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미국의 초인 콤플렉스, 그 이후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미국의 초인 콤플렉스, 그 이후

김명훈의 '영화, 영어, 그리고 미국' <26> ‘The Incredibles’

작년에 나온 미국의 애니메이션 영화 중에서 가장 우수한 작품인 ‘인크레더블’(The Incredibles)이 갖고 있는 하나의 중요한 하위텍스트는 평등주의(egalitarianism)에 대한 거부이다. 초능력을 가진 영웅들에게 일반인처럼 평범하게 살라고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것이 이 영화가 하고자 하는 말이다. 슈퍼 히어로가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음모를 꾸미는 땅딸막한 악인 신드롬(Syndrome)의 선언은 그 하위텍스트의 핵심으로 읽힌다.

“Everybody will be super, which means no one will be.”

모두가 특출(super)하게 되면, 결국 아무도 특출하지 않게 된다는 얘기다. 영화는 그런 발상이야말로 악(惡)이라고 말한다.

‘아이언 자이언트’(Iron Giant · 1999)를 만든 브래드 버드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인 이 영화는 제목의 ‘미스터 인크레더블’과 그의 가족을 평범한 중산층 교외지역의 일상에 가두어 놓고, 범인(凡人)들의 우매한 무사안일주의가 만들어 낸 그 상황이 얼마나 부조리한 것인지를 보여주려 한다. 픽사(Pixar) 작품으론 처음으로 PG 등급을 받은 이 영화의 이 메시지는 그 부조리의 영문을 모를 아이들을 겨냥한 것은 아닐 터이다. 영화가 선사하는 픽사 특유의 재치 넘치는, 멋지고 날렵한 액션의 경쾌함 속에는 어른들의 사회, 나아가 세계 질서에 대한 주장이 담겨 있다.그 주장이란, 일반인에게 없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며, 그들이 그 능력을 행사하는 권리와 이를 수반하는 특전을 가로막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다. 즉 세상은 절대 평등할 수 없는 바, 남다른 파워를 가진 자들은 그 파워를 사용하게 내버려 두어야 세상이 제대로 돌아간다는 얘기다. 미국에서는 지천으로 널려있는 듯한 슈퍼 히어로에 대한 익살스러운 풍자로 시작하는 이 영화의 결론은 결국 이것이며, 그렇기에 이 영화는 지금 시대의 미국을 생각하게 하는 알레고리로 와 닿는다.

미국만큼 초인 콤플렉스를 끌어안고 사는 나라는 이 세상에 없다. 서부개척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른바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의 개념과 2차 대전을 전후로 고착화한 미국 승리주의(American triumphalism)가 교미하여 낳았다고 할 수 있는 이 슈퍼 히어로 콤플렉스는 미국이 자연의 질서와 인간의 한계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원동력이 되어 왔다. 불가능이나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그 초인 콤플렉스의 원천에는 자신이 선(善)이라는 확신 아래 인류를 악으로부터 구하겠다는, 자못 도그마적인 사명감이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도그마적 사명감은 영화 초반에 미스터 인크레더블(목소리 역 크레이그 T. 넬슨)이 내뱉는 다음의 말에 담겨있다.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는 임무를 홀로 짊어진 슈퍼 히어로의 말이다.

“No matter how many times you save the world, it always manages to get back in jeopardy again. I feel like the maid; ‘I just cleaned up this mess! Can we keep it clean for… for 10 minutes!’”

“몇 번이나 세상을 구제해도, 항상 다시 위험에 빠지고야 말아. 꼭 가정부가 된 느낌이야. ‘방금 이 어지러운 것을 치웠잖아! 한…한 10분만이라도 깨끗이 유지할 수 없나!’”

‘인크레더블’은, 이 같은 사명감에 불타는 슈퍼 히어로들이 ‘임무수행’을 하는 중 본의 아니게 발생하는 공공시설 파손과 여타 간접적 피해(collateral damage)에 대한 반발여론, 그리고 이에 따른 ‘반(反) 슈퍼 히어로 소송’이 잇따라 제기되면서, 정부가 이들 슈퍼 히어로들에 대한 활동금지령을 내린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초능력 영웅들이 마음대로 거리에서 활약하던 시대가 된서리를 맞은 것이다. 그 후로 15년이 지났고, 미스터 인크레더블은 자신의 전성기 때 우연히 만나 눈이 맞았던 일래스티걸(Elastigirl, 목소리 역 홀리 헌터)과 결혼하여 교외에서 아이 셋을 키우고 있다. 법으로 집 바깥에서는 초능력을 사용하는 것이 금지되어 되어있는 그들이 이제 너무도 평범한 중산층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는 모습은 가련하기까지 하다. 버드 감독은 왕년의 미스터 인크레더블의 직장을 보험회사로 설정하고, 또 그가 자신의 똥배 나온 육중한 몸집을 자그마한 승용차에 꾸겨 실은 채 출퇴근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 가련한 느낌을 증폭시킨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가 평범한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다는 사실은 그와 그의 가족이 함께 언젠가 다시 사용하게 될 초능력에 티없는 도덕성을 부여해 주는 효과를 갖는다.

