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역사에서 중세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거대한 첨탑과 철벽같은 신학 그리고 영주의 군대가 지키고 있는 보편적 질서였습니다. 무겁고도 위압적인 건축양식은 인간의 자리를 박탈했고, 그 대신 신의 이름을 앞세운 자들의 횡포와 수탈의 체제를 시대의 상식으로 만들어 주고 있었습니다.
“노트르 담(Notre Dame)”은 영어로 Our Lady, 즉 성모 마리아를 의미했습니다. 그런 이름이 붙은 가톨릭 성당은 그렇게 어머니의 품과 같은 곳이 되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와는 반대로 부권적 질서의 일방통행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중세 파리의 노트르 담은 그래서 이 모든 질서의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빅토르 위고의 원작 <노트르 담의 곱추>를 바탕으로 만든 뮤지칼 <파리의 노트르 담>은 바로 이러한 중세적 현실을 뚫고 일어선 사랑과 해방의 영혼을 곱추 콰지모도에게 투영시키는 데 주력하게 됩니다. 그는 단지 그가 사랑하게 된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의 수호자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곱추와 부랑자, 집시와 가난한 자들을 총칭해서 대변하는 자유의 새로운 각성으로 부각됩니다.
내면의 욕망을 중세적 금기로 스스로 억압하면서 비틀려간 수도사에게 길러진 콰지모도는 자신을 학대하는 억압자에게 도리어 충성을 바치며 복종하는 민중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그에게 사랑의 불꽃이 일어나자 이 모든 것을 바라보는 그의 세계관은 일시에 변하고 맙니다.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한 놀라운 각성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 중세적 질서로부터 추방당하고 묶인 일체의 민중들과 하나가 되어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엽니다. 그의 곱추 형상은 단지 추한 외모에 담긴 그의 내면적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모순과 억압에 짓눌려 있는 존재를 보여줍니다. 그와 동시에 콰지모도와 에스메랄다의 만남은 무엇으로도 묶을 수 없는 인간 영혼의 투쟁적 미학과 함께 그로 나타나게 되는 역사의 힘을 상징해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뮤지칼 <파리의 노트르 담>에서 역을 맡은 콰지모도는 놀라운 힘을 뿜어냈습니다. 그의 온 몸을 통해 절규하듯이 토해져 나오는 소리는 오랜 억압의 현실을 뚫고 나오는 시대의 육성처럼 들렸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치 그것은 우리의 판소리처럼 내장 깊숙이 쌓여온 소리들이 지닌 탄력을 드러내주었습니다. 이는 다만 무대 위의 연기가 아니라, 자유의 정신을 불태운 프랑스 혁명의 역사를 의식한 존재의 행동으로 여겨졌습니다.
한 가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콰지모도가 노트르담 성당의 종지기였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이후 콰지모도의 변화를 통해 좀더 확대해서 보자면, 중세의 시대적 한계에 갇혀 있던 정신을 깨어나게 하는 종지기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주목하게 됩니다. 한 시대의 영혼을 울리는 종을 온 몸으로 매달려 울린, 치열한 투혼의 현장이 그곳에 압축되어 있는 것입니다.
콰지모도는 무시당해왔으며 모욕의 대상이었고 한 시대의 저주처럼 여겨진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도리어 그 시대의 족쇄를 푸는 해방자가 되었고 사랑의 영원한 힘을 끝까지 목숨으로 지켜낸 아름다운 인물로 남게 됩니다. 콰지모도는 중세 억압의 산물이지만, 그러나 거꾸로 그는 이 중세의 억압을 파탄시키고 새로운 시대의 전령으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시켜줍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의 중세적 한계를 돌파하는 종소리는 어디에서 울리는 것일까요? 적지 않은 이들이 이 시대의 주변에서 여전히 추방당해 있고, 경계선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희망을 품는 일이 정지당한 이들이 있는 것입니다.
민주노총은 지금 격동의 혼란 속에서 좌표를 잃은 난파선같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콰지도모처럼 온 몸으로 이 시대의 영혼을 울리는 종을 치겠다는 새로운 각오와 각성이 있게 된다면, 자본의 철벽으로 둘러쳐진 노트르 담은 내일의 희망을 향해 문을 열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치열한 육성이 역사의 무대를 감동시키는, 그런 모습 우리 기대해볼 수는 없는 것일까요? 김민웅의 세상읽기였습니다.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 센타"(오후 4시-6시/www.ebs.co.kr )에서 하는 5분 칼럼을 프레시안과 동시로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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