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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의 '現場에서 읽는 삼국유사'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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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의 '現場에서 읽는 삼국유사' <11>

낙산사 원통보전 벽화를 생각하며

낙산사 원통보전이 불에 타고 동종이 녹아내렸다. TV 화면으로 낙산사 산불을 바라보면서 나는 속수무책의 안타까움 끝에 나름대로 자책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입으로는 ‘천년 고찰’이라고 말하면서도 내가 거기에 값하는 애정을 보였던 적이 있었던가? 낙산사를 그냥 구경거리로만 생각해 왔던 건 아닌가? 그랬다. 『삼국유사』를 읽는답시고 이따금 찾아가서, 경내를 한 바퀴 휘돌아보며 구경하고 사진 찍고 했던 것이 전부였다. 그러면서 아는 척하고 낙산사에 관한 글을 쓰기까지 했다.

언제였는지 기억에 분명치 않지만 낙산사를 처음 찾았을 때 나는 꽤나 경건하고 진지했었다. 홍예문을 들어서서 사천왕문, 조계문을 거치면서 문루며 주변 경관까지 찬찬히 살펴보았고 원통보전 뜰로 들어서서는 7층탑을 요모조모 뜯어본 후, 원통보전 안에 들어가 한 옆에서 관음상에 조심스럽게 예를 올렸었다. 그리고는 의상대, 홍련암 등을 찾았던 것이다. 요즘은 그저 내키는 대로 낙산사를 구경하는 편이다. 해수관음상이나 보타전 같이 근래 세워진 불상, 전각에는 비교적 무심하지만 그래도 원통보전은 갈 때마다 들러서 7층탑 안부도 묻고, 원통보전 주위를 한 바퀴 돌면서 거기 바깥벽에 그려진 그림들에 눈길을 주기도 했다. 올 초에도 낙산사를 찾았다가 원통보전 바깥벽 그림 중에 조신(調信) 설화 부분을 살펴보고는 실망하면서 발길을 돌렸던 일이 있었다.

『삼국유사』 ‘낙산 이대성 관음 정취ㆍ조신’조의 조신 설화는 많은 연구자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어 발표된 연구논문도 상당수에 이르고 있다. 나는 그러나 이런 연구 쪽보다는 설화의 내용 즉, 이야기 자체에 끌려서, 생각날 때마다 『삼국유사』를 들추어 이 대목을 읽어보곤 한다. 육당 최남선에 의해 우리 소설의 효시로 꼽히기도 했던 이 설화는 춘원 이광수가 소설로 번안한 적 있고, 그 소설이 또 영화로 만들어진 적도 있다. 나는 춘원의 소설을 토대로 했던 『꿈』이라는 영화를 보고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조신 설화의 그 기막힌 스토리로 그 정도밖에 만들지 못하느냐고 불만스러워 했던 것이다. 원통보전 바깥벽의 그림을 보았을 때도 그 비슷한 기분이었다.

내가 조신 설화를 처음 읽었을 때에는, 꿈을 반전(反轉)의 장치로 삼는 기교에서 보르헤스 식의 ‘마술적 리얼리즘’을 떠올리기도 했고, 나중에 다시 읽으면서는 부부가 가난으로 유리걸식하는 대목들의 리얼한 묘사에서 최서해의 ‘탈출기’를 뛰어넘는 극사실주의의 면모를 읽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일연이 주인공의 입을 빌어 “붉은 얼굴에 예쁘던 웃음도 풀잎 위의 이슬처럼 사라지고, 지란(芝蘭) 같던 약속도 회오리 바람에 휘날리는 버들솜과 같다”라고 말하는 대목이나, 기사 끝의 찬시(讚詩)에서는 일연의 노숙(老熟)한 인생관에 마음 깊이 공감하기도 했다.

이런 연유로 나는 『꿈』이라는 영화와, 원통보전 바깥벽의 조신 그림에 실망했던 것인데, 엊그제 산불로 원통보전이 불길에 휩싸인 TV 화면을 보다가 조신 설화 그림들을 떠올리면서 문득 내가 그 그림들을 잘못 읽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조신의 설화가 원통보전 바깥벽에 그림으로 옮겨졌던 것은 그 설화가 문학적으로 뛰어난 것이어서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 그림은 조신의 애절한 사연을 들어주면서, 그의 헛된 애욕을 깨쳐 준 관음보살에 대한 중생들의 소망과 의지(依支)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원통보전이라는 전각은, 애초에 관음보살을 친견코자 했던 의상의 경건하고 간절한 기구(祈求)에서 세워진 것이었다. 이후 1천5백년 가까이 그런 지극한 신심들이 쌓여온 곳이 바로 낙산사 원통보전이다. 그렇다면 원통보전은 신라 이래 그곳을 찾았던 불자들의 신심이 응축된 하나의 상징이 아닐까? 그래서 근래에 세워졌다는 이유만으로는 홀대할 수 없는, 녹록치 않은 무게를 지니게 된 것이 아닐까?

기록을 보면 낙산사가 불에 탔던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님이 드러난다. 『삼국유사』만 보더라도 범일이 낙산사를 중창한 후 백 여년에 산불이 낙산사까지 옮아붙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고려조에 몽고군에게 유린당했던 적이 있으며, 조선조에 들어와서도 수난은 계속되어 성종 20년, 선조 25년 임진년, 인조 9년, 정조 1년 등등 여러 차례 불이 났던 일이 기록에 남아 있다. 최근에는 6.25 때에 사찰 전체가 불에 타서 소실되기도 했다. 그리고는 엊그제 식목일에 산불이 원통보전과 다른 전각들을 태우고 범종을 녹여버리고 말았다. 낙산사 화재의 역사를 이렇게 살펴보느라면, 전각들이 불타서 무너지고, 새로 지어지고 하는 것이 어쩌면 섭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나는 그러나 이번에 원통보전을 태운 산불이, 조신 설화에 흠뻑 빠져서 내가 꾸었던, 종작없는 꿈이었으면 한다. 그 꿈속에서 내가 『꿈』이라는 영화를 탓하고, 원통보전 바깥벽의 그림을 탓하다가, 마침내는 누군가처럼 심화(心火)를 일으키고 그 마음의 불이 번져 원통보전을 불태우고…… 그리하여 그 불길이 잦아든 무렵에 다시 깨어나면, 촛불 하늘거리는 너머로 관음상은 말없이 자비롭고, 어둠 끝에 희끗희끗 빛이 묻어나는, 차고 맑은 새벽이기를 마음으로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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