(사실 이 영화의 설정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가족이라는 사회 단위이다. 때문에 그 의미를 살리려면 제목은 ‘인크레더블’이 아니라 ‘인크레더블스’라고 번역해야 맞다. 그냥 ‘인크레더블’이라고 하면 그저 ‘놀라운’이라는 빗나간 뜻이 돼 영화의 핵심 설정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원제 ‘The Incredibles’는 ‘인크레더블씨[Mr. Incredible] 가족’이라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인크레더블씨 가족에게 새로 주어진 성인 ‘Parr’ 의 경우도 ‘Parr씨 가족’이라고 할 때 ‘the Parrs’라고 하면 된다. 곁가지로 한마디 보태자면, ‘Parr’라는 성은 ‘평균’ 또는 ‘표준’을 뜻하는 ‘par’의 동음어로, 평범한 일상에 갇혀 있는 인크레더블씨 가족의 상황의 아이러니를 더욱 농후하게 만드는 재치 있는 언어유희다. 인크레더블씨 부부의 이름인 ‘Bob’과 ‘Helen’도 미국에서 가장 흔하고 개성 없는 이름에 속한다.)이름도 심심하기 짝이 없는 ‘밥 파’로 바뀐 미스터 인크레더블은 같은 처지에 몰린 동료 슈퍼 히어로 프로존(Frozone, 목소리 역 사무엘 잭슨)과 함께 차 속에 앉아 경찰라디오를 엿들으며 무슨 잔챙이라도 때려잡을 수 있는 건수를 찾으려 한다. (프로존도 사랑하는 아내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 한때 세상을 풍미하고 불가능한 것이 없었던 슈퍼 히어로들이 일개 자경단원(vigilante)의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여기에서 이들 처량한 슈퍼 히어로에 대한 관객의 동정심은 극치에 달한다. 공공시설 파손과 민간인의 간접적 피해야 어떠하든, 초능력을 가진 영웅들은 그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 영화가 능숙하게 이끌어내는 반응이다.

1939년 슈퍼맨이 당당한 모습으로 하늘을 날아다니기 시작한 이래, 그 동안 미국에서는 수천에 달하는 슈퍼 히어로들이 탄생했다. 현재 마블 코믹스(Marvel Comics)사가 소유하고 있는 슈퍼 히어로 캐릭터는 4천7백개가 넘는다. 이 중에는 다소 그늘진 면을 갖고 있는 슈퍼 히어로도 많이 있다. X Men, 데어데블, 스파이더맨, 배트맨 등은 모두 성장배경이나 초능력을 얻게 된 과정이 어둡고, 실존적인 문제로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하는 고뇌형 슈퍼 히어로들이다. 그들을 통해 미국의 초인 콤플렉스는 그나마 단순하지만은 않은 심리세계를 갖추게 되었다. 이런 고뇌형 슈퍼 히어로들을 통해 우리는 초능력을 지닌 자가 자신의 슈퍼파워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함을 상기하게 된다. ‘스파이더맨’(영화)에서 나오는 다음의 말은 수시로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그것을 모르기야 하겠냐마는, ‘인크레더블’의 슈퍼 히어로 가족에게는 실존적 번뇌가 없다. (위에서 전제한 것처럼, 이 영화는 애니메이션이지만 아이들만을 위한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나무랄 데 없는 모범적 가족일 뿐이며, 그저 발랄하고 귀엽기만 하다.

어쨌든 피할 수 없는 결론이었겠으나, 이처럼 친근감이 가는 영웅들을 거부하기가 힘들다. 시니시즘에 흥건히 젖어있지 않는 이상, 결국 미스터 인크레더블과 그 가족이 지구의 운명을 책임지는 것을 환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기야 슈퍼파워를 가진 자들이 인크레더블씨 가족처럼 순진하고 완벽한 도덕성을 갖춰 준다면 그 누가 걱정을 하겠는가.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