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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더 밀러, <시련의 도가니> 그리고 중세의 족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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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더 밀러, <시련의 도가니> 그리고 중세의 족쇄

김민웅의 세상읽기 <54>

1692년 초, 미국 동부 매사추세츠 주의 작은 동네 살렘(Salem)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소녀들 몇이 집단적으로 앓기 시작하더니 환상과 발작의 증세를 보였습니다. 극도로 완고한 청교도적 원칙에 사로잡혀 있던 살렘에서 이러한 사태가 벌어지자 마을 사람들과 종교 지도자들은 이는 필시 악마의 농간에 의한 짓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살렘의 저 악명 높은 “마녀사냥”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환상에 휩싸여 문제의 진원지처럼 된 소녀들을 비롯하여 마을 사람들은 서로 누군가를 지목하면서 악마와 관련이 있다면서 비난하였습니다. 그간 평소에 증오했거나 감정이 있는 자는 모두 이 비난의 그물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누가 먼저 상대가 마녀 또는 악마와 관계가 있다는 식으로 공개적인 질타를 강력하게 그리고 그럴 듯하게 하는가에 따라 희생자가 결정되는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저 혼자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거짓이 조작되는 상황을 누구도 막기 어려워졌습니다. 거짓 증언이 강요되고 거짓 고백이 뒤에서 거래되는 과정에서 무고한 희생자들이 생겨났습니다. 엄청난 집단적 증오 히스테리와, 관용의 여지가 없는 종교적 일방주의의 횡포가 낳은 비극이었습니다.

그해 여름, 결국 이 병적 마녀 사냥 사태로 19명이 마녀로 지목되어 형장에 끌려갔습니다. 억압적인 종교체제의 논리와 이로 말미암은 자유의 질식에 의한 한창 때의 소녀들의 불만과 저항이 그런 사회 심리적 발작현상을 일으킨 것을 주시하고 정직하게 바라보기 보다는, 근거도 없는 낙인찍기로 일관해버린 중세적 무지와 종교적 응징론에 따른 죽음의 도가니였다고 하겠습니다.

바로 이 역사적 상황을 바탕으로, 미국의 극작가 아더 밀러는 1950년대에 <시련의 도가니(The Crucible)>이라는 제목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게 됩니다. <어느 세일즈맨의 죽음(Death of a Salesman)>으로 퓰리쳐 상을 받아 유명하게 된 그는 50년대 미국을 마녀사냥의 광풍으로 휩쓴 맥카시 선풍의 현실을 바로 이 <시련의 도가니(The Crucible)>를 통해 고발하고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어느 세일즈맨의 죽음>은 미국의 꿈에 대한 미화와 환상이 지배했던 시절, 그 비극적 이면을 일깨워 자본주의의 냉혈적인 요구에 희생되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렸다면 <시련의 도가니>는 그 미국이 세계적 패권을 쥐어가는 과정에서 미국 내부에서 벌인 정신적 억압과 사상의 족쇄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세일즈맨의 죽음>에 등장하는 주인공 윌리는 한참 잘 나가던 직장에서 떨려나고 자식들은 자기를 외면하는 등 초라한 신세가 되자 이렇게 읇조립니다. “열심히 돈을 벌어 이제 집 융자금을 다 갚을 때가 되니 이 집에서 살 아이들은 모두 나가고 없구나”하고 탄식하는 것입니다. 소모품처럼 쓰인 자신의 인생에 대한 회한과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도달한 지점에는 사랑이 상실된 허무만이 남은 아픔을 토로했던 셈이었습니다.

<시련의 도가니>에 등장하는 존 프록터는 마녀사냥의 거짓과 기만에 대하여 굴복하고 말 듯하다가 결국에는 자신의 목숨이 희생되는 것을 마다하고 위증을 거부한 채 형장을 향해 갑니다. 세일즈맨 윌리와, 존 프록터 모두 죽음으로 결말이 나지만 한 사람은 힘없이, 다른 한 사람은 시대의 허구를 돌파하는 의지로 마지막을 마무리 짓습니다.

두 작품 모두, 거대한 힘 앞에 선 개인의 무력함을 드러내주고 있는 동시에 다른 논리와 선택이 허용되지 않고 있는 현실에 대한 정직한 응시와 고발을 그 밑바닥에 깔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 현실을 일방적인 논리로 포장하고 있는 것들 모두에 대한 진실의 육성을 우리에게 들려주려고 합니다.

세간에서는 흔히들 마릴린 몬로의 몇 번째 남편이었다는 식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아더 밀러가 지난 주 89세의 나이로 영면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더 밀러의 모습은 보다 큰 그림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미국의 다른 이면, 그리고 진실”에 대하여 그가 쏟았던 목소리는 세월이 지나 오늘날 우리 사회의 이면과 그 진실에도 유용한 힘을 갖는 듯 합니다.

자본주의 체제의 소모품으로 몰려나가고 있는 인간의 문제를 비롯하여, 특히 북한과 관련한 논의가 있을 때마다 우리는 마녀사냥의 유령이 아직도 끈덕지게 배회하고 있는 <도가니>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건 이미 1600년대 말의 중세적 잔재에 불과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말입니다.

*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 센타"(오후 4시-6시/www.ebs.co.kr )에서 하는 5분 칼럼을 프레시안과 동시로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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