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이 다른 직장에 다니던 안전관리 전문가를 구두로 정규직으로 채용해 그 직장을 그만두게 하고 한달여 동안 당사에서 일을 시킨 뒤 "당 사정이 어렵게 됐다"며 재정적 이유로 일방적으로 해고해, 부당해고 논란이 일고 있다.
***해고된 강모씨 "그야말로 황당"**
26일 민노당에 따르면, 민노당은 지난해 12월말 정책위원회 산하 연구원 4명을 채용한다는 계획하에 우선 건설교통, 안전관리 담당 2명을 구두 채용해 두 달 가까이 일을 시켜오다가, 지난 설 연휴 직전 안전관리 담당으로 채용된 강모씨에게 '채용 불가'를 통보했다. "당의 사정이 바뀌었다"는 게 해고 사유였다.
<안전보건신문> 재직 경험이 있는 강씨는 건설관련회사에 다니던 중에 민노당에 채용되자 회사를 그만뒀었다. 강씨는 현재 민노당에서 해고된 후, 실업자 신세다.
강씨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그야말로 황당하다. 애초부터 채용이 확실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출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건 상식 아니냐"며 "해고 당시 '당의 사정이 그러니 이해해달라'고 하더라. 민노당의 '양적 성장에 걸맞지 않는 질적 답보상태'의 피해자가 된 게 굉장히 불쾌하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민노당원이기도 한 그는 "더 이상 할 말도 없고, 말 한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지도 않다"고 당에 대한 극도의 불신을 표시한 뒤, "그러나 이 문제를 법정으로 끌고갈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아직 당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강씨는 취업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 힘든 지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일자리를 찾고 있다.
하지만 강씨가 이를 법적으로 문제삼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음에도 강씨 해고 사건은 민노당 정책위원회와 정책위 소속 연구원들을 격노케 했으며, 이들 가운데서는 "1인시위를 해서라도 부당해고를 철회해야 한다"는 격한 소리까지 터져나오는 등 파장이 계속되고 있다.
***민노당 "인턴이었을뿐, 부당해고 아니다"**
인사책임자인 주대환 정책위의장은 강씨 해고 이유와 관련, "연구원 티오(TO) 4명 모두를 뽑을 생각을 하고 강씨에게 채용을 약속하긴 했으나 그후 사무총국이 '재정문제 등으로 2명 이상은 안 된다'고 해 그렇게 됐다"고 밝혔다.
주 의장은 그러나 부당해고 논란과 관련해선, "그간 당에서는 시민단체에서 그만둔 친구들이 잠깐씩 일하기도 했으며 강씨 역시 원서를 내놓은 상태에서 인턴 비슷한 개념으로 일한 것일 뿐 공식 발령은 나지 않은 상태였다"며 "발령내기 전에 사무실에서 일을 못하게 하지 않은 게 잘못이라면 잘못일 뿐 부당해고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미 와서 일하고 있고 안 있고는 공식 발령의 기준이 아니다"라며 "채용 당시 채용이 안 될 가능성에 대해 딱히 언질을 주진 않았지만, 공식 발령이 나지 않았으면 (안될 가능성도 있는 것)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동전문가, "제소하면 100% 부당해고 판결 나올 것"**
그러나 노동전문가들의 판단은 다르다.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이번 사태와 관련, "이번 사례는 강씨가 민노당 측으로부터 수차례 채용 약속을 확인했고 실제로 한달이 넘게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식 계약서가 없어도 사실상 고용 계약이 성립된 것"이라며 "노동위나 법원에 제소하면 100% 명백한 부당 해고 판결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강씨는 민노당에서 일하기 위해 전 직장을 그만뒀고 또 당에서 일하는 동안 구직 활동에도 제약을 받았다"며 "강씨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경제적·정신적 피해까지 감안해 일종의 '취업 사기'로 충분히 민노당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할 수 있는 건"이라고 소견을 밝혔다.
***"당의 주먹구구식 인사시스템 드러내"**
홍승하 민노당 대변인은 이번 사태와 관련, "그간 당 사업에 시민단체 사람들이 특별한 보수 없이 일해주고 그러다가 채용되기도 하는 등 인사가 주먹구구식이었다"며 "이번 사건은 당에 아직도 그런 관행들이 온존해서 발생한 일"이라고 잘못을 시인했다.
민노당의 노무사 출신 윤성봉 연구원도 "이 사건은 당이 명백하게 잘못한 것"이라며 "일반회사에서는 보통 비공식적 채용 약속으로 일 시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당의 기본적인 의사결정구조와 인사시스템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당 환경위원회의 한 당원은 "이번 일은 환경과 과학기술에 대한 당의 인식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라며 다른 시각의 지적을 내놓았다. 그는 "대구 지하철 방화 사건과 같은 대형 안전사고에서 알 수 있듯이 각종 안전관리는 시민들의 삶과 밀착된 문제로 민노당이 이에 대한 정책 역량을 쌓아 적극적으로 이슈화한다면 기성 정당과 차별화할 수 있는 부분"이라며 "민노당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데 과감히 투자하지 않는다면 맨날 기성정당의 뒷꽁무니만 쫓는 신세에 머무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노동자들은 "내 자신이 일방적으로 대체가능한 물건처럼 취급되는 게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었다"고 토로해왔고, 민노당도 '고용안정'을 최우선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어왔다. 민노당이 과연 이번 사태를 어떻게 처리할지 예의주시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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