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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게, 밖에서, 늘려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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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게, 밖에서, 늘려 살자"

[화제의신간] 이일훈씨의 신간 <모형 속을 걷다>

'채 나눔'의 건축가 이일훈씨가 건축 이야기집 <모형 속을 걷다>(솔 펴냄)를 펴냈다. 건축의 결론은 사람이라는 원칙을 바탕으로 집과 자연과 사람이 소통할 수 있는 집짓기를 하고 있는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작품들을 되돌아보며 건축과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펼쳐 보이고 있다.

<사진> : 이일훈, <모형 속을 걷다>(솔 펴냄, 2백62쪽, 9천5백원).

20여년간 건축판에서 일하며 그가 작품에 담아온 설계 방법론은 세 가지로 집약된다. "불편하게 살자, 밖에서 살자, 늘려 살자." 이 세 가지를 묶어 그는 '채 나눔'이라는 고유한 방법론을 펼친다. 풀어서 이야기하면 이런 것이다.

'채 나눔'의 '채'는 안채, 바깥채, 사랑채 할 때의 집을 세는 단위인 채를 말한다. 한 덩어리의 집을 여러 채로 나누자는 주장이다. 건축 목적 자체가 큰 공간을 필요로 하는 대형 건물에서 공간을 나누자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형화ㆍ단일화되지 않아도 좋을 유형의 공간들도 무의식적으로 모두가 닮아간다고 그는 보고 있다.

이일훈씨는 환경을 고려한 우리 주거 양식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고민한다. '채 나눔'을 통해 작을수록 나누자는 주장은 건축적 이야기라기보다 사는 방식의 제안이다. 사는 방식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제안하는 것이 건축가가 할 일이라고 본다.

***'불편하게 살기'**

그가 말하는 '불편하게 살기'는 이런 것이다. 지금 우리가 겪는 모든 문제는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다. 특히 개인의 건강과 질병 문제는 인류가 공유하는 환경의 문제와 상호 연결되어 있는 동시에 우리 스스로 자초한 '편리하게 살기'의 부산물이다. 그러나 끝 간 데 없이 무조건 추구하는 편함이야말로 나태와 권태에 이르는 지름길이며 오늘날 겪는 환경오염의 원인은 이 편리한 생활의 후유증이다. '좀더 편하게'를 열망하는 인간의 게으름이 나은 졸작이다.

건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기능을 한군데 모아놓은 대형 건물은 편리한 동시에 예측 못할 사고나 재난 앞에 위험하다. 말하자면 '위험을 감수하는 편리'를 누리는 셈이다. 요즈음 집의 구조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모든 기능을 한꺼번에 집중시킨 가옥 구조는 집약되어 편리한 동시에 채광·통풍이 되지 않아 쾌적하지가 않다. 특히 일년 내내 햇빛이 들지 않는 방에서 생활하면서 아무리 웰빙이니 친환경 소재니 외쳐봤자 눈가리고 아옹하는 식이라 한다. 운동하지 않고 건강식 먹으면 결국 비만해지는 것과 같다.

***'밖에서 살기'**

'밖에서 살기'의 주장도 그렇다. 상자형 모양의 비슷비슷한 건축물이 세계 어느 지방이나 도시를 가릴 것 없이 퍼져 있다. 유리로 막힌 내부 공간은 기계적 장치로 온도ㆍ공기ㆍ습도ㆍ조도가 모두 조절된다. 쾌적한 공간에서 쾌적한 생활을 세계 어느 곳에서나 가능하게 하자. 기계 장치로 그 모든 것은 가능하다. 그것이 근대 건축의 이념이다.

넓은 실내 공간은 밤처럼 낮에도 형광등을 켜야 하고, 넓게 뚫린 유리창은 고정되어 외부와 차단된 채 자연을 잊게 만든다. 그것을 더 잘게 나누어 방들은 미로처럼 획일화된다.

흔히 건축을 유기체라고 말한다. 그 유기적 표현은 공간 구성과 효용의 유기성을 전제할 때 성립하는 것인데 내부 공간의 치열함만 추구하는 건축에서는 유기적 사유와 기능을 발견할 수 없다.

그가 말하는 해법은 이렇다. 기술이나 개념, 주장을 지금 그대로 다 인정하여 활용하고 구사하면서 외부 공간과 내부 공간의 공존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말하자면 안에서만 살기가 아니라 밖에서도 살기를 추구하는 것이다. 내부 공간과 외부 공간의 사이사이에 반내부 공간/반외부 공간이 섞여 있는 유기적 건축, 유기적 공간, 나아가서 유기적인 생활의 그릇이 바로 그런 것 아닐까. 바깥 지향적 사고는 자연으로 한 발 더 가까이 가는 것이다.

***'늘려 살기'**

그렇다면 '늘려 살기'는 무엇인가. 느리게 살기가 아니라 늘려 살기이다. 짧은 동선이 합리적이라는 것 또한 근대 건축 이념 중 하나이다. 동선은 짧을수록 좋다라고 말하는데 짧아야 좋은 것도 있지만 길어서 좋은 것도 있다. '짧을수록 좋다' 속에는 무차별의 획일성과 무모함이 묻어난다.

디지털 방식의 생산과 소통이 일반화될수록 몸에 대한 관심과 중요성은 더욱 더 커질 것이다. 디지털은 아날로그를 위해 쓰이고 성립한다. 그럴수록 사람이 직접 움직이는 동선은 길어져야 한다. 일터의 휴식 동선과 거주하는 공간의 이동 거리를 될 수 있으면 길게 만들고 많은 움직임을 유도하는 공간 구성이 늘려 살기의 핵심이다.

무조건 짧은 동선(공간과 시간)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건축 공간은 사용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저렇게 선택의 폭을 넓혀놓아야 한다. 천천히, 느리게, 빠르게 움직이는 가능성을 열기 위해서는 가능한 대로 공간을 길게 늘려놓아야 한다. 공간의 주인은 사람이므로. 무조건 '빠르게, 짧게'가 요구되는 것은 로봇에게나 강요될 일이다. 늘려지거나 늘어난 공간 속에서 소요하는 시간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빨리 끝내고 멈추는 짧은 동선보다 더 소중하다.

편하고 효율적인 것만 추구하는 요즘, 시대의 흐름에 반하는 그의 건축론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의 주장은 결국 인공적인 환경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최대한 자연과 만날 기회를 주고 하나하나의 일상생활 가운데 생각의 틈을 주기 위함이다. 실내에 있더라도 외부의 공기와 자연을 충분히 접하고, 생활하는 공간과 유기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여지를 많이 만들어준다.

건축은 결국 삶이다. 때문에 우리가 건축가 이일훈씨에게 들을 것은 우리들의 삶 이야기이다. 물리적 공간을 넘어선 삶의 방식을 설계하는 그의 건축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의 의미를, 삶 자체를 되새기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일훈씨는 한양대학교 건축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실무를 익히던 초창기엔 건축평론을 병행했다. 서울시 건축상, 크리악어워드 등 다수의 수상 경력이 있고 건축 작품집 <가가불이> 외 몇 권의 공동 저술이 있다. 경기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 대우교수를 지냈으며 건축스튜디오 '후리'를 꾸려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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