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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추억'이 묻고 있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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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추억'이 묻고 있는 것은?

김민웅의 세상읽기 <66>

한때 악명을 떨쳤던 경기도 화성지역의 연쇄살인은 그곳 주민들에게 깊은 공포감을 주었고, 우리사회를 배회하는 유령 같은 폭력의 한 면모를 드러내주었습니다. 얼굴 없는 폭력 앞에서 사람들은 움츠러들었고, 진상을 규명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이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2003년 개봉작 영화 <살인의 추억>은 이야기의 겉은 강력반의 살인사건 수사로 되어 있지만, 그 속은 깊이 응시해보면 “시대가 은폐한 의문사”를 떠올리게 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곳곳에 삼입, 등장시키는 전두환 군사정권의 흔적들은 이 작품이 정작 말하고 싶은 메시지가 다른 곳을 지목하고 있음을 암시해 주고 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원인 모르게, 그리고 누군가에게 의해 계속 죽어가고 있었고 가장 중요한 목격자조차 결국 그를 향해 달려오는 기차가 상징해주고 있듯이 거대한 힘으로 졸지에 압살당하고 맙니다. 목격자가 어릴 때 화상을 입고 어딘가 모자란 모습으로 나오는 것은, 범죄현장을 두 눈으로 목격했던 그러나 진실을 말할 수 없었던 시대의 정체이기도 했습니다.

짐작이 가는 데가 있는 듯 하면서도 분명하게 짚어낼 수 없는 추리적 현실은 애꿎은 이만 계속 희생시키면서 정작의 범인은 밝혀내지 못하고 사건은 미궁으로 일단락됩니다. 그저 제3의 타자로만 보였던 이들이 사건의 희생자가 되자 서울에서 파견된 수사관은 거의 미칠 듯이 되어 자신이 지목한 대상에 대하여 분노로 격발된 난사(亂射)의 유혹에 빠지기도 합니다.

애초에 수사를 맡은 화성 현지의 형사는 시간이 흘러 녹즙기를 파는 조그만 기업체의 사장으로 변신해있게 됩니다. 수사관으로서의 그의 독한 눈은 어느새, 거래처와 유들유들하게 전화를 주고받는 이의 눈길로 바뀌어 있게 됩니다. 한때 어떻게든 진범을 찾겠다며 과학수사를 내세워 수많은 목욕탕까지 일일이 가서 소위 잠복근무로 피부가 물에 부푸는 것을 감수했던 치열한 모습은 그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이제 그저 평범한 생활인으로서 아이들을 훈계하고 가정을 지켜내는 보통의 가장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그가 어느 날 우연히 화성의 사건 현장을 스치게 됩니다. 그는 차에서 내려, 사건당일 사체가 숨겨져 있던 덮개가 있는 도랑에 몸을 굽히고 과거를 회상하게 됩니다. 그런 그에게 어떤 아이가 지나다가, 얼마 전에도 어떤 사나이가 자신이 한 일을 돌이켜보기 위해 이곳에 와 꼭 그렇게 하고 갔다고 말합니다.

순간,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사건에 대한 온갖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그의 눈빛은 예전의 수사관의 것으로 변하게 됩니다. 영화는 거기에서 멈추지만, 관객에 대한 질문은 도리어 그로부터 시작됩니다.

70-80년대의 격렬한 시기에 우리는 시대적 진통을 겪었고 그런 가운데 무수한 의문의 희생을 치러냈습니다. 그러다가 탈냉전의 기류가 세상을 바꾸기 시작했고, 이른바 세계화라는 화두 앞에서 자본의 시대가 홍수처럼 열리면서 역사와 마주하는 의식은 퇴색되어갔습니다. 봉고차에 녹즙기를 싣고 다니는 모습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정수기를 팔러 다닌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러면서 화성의 현실은 은폐되거나 망각되어갔던 것입니다.

소시민으로서의 삶에 몰두한 시간들 속에서 한때 그의 존재에 열정과 흥분과 보람을 주었던 일들은 추억의 한 파편에 지나지 않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의 예기치 않았던 증언은 말하자면, 역사의 진실을 향한 규명의지로 다시 그에게 불꽃을 일으키게 됩니다. 잊고 있던 것들의 갑작스러운 각성이 그를 돌연 휩싸고 돌았던 것입니다.

최근 식민지시대 미화발언을 비롯하여 이 시대 반민족적 우파들의 망동이 거듭되는 가운데 일본의 동북아 제패야욕까지 노골화되면서 우리는 잊고 있던 시대의 역사적 진실에 눈을 새롭게 뜨고 있습니다. 그냥 이렇게 넘어가서는 아니 되겠구나 하는 집단적 각성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 우려가 있다면 우린, 거의 언제나 불불 들끓었다가 시간이 지나면 그게 언제였느냐 하는 식으로 식어버리고 마는 단기의 민족이 되서는 아니 될 터인데 말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의 이라크 침략 2주년이 곧 다가 옵니다. 오는 3월 20일이 그 날입니다. 이라크 파병 반대의 물결도 낮아지고 반전운동의 열기가 가라앉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파병결정의 희생자 김선일씨 피살사건 이후 비등했던 반전여론도 자취를 감추어버린 듯 할 지경입니다. 시대가 은폐하거나 망각되기를 원하는 일들에 대한 우리의 규명의지는 이리도 약한 것일까요? 영화 <살인의 추억> 마지막 장면은 여전히 묻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역사에서 감당해야 할 몫이 무엇인가 하고 말입니다.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 센타"(오후 4시-6시/www.ebs.co.kr )에서 하는 5분 칼럼을 프레시안과 동시로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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