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는 몇 차례에 나누어 중국 청(淸)말에 시작된 근대화 과정에서 명멸했던 인물들의 사주를 역사적 배경 속에서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이번 시리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임칙서, 서태후, 공친왕, 마지막 황제 부의, 증국번과 이홍장, 원세개, 강유위, 양계초, 손문, 장개석과 모택동 등이다. 필자의 의도는 청 제국 말기부터 시작된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당시를 주도한 인물들이 어떠한 운명의 기운을 타고 났으며, 역사라는 거대 변수 속에서 어떤 활약과 판단을 했었는지를 알아보자는 데 있다.
먼저 중국 체제의 붕괴가 본격화된 아편전쟁을 출발점으로 삼아 당시의 영웅 내지는 스타라 할 수 있는 임칙서를 중심으로 얘기를 전개하고자 한다.
임칙서(林則徐)는 1785년 생이니, 무려 61년간이나 재위를 이끌면서 태평성세를 영위하던 건륭제(乾隆帝) 치세의 말엽에 태어났다.
당시 청 제국은 앞서 강희제와 옹정제의 굳건한 통치를 통해 무려 130년간에 걸쳐 중국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최고 절정의 시기를 누리고 있었다. 인구 역시 명 나라 말기의 6천만명에서 급증하여 근 2억 5천만에 달하였으니 사회적 생산이 그만큼 받침하였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건륭제 역시 통치 말년에 가서는 호화사치를 일삼아 튼튼하던 국고가 비어가고 있었다. 누구도 몰랐겠지만, 좋은 시절은 지나가고 서서히 석양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특히 황제의 총애를 등에 업은 화신(和珅)은 정사를 농단하면서 엄청난 치부를 하였다. 훗날 황제가 서거한 후, 탄핵을 받아 처형된 뒤, 재산을 몰수하였더니 무려 8억냥이나 나왔다고 한다. 당시 나라 전체의 연간 국고 수입이 3천만냥이었다고 하니 부정축재로는 역사상 단연 랭킹 1위였을 것이다.
총명하던 건륭제가 왜 이토록 화신을 절대적으로 믿었던 것일까? 역사학자들은 모른다. 하지만 명리학을 들이대면 그 최소한의 진실을 알 수 있다.
건륭제와 화신은 나이가 무려 39년이나 차이지지만, 사주를 보면 그들 간에는 대단히 마음이 통했음을 알 수 있다.
건륭제의 사주
연 신묘(辛卯)
월 정유(丁酉)
일 경오(庚午)
시 병자(丙子)
화신의 사주
년 경오(庚午)
월 을유(乙酉)
일 경자(庚子)
시 임오(壬午)
여기서 착안할 점은 일간(日干)이 황제는 경오(庚午)일이고 화신은 경자(庚子)일이라는 점이다. 둘 다 운기가 강한 타입인데, 차이점은 건륭제는 불을 용신삼아 권력을 쥘 유형이고 화신은 물을 용신삼아 치부 내지는 재벌이 될 사람이라는 것이다.
같은 일간(日干)은 대개의 경우 아주 막역한 사이가 되거나 친구가 되기 쉽다. 그 바람에 황제는 모든 일을 화신에게 맡기고 본인은 음풍농월을 빠졌던 것이다. 권력자는 가장 친한 친구라도 삼가고 경계해야 하는 것을 일러주고 있다 하겠다.
아무튼 임칙서는 태평성세의 말엽에 태어났는데 사주는 다음과 같다.
연 을사(乙巳)
월 갑신(甲申)
일 계유(癸酉)
시 임자(壬子)
사주에 나타난 성정을 보면 신(申)월에 났으니 학구적이고, 시에 임수(壬水)가 있어 의리가 있고, 연월에 갑목과 을목 식상(食傷)이 있어 총명함을 말해준다. 이른바 준재(俊才)인 것이다.
26세에 과거에 합격하여 진사가 된 후, 순조롭게 성장하여 황하를 다스리는 총독 때에는 치수(治水)를 잘 하여 이름을 얻었고, 강직하여 널리 신뢰가 컸다.
그가 치수에 밝았던 것 역시 일간이 계수(癸水)이고 식상이 목 기운이라 건축 공학에 밝았기 때문이다. 즉 물과 관련된 공학이니 치수(治水)인 것이다.
그는 1830년 경인(庚寅)년에 가서 나라의 장래를 염려하는 여러 문인들과 함께 클럽을 만들었는데, 명칭을 선남시사(宣南詩社)라 했다. 그런데 이 클럽의 주요 멤버들을 보면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아울러 우리는 물론 일본까지도 깊은 연관이 있다.
주요 멤버로서 임칙서를 비롯하여 황작자, 공자진, 위원 등이었는데, 이들이야말로 당시로서는 앞선 의식을 지닌 사람들로서 훗날 근대화의 맹아가 되었다.
먼저 황작자(黃爵滋)는 한림원에 있으면서 아편을 엄금해야 한다는 상소를 당시 황제인 도광제에게 올려 황제의 결단을 이끌어낸 사람으로서,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이에 황제는 선남시사의 한 멤버인 임칙서를 아편 문제에 관한 흠차대신으로 발령내어 광주(오늘날 홍콩 근처의 꽝쩌우)로 보내니 이것이 아편전쟁의 한 원인이 된다.
