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책의 세계에만 파묻혀 있던 50대의 한 여교수, 비비안 베어링은 어느 날 자신이 난소암에 걸린 사실을 알고 현실의 비극적 얼굴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녀의 전공은 17세기 영시의 최고봉 <존 던>이었는데, 그는 죽음에 대한 시적 비유에 절정의 경지에 이른 인물이었습니다. 따라서 비비안은 삶과 죽음의 문학적 지평을 꿰뚫고 있다고 스스로 여겼다가 깊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존 던의 싯귀, “죽음이여, 자만하지 말라”를 자신감 있게 강의해왔던 그녀는 정작 자신의 죽음 앞에서 이 모든 문학적 현란함과 시적 통찰이 무력해짐을 절감하게 됩니다. 어려운 공부의 과정을 통과하고 쉼표 하나 없이 성취의 고지를 향해 질주해왔던 대학교수라는 자신의 인생이 의학적 연구 내지는 연민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린 인간적 초라함으로 그녀는 괴로워하게 됩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암의 고통을 통해 그녀는 새롭게 태어나게 됩니다. 죽음의 비수가 기습적으로 찌르는 아픔을 견디어 내면서 그녀가 독백하듯이 내뱉는 말 한 마디, “아, 이 고통은 매우 교육적이야”는 비비안이 무엇을 깨달아 가는가를 보여줍니다. 결코 더 이상 붙잡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집착과 시간의 경계선 너머에 있는 것들에 대한 암울한 두려움 모두를 그녀는 아무 미련 없이, 그리고 아무런 구차한 떨림도 없이 자신에게서 떠나보낼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은총이란 이렇게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오기도 하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그녀는 평생을 예민하게 신경을 곤두세우며 살아왔던 모습에서 인생을 진정 따뜻하게 감쌀 줄 아는 존재로 변화하게 됩니다. 이제껏 자신이 가볍게 여겼던 주변에 대한 사랑, 쉽게 말했던 희망의 진정한 무게, 그리고 죽음조차 죽일 수 없는 자신의 꿈, 인생에 대한 깨우침 그리고 영원을 향한 여정에 대하여 그녀는 평온하게 잠들어가면서 온 몸으로 말합니다. 인생에서 진정한 승리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확인시켜주면서 말입니다.
명연기자 윤석화가 연극 <윗트(Wit)>에서 열연한 비비안 베어링은 소멸해가는 시간을 넘어서는 지점에 서 있는 영원한 아름다움으로 우리에게 깊게 각인됩니다. 암 치료의 과정에서 머리카락이 빠지는 모습을 연기하기 위해 삭발까지 한 그녀의 작은 체구는 분명 작지 않은 무대를 꽉 채우면서 꺼질 듯한 촛불의 결코 사라지지 않을 환영(幻影)의 미학을 감동으로 드러냅니다.
풍요한 감정을 담고 있으면서도 적당한 고비에서 절제된 대사와 의미 있게 순간적 변화를 주는 연기의 깊이는 <윤석화>라는 이름이 허명이 아님을 확인시켜줍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그녀의 몸짓과 육성을 통해 무대 위에서 전율처럼 파장을 일으키는 인생의 진실을 토하는 고독한 고백이 갖는 독한 일깨움입니다. 윤석화이기에 가능했던 표현인 동시에, 그건, 죽음조차 죽일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우리의 의지가 우리에게는 얼마나 있는가를 묻는 습관을 어느새 상실해버린 이 시대에 대한 소중한 자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암은 물론 육신의 병이기도 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자초한 정신의 황폐함에서 비롯되는 결과일 수 있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온갖 스트레스를 감당해내고 그러다가 자기 안에서 자라고만 병은 몸과 영혼의 어느 자리를 돌처럼 굳어버리게 만들고 그것이 뭉치고 뭉쳐 자신을 파괴하는 사태까지 벌이게 됩니다.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살면서, 사실은 자신에게 진실로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 영원의 시간까지 가져갈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서 질주해버린 결과인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폭력으로 멍들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일부가 모두에게 암이 되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외과수술로 도려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생명의 기운이 득세하도록 하면 된다고 합니다. 현실의 심각성을 보면 모두가 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여전히 아쉬운 것은, 우리가, 이 사회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진실로 승리하는 길이 무엇인지 일깨움을 줄 만큼 성숙하지 못하다는 사실입니다.
윗트의 비비안 베어링이 말했듯이 이 고통이 매우 교육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인생의 진실에 눈뜨는 시간이 될 수 있으면 합니다. 학교 폭력은 우리의 미래가 망가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세상의 악한 힘들이 모두 합세해서 공격해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 그런 선의 의지가 우리 안에서 영원한 위력을 발휘했으면 합니다. 이 과정이 온 몸을 훑어 쪼아버리는 듯한 고통을 겪게 한다 해도 그로써 새로운 시간이 열린다면, 지금의 시간은 미래의 어느 시간에 “악이여, 자만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증명해주는 사건으로 남을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 센타"(오후 4시-6시/www.ebs.co.kr )에서 하는 5분 칼럼을 프레시안과 동시로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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