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얼었던 흙이 물기를 머금으면서 들릴락 말락 하는 생명의 소리를 내는 찰라, 우리는 봄의 격류(激流)가 곧 시작될 것이라는 예감을 하게 됩니다. 그건 아주 미세한 신호이지만 이윽고 일어날 거부할 수 없는 사태의 장래를 감지하게 하는 자연의 숨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흙은 단지 무생물적 광물의 복합체계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본질적으로 생명이라는 점을 깨닫지 못하면 우리는 자신이 딛고 있는 대지의 진정한 의미를 결코 알아가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기운을 받고 매일 매일을 살아가는 인간은 숨을 쉬고 있는 땅의 신비로움에 대한 감사도 모르고 지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편리와 유익을 위한다고 그 흙 위에 인공의 거대한 덮개를 해버리고 맙니다. 도시는 그래서 그 자연의 숨결을 차단하면 할수록 현대적 특성을 지닌 것처럼 여겨집니다. 우리의 삶에서 자연의 공간을 잘라내 버리고 생명의 소리에는 둔감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을 스스로 선택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 환경과 조건에서 평생을 살아가게 되면, 우리에게 본래 주어진 타고난 몸의 감각은 날이 갈수록 퇴화되어갑니다. 쓸 기회도 없고 굳이 쓸 이유가 없는 현실에서 그 오감의 통로를 통해서 마음이 느낄 수 있는 영역은 한정되어가고 그 결과 감정은 점점 야위어갑니다.
바람 속에 담긴 풀 냄새, 빗방울이 머금은 들판의 소식, 나무줄기 가운데 흐르고 있는 아주 작고 작은 시냇물 소리, 그리고 흙을 뚫고 세상을 향해 춤을 추고 있는 꽃씨들의 귀여운 몸짓 같은 것들은 존재하고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꽃은 어느 날 갑자기 피어나고 풀은 문득 돌아보니 들판에 자라나 있으며 나무는 어느새 푸른 잎사귀로 치장을 마친 듯이 보이는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결과만 보이지, 그러는 중에 미처 눈여겨보지 못한 채 일어난 사연에 대한 깊은 이해는 빈곤해지고 자신이 본 것만이 다인 줄로 아는 안타까운 무지함이 우리에게 용기를 갖지 못하면 이탈할 수 없는 상식처럼 되고 맙니다. 아무런 이유나 과정도 없이 예기치 않게 일어나는 일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 까닭을 모를 뿐이며, 그 까닭의 깊이를 알아볼 안목을 잃어버렸거나 그 힘이 약해진 때문입니다.
스스로의 몸과 영혼을 위해서 차분히 숨쉴 여력조차 박탈당한 채 살아가는 이들에게 흙의 숨결을 느끼라고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무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장 당장에 성과를 내서 열매를 거두는 일에 쫓기는 이들에게 과정의 아름다운에 눈뜨는 기쁨을 말하는 것은 지루한 설교나 이미 다 알고 있는 훈계를 반복하는 것이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시인 신동엽은 어느 날 창가에서 밖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이런 시를 남겼습니다. <창가에서>라는 제목이 붙은 작품입니다.
“창가에 서면 앞집 담 너머로 버들잎 푸르다/뉘집 굴뚝에선가 저녁 짓는 연기 퍼져 오고/이슬비는 도시 위 절름거리고 있다/석간을 돌리는 소년은 지금쯤 어느 골목을 서둘고 있을까?//바람에 잘못 쫓긴 이슬방울 하나가 내 코 잔등에 와 앉는다/부연 안개 너머로 남산 전등 불빛이 빛 무리져 보인다/무얼 보내신 이가 있을까/그리고 무엇은 정말 땅으로만 가는 것일까/정말 땅은 우리 모두의 열반일까//창가에 서면 두부 한 모 사가지고 종종걸음치는 아낙의 치맛자락이 나의 먼 시간 속으로 묻힌다”
시인은 서울 어느 길목의 정경을 표현하고 있으나, 사실은 자신의 마음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면 아무 것도 아닐 듯한 자연의 몸짓이 보이고 이웃의 고단하면서도 정겨운 삶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는 이 모든 생명의 움직임 저 뒤에 있는 어떤 섭리에 대한 질문과 함께 결국 흙으로 가는 생명의 귀환을 주시합니다.
그러기에 그의 마음은 자신에게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마음의 창을 열고 사는 까닭에 그의 영혼에는 세상의 숨결이 느껴지고 있습니다. 도시의 위용에 짓눌리지 않고 피곤한 일상으로 지쳐있지 않습니다. 숨을 쉬고 있는 것들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 그의 시선 속에 담겨져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신이 어떤 숨을 내쉬고 있는지도 모르게 되고 있는 것은 자신의 생명이 어떤 지경에 있는지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딛고 사는 흙의 숨결조차 미처 감지하지 못하고 어디론가 그 목적지도 잘 모르면서 질주하는 삶은 결국 언젠가는 귀환해야 할 자리에 대한 무지로 일관하며 사는 안타까움에 통합니다. 풀 한포기 자라난 흙 한 덩이 손에 감싸쥐고 숨 한번 깊게 들이마시는 그런 시간, 우리에게 생각지 못했던 행복 가져다줄 겁니다. 그 속에 우리에 대한 하늘의 깊은 사랑이 담겨져 있답니다.
*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 센타"(오후 4시-6시/www.ebs.co.kr )에서 하는 5분 칼럼을 프레시안과 동시로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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