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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보다 명예 택한 '제2의 에비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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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보다 명예 택한 '제2의 에비따'

김영길의 '남미 리포트' <53>

'제2의 에비따'라는 별명을 가진 아르헨티나 건설업계의 큰손 아말리아 포르따밧 회장이 경영권을 외국회사에 넘기고 경영일선에 물러나 문화사업에 남은 일생을 바치겠다고 선언해 세계적인 화제가 되고 있다.

포르따밧 회장의 재계 은퇴가 세계적인 관심사로 떠오른 건 그녀가 소장한 희귀한 미술품들의 행방 때문이다. 축구와 탱고의 나라 아르헨티나가 세계 최대의 골동품시장을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은 미국과 유럽 애호가들 사이에는 널리 알려진 지 오래다.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혼란을 거듭했던 유럽에 비해 중립국가를 표방, 비교적 안전했고 당시 세계 최대부국 가운데 하나였던 아르헨티나로 유럽의 국보급 골동품들과 명화들이 몰렸던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진> 철의 여인, 제2의 에비따로 불리는 아말리아 포르따밧 여사의 최근 모습.@포르따밧 재단.

우리에게 잘 알려진 미구엘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초본이 이곳에서 발견되어 스페인으로 팔려 나갔는가 하면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의 국보급 골동품이 발견되어 세계 골동품계를 경악시킨 것은 고전으로 통한다.

따라서 아르헨 골동품 전문시장인 '산뗄모'는 21세기판 엘도라도(황금의 땅)를 찾아 헤매는 유럽 각지의 골동품 수집가들로 항상 초만원을 이룬다.

아르헨티나 부호들은 세계적인 골동품이나 명화 몇 점을 소장하는 것을 커다란 자랑거리로 여겨왔으며 매주 자신의 집으로 손님들을 초대하여 명화나 골동품을 소개하는 것을 생활의 일부분으로 여겨왔다.

특별히 아르헨티나 최대 기업가운데 하나인 로마 네그라라는 시멘트회사를 거느린 아말리아 포르따밧 회장은 세계적인 화가 고갱, 드가, 미로, 마티스, 피사로 등의 작품을 대거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그녀의 은퇴소식에 세계적인 명화 수집가들이 흥분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 권력지향형의 여인으로 불린 포르따밧 여사가 델라루아 전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대통령과 축하의 인사를 나누고 있다.@포르따밧 재단.

세계적인 수집가들 사이에서 큰손으로 알려진 포르따밧 여사는 최근 라틴아메리카 10대 부호가운데 하나로 선정되기도 할 만큼 튼튼한 재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이 세계적인 명작 구입에 열중한 것에 대해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2차 세계대전과 아르헨 군정), 명품들을 안전하게 보관한다는 일념으로 지인들과 친지들을 통해 비교적 쉽게 명품들을 구입할 수가 있었다"며 "소장품 중 세계적인 걸작들은 아르헨티나 경기가 호황인 시절, 소더비나 크리스티 경매장을 통해서 구입을 했다"고 밝혔다.

포르따밧 여사가 전성기 때 수천만 달러 상당의 예술품을 구입하기 시작하자 미국언론들은 앞을 다투어 그녀의 일대기를 특집으로 다루었고 세계적인 수집가들 사이에 인기를 끌어 국제 예술품수집가협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녀는 "이 작품들은 내 개인소유가 아니라 이 사회 모두의 것"이라면서 세계적인 수준의 박물관을 지어 모든 소장품들을 사회에 환원할 뜻을 내비쳤다.

실제로 그녀는 부에노스 시내 고급식당가 주변인 뿌에르또 마데로항에 박물관이 들어설 공간을 마련, 외부공사를 마치고 내부수리에 열정을 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페론정권의 집권과 함께 분 건설 붐을 타고 승승장구한 로마 네그라사는 포르따밧 여사가 에비따와의 절친했던 신분을 앞세워 업계 1위로 쉽게 등극을 했다. 평소 시멘트처럼 단단한 철의 여인, 권력지향의 에비따 등 비난도 많았으나 아르헨티나의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도 자산대비 부채가 25% 정도밖에 안될 만큼 기업을 건실하게 이끌어왔다.

그리고 그녀는 매년 아르헨티나의 유망청년 5명을 선별, 미 하버드대학원에 유학을 보내주는 장학재단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리고 매년 빈민구제에 앞장을 서기도 해 제2의 에비따라는 칭호를 얻기도 했다.

***로마 네그라사와 한인 교포들간의 인연**

포르따밧 회장은 이민초창기 의류사업에 손을 댔던 한인들 가운데도 잘 알려진 인사였다. 빈민구제용 의류를 한인들로부터 대량으로 납품 받았다는 기록이 있어 당시 한인들 가운데는 로마 네그라사는 아주 큰 고객이기도 했다.

<사진> 기업경영에서 물러난 포르따밧 여사가 제2의 삶을 꾸려나갈 예술박물관 모형도.@포르따밧재단

어쩌면 그녀의 이런 대량구매 방식은 40여년전 어려웠던 한인 이민자들에게 큰 힘이 되었으며 오늘날 아르헨티나한인들이 의류업에 90% 이상이 매달리게 하는 데 일조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당시 의류제품을 납품했던 교포들은 "우리는 이민초기 의류업에 진출을 했지만 아르헨티나사람들의 체형을 이해하지 못했고 바느질과 재단 등이 서툴러 지금 생각하면 도저히 팔 수 없는 불량제품투성이였다. 예를 들어 옷을 완성해 놓고 보니 목이 틀어졌거나 양쪽 팔의 길이가 서로 다른 것이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로마 네그라사는 빈민구제용이라 가격만 맞으면 품질은 따지지 않고 그냥 받아 주었으며 결제 또한 아주 좋았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여성으로서 아르헨티나 최고의 기업을 이루었고 자선사업가, 그리고 예술품수집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휘날린 금년 79세의 포르따밧 여사가 마지막 정열을 불사르고 있는 문화사업이 어떤 화제를 불러올지 벌써부터 세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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