공자진(龔自珍)은 글재주가 뛰어난 문인으로서 당대의 스러져가는 시대를 통렬한 어조로 노래한 시인이었다. 오늘날 이른바 사회참여 시라고 할 수 있는 시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고, 끼친 영향도 컸다.
그리고 위원(魏源)은 진사 급제는 늦었으나 공양학자로서 명성을 날렸다. 공양학, 정식 명칭은 춘추공양학인데, 이는 옛날 전한 왕조의 동중서가 저술한 “춘추번로”란 책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학문으로서 경세치용을 중시하고 있어 훗날 개혁운동인 무술변법의 주인공인 강유위의 대동사상 역시 이로부터 기인한다.
위원은 아편전쟁에서 억울하게 책임을 지고 물러난 임칙서의 부탁으로 해국도지(海國圖誌)란 책을 저술 편찬하였는데, 이 책이 바로 조선말 우리의 개화사상을 이끌어낸 발단이 되었다.
책머리에 양이(洋夷)를 막기 위해 서양의 장기(長技)를 채용해야 한다고 역설한 이 책은 당시에 소개된 한역 서양지리서와 역대 사서(史書)·지리서에 실린 외국의 기술을 지도와 지지(地志)로 나누어 세계 각국의 지리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그저 단순한 지리서가 아니라, 각 나라의 지세(地勢)와 산업·인구·정치·풍습 등을 기술하였고 중국의 자강(自强)방책을 제기하고, 화기(火器)와 함선의 구조들도 도해(圖解)하고 있다.
조선 후기, 1853∼60년대에 조선의 개화사상을 이끈 오경석(吳慶錫)·박규수(朴珪壽)·유대치(劉大致) 등의 선구자들은 아편전쟁에서 중국이 처참하게 무너지는 것을 보고 세상의 변화를 가장 예민하게 인지한 사람들이었다.
특히 박제가의 실학을 공부한 오경석은 역관으로서 청(淸)나라를 드나들면서 서양 열강의 서세동점이라는 새로운 흐름과 서양의 과학이라는 신학문에 눈을 떴다. 그리하여 그는 위원이 저술한 ‘해국도지’를 비롯하여 ‘영환지략(瀛環志略), 박물신편(博物新編)등의 신서들을 사가지고 돌아왔다.
이에 유대치는 앞서의 책들을 읽고 그 사상을 김옥균이나 박영효(朴泳孝) 등의 젊은 인재들에게 고취하여 만들어진 것이 청년개화당이었다.
이들의 출신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라, 다시 말해 기득권 세력이 아니었기에 청으로부터의 독립과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모델로 한 변법론적 급진 개혁을 꾀하였다.
반면 온건개화파가 있었는데, 이른바 김윤식(金允植), 어윤중(魚允中), 김홍집(金弘集), 민영익(閔泳翊) 등이다. 이들은 정부요직에 있는 사람들이라 청에 대한 종속을 인정하고 청의 양무운동을 모델로 한 양무론적 점진개혁을 추진하였다,
온건개혁파의 사상은 서양의 기술과 문물은 받아들이되 그 종교와 사상은 전통의 것을 지킨다는 동도서기(東道西器), 즉 청의 ‘중체서용(中體西用)’, 일본의 ‘화혼양재(和魂洋才)’와 유사한 맥락을 지닌다.
이렇듯 조선 말기의 개화 개혁 운동은 두 흐름이 있었는 바, 한때 갑신정변 당시 김옥균으로 대표된 급진개혁파가 정권을 잡기도 했지만 곧바로 무너지면서 조선의 개화 흐름은 온건파로 넘어가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일본 역시 막부 말엽에 이 ‘해국도지’를 통해 서구에 대한 많은 지식을 얻었으며 메이지 유신의 사상적 바탕이 되었다.
얘기가 좀 돌아갔지만, 아무튼 임칙서를 비롯한 선남시사의 동인들은 사실상 중국 최초의 선각자들로서 조선 말 우리 역사는 물론 일본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밝혀둔다. 일러서 개화사상의 효시라 하겠다.
이제 아편전쟁이 발발한 배경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기로 하자.
유럽 열강들이 중국과 교역을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차와 실크에 대한 수요가 커서 언제나 무역은 청 제국 쪽에 흑자였다. 그러자 영국인들이 아이디어를 낸 것이 인도에서 생산되는 아편이었고, 그 마케팅이 지나치게 성공해서 나중에는 은의 유출-지금으로 치면 외환 유출-이 심해졌고, 그 바람에 중국 국내 경제가 어려워졌다.
이에 황제인 도광제는 고민하다가 앞서 얘기한 황작자의 상소에 용기를 내어 흠차대신으로 임칙서를 남쪽의 무역항인 광주로 파견했고, 임칙서는 영국인들의 아편을 압수-그러나 배상은 했었다-해서 폐기처분한 것이 영국 측에게 빌미를 주어 전쟁이 난 것이다.
글이 길어지니 다음에 잇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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