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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2년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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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2년의 자리

김민웅의 세상읽기 <60>

동화작가 정채봉의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라>라는 글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습니다. “세탁소에 갓 들어온 새 옷걸이한테 헌 옷걸이가 한마디 하였다. `너는 옷걸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말기를 바란다.' `왜 옷걸이라는 것을 그렇게 강조하시는지요?' '잠깐씩 입혀지는 옷이 자기의 신분인 양 교만해지는 옷걸이들을 그동안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완장을 차는 순간, 사람이 돌변해버리는 사태가 왕왕 벌어집니다. 지금까지 발휘하지 못했던 좋은 능력을 펼치는 것이라면 모르겠거니와, 완장의 위세와 자신의 존재 자체를 동일시하고 만다면 그건 비극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그 사람 자체의 파멸이 진행되는 과정이 되기 십상일 것입니다.

이는 사람이 자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리가 사람을 만들어 버리는 셈인데 그런 경우는 결국 그 사람의 깊이에 중대한 문제가 있음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완장을 떼어내는 순간, 그에게 남는 것은 그 인간 본질의 사라지지 않는 힘이 아니라, 초라한 무력감이 되기 마련입니다.

리차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에 등장하는 특이한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은 모두가 지상의 먹이를 향해 곤두박질 칠 때, 창공을 향한 비상(飛上)의 훈련에 전력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건 자신에게 날개가 주어진 것이 다만 해변가를 돌아 먹이를 구하는 비행술로 자족하라는 정도의 의미가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깃털 속 사이사이에 평소와는 다른 그 어떤 신비한 충만감을 느끼게 하는 바람을 가르며,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도전의 환희와 열정을 공급하는 시도에 벅차하는 존재로 자라나는 기쁨이 거기에 있는 까닭입니다. 세상이 상식으로 규정하는 모습, 질서, 위치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꿈틀거리며 솟구치는 꿈의 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 존재는 아마도 분명, 포장으로 내세워지는 모습보다는 그 내공의 진실을 주시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그에게는 처음과 끝이 본질적으로 일관되고 그걸 드러내는 방식의 변화 내지는 성숙의 차이만 있을 뿐일 것입니다. 그걸 누구도 변질 또는 변절이라고 부르지 않으며, 새로운 깊이를 더해가는 놀라움이라고 여길 것입니다. 그런 이는 어떤 자리와 위치에 있다 해도 그 자리와 위치로 해서 그가 잘나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로 말미암아 그 자리와 위치가 빛나게 되는 경이로움을 사람들에게 체험하게 해줄 것입니다.

<길>이란 본래부터 어디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니고, 누군가 그 길을 가기로 마음먹고 첫발자국을 옮긴 사연이 있기 때문에 태어난 인생사의 자취일 것입니다. 그 어디에도 길이 난 바가 없는 지점에서 길을 간다 함은 따로 금을 그어 그대로 따라가면 되는 식이 아니라, 안개 속을 더듬 듯하면서 하나하나 새겨나간 고투의 흔적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가보지 않았던 방향으로 발길을 돌리는 역사의 행로는 더더욱 그 미지의 역정으로 인해 예기치 않은 곳에서의 가파른 형세를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중요해지는 것은, 이 길의 안내자가 되는 이들의 내면에 담긴 <진실의 내공>일 것입니다. 길잡이로 나서는 것은 완장을 찼다고 되는 것도 아니며 안내자의 제복을 입었다고 저절로 완성되는 과정도 아닙니다.

고산자(古山子) 김정호 선생의 <대동여지도>는 조선조의 관료적 요구에 맞춘 기존 행정체계를 중심에 놓고 사고하는 지리학적 관점이 아닌, 우리 산하의 혈맥을 관통하는 생명의 흐름을 잡아내는 통찰력과 그걸 자신의 발로 밟고 다니면서 실증해보인 힘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그의 지도에는 백두대간을 뼈대로 하는 이 땅의 기세가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는 마치, 백성들의 삶이 이 땅이 뿜어내는 생명의 기와 만나기를 바라는 염원이 비밀스럽게 담겨있는 듯 합니다. 그건 이 땅에 살고 있는 백성들에 대한 깊고 깊은 사랑이 아니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었던 노작입니다.

결국 지도자의 위치에서 국운의 길잡이가 되는 이들은 자신들이 입고 있는 옷이나 차고 있는 완장 또는 앉아 있는 자리로 역사의 운명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보다 앞서서 내공의 훈련을 절실하게 쌓아가는 가운데 새로운 길을 향해 가려는 진실한 용기, 그리고 이 땅의 백성들에 대한 말할 수 없는 사랑으로 생명의 역사를 열어나가려는 꺾이지 않는 진심일 것입니다.

오늘, 참여정부 2주년을 맞이하는 2005년 2월 25일이군요. 어떤 처음이었고, 지금 어떤 지점에 와 있는지 스스로 정확하게 확인하고 있을까요?

*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 센타"(오후 4시-6시/www.ebs.co.kr )에서 하는 5분 칼럼을 프레시안과 동시로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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