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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의 사랑과 운명의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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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의 사랑과 운명의 순례

김민웅의 세상읽기 <52>

파올로 코엘로의 “Alchemist(연금술사)”는 스페인 안달루시아 산맥의 유랑자였던 목동 산티아고의 정신적 순례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애초에 이국(異國)의 영토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나서는 길로 시작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내면에 자기도 모르게 은닉되어 있던 최상으로 정제된 황금의 발견을 향한 신비로운 여정이 됩니다.

그런데 작가 코엘로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만물에 깃드는 영혼의 흔적과 그 움직임에 깊은 시선을 보냅니다. 그는, 세상의 갖가지 표정은 사실 우리의 삶이 만드는 기록과 일치해가며, 그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그대로 머물고 있다고 여깁니다.

그로써 세상의 길을 밟고 가는 여정과 내면의 순례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이며, 그것은 결국 나의 영혼과 세상의 기운이 서로 다르지 않은 지점에 도달해가는 기쁨이기도 합니다. 내 마음과 세상이 서로 어긋나지 않는 것이며, 나의 영혼과 깊고 깊게 통한 세상만물은 나를 위해 움직여 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마다 세상만물은 그걸 내게 미리 알려오는데, 그 미세한 징조를 눈여겨 알아차린다면 그는 <지혜의 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작품 “연금술사”는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지혜의 왕이란 다른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깨우친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코엘로의 성찰은 인간의 발길이 닿는 자리마다 새롭게 태어나고 그리하여 뿌리내릴 의미에 대하여 생각하게 합니다. 그것은 나의 내면과 이 세상이 서로 만나 이루어내는 연금의 비밀을 터득하는 일이기도 하며. 또한 우주전체에 흐르고 있는 조물주의 뜻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그것은 나를 위해 특별히 마련된 삶의 그림을 찾는 여로일 것입니다. 그 그림 속의 나는 그 어떤 부차적 장치이거나 아니면 그저 바람처럼 지나치는 나그네가 아니라 그 풍경을 가장 압축적으로 잘 드러낸 주연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무대에서 자신이 주인공이기를 원하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그 주인공은 그곳에서 혼자 외롭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모습은 자신의 존재 내면에서 끊임없이 생성되는 생명의 기운을 방황하게 만드는 결과가 될 뿐입니다. 주인공은 홀로 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소년 산티아고는 사막의 한 오아시스에서 소녀 파티마를 만나 사랑하게 됩니다. 소년은 자신이 목동이었던 것과 이집트에 와서 어느 크리스탈 가게에서 점원 노릇을 하면서 지냈던 시절, 그리고 무엇보다도 만물에 깃든 영혼의 언어에 대한 이야기를 그녀에게 합니다.

그러자 소녀 파티마는 그런 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대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주었고, 그리고는 온 세상 만물에 숨쉬고 있는 영혼의 언어를 내게 가르쳐주었어요. 그러자 나는 어느새 당신의 일부가 되고 말았답니다.” 산티아고의 사랑과 고백, 그리고 성찰이 파티마의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새로운 힘이 되었고 그것은 또한 파티마를 산티아고의 삶 속에서 떼어낼 수 없는 존재로 이루어 놓은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잊혀지고, 세월이 지나면 사라지며 보지 않으면 기억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의 언어를 나누어 주고 받는 이들은 서로에게 서로의 일부가 되어 그 모든 것들을 그 몸과 영혼에 새겨갑니다. 그리고 그것은 서로에게 분리될 수 없는 운명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언젠가 쓴 시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그대, 혹 아득히 먼 산을 돌아/밤을 지새우며 걸어도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 해서/우리 사랑이/세월로 지쳐가는 운명이 되는 것은/아니더이다....안으로 더욱 켜켜이 쌓이는 그리움/장승의 키처럼 자꾸만 높아지는 간절함/그리고 속일 수 없는 눈물이/당신 아니고서는 채울 길 없는 하루하루”

우리의 존재 내면은 그 스스로만으로 독자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결국 하늘과 바람과 별을 담아내고 이 삼라만상의 특별한 징조를 함께 기뻐할 이 또는 이들과의 어우러짐인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내 안에 하나하나 새겨진 길을 따라 만나게 되는 사랑과 기쁨, 그건 알고보면 우리 운명의 순례기일 것입니다. 이를 위한 소중한 지도 하나, 오늘 하루의 소멸되지 않는 기록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 센타"(오후 4시-6시/www.ebs.co.kr )에서 하는 5분 칼럼을 프레시안과 동시로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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