이하로 취급했던 과거를 반성해야 합니다.
결국 이들은 대부분 대만으로 돌아가거나 미국 등지로 이민을 갔는데, 묘한 것은 미국으로 가서도 차이나타운에 정착하지 않고 코리아타운에 정착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를 일방적으로 짝사랑하는, 그리고 한국화된 그들을 편협하고 속좁은 우리가 보듬지 못한 것입니다.
Q8) 다른 예는 또 없나요.
A8) 1965년 우리의 베트남 참전에서 비롯된 갖가지 행위도 반드시 정리해야 할 과거사 입니다.
파월장병들이 저질렀던 무자비한 양민학살, 민간인들이 저지른 비인륜적 행위(라이따이한 등)는 용서받기 힘든 과거이거든요.
얼마전 일부 문인과 한겨레신문 등이 나서서 그들에게 진솔한 사과를 했지만, 정부차원에서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볼 때, 과연 우리가 일본이나 중국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3D업종에 종사하는 50만 가까운 이주노동자들에게 우리가 저지르고 있는 갖가지 횡포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언제적, 우리가 그토록 대단한 민족이었냐는 겁니다.
한세기전 우리는 하와이 사탕수수밭에서, 멕시코의 에네껜 농장에서, 60년대 서독에서, 80년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이주노동자였고, 지금도 수다한 외항선박에서 이주노동자입니다.
그러고도 코케이시언, 즉 백인 외국인에겐 과도하게 굽실거리는(물론 러시아계에겐 오만하지만) 왜곡된 사대주의 문화, 그래서 강남의 학원가에서 우리의 어린 딸들이 무자격 외국인 강사에게 몸을 망치고, 마약중독으로까지 가는 행태를 보면서 훗날 우리는 또 하나의 부끄러운 과거사를 정리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슬픈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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