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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임금님의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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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임금님의 착각

김민웅의 세상읽기 <49>

어떤 나라에 다소 허황되고 속이 차지 못한 임금님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늘 자신이 남들에게 멋있고 훌륭하게 떠받들어지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인지 임금님 주변에는 거의 언제나 아첨을 일삼는 자들만이 잔뜩 모여들었습니다. 처음 한 명이 비위를 맞출 때에는 그게 아첨인 줄로 알고 있던 임금님은 점점 그 숫자가 늘어나자 나중에는 자신을 치켜세우지 않는 자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놈이다, 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 임금님은 스스로 봐도 별로 잘 생기지 못했고 위풍도 당당한 편이 아니었습니다. 일국의 왕이요 모든 신하들이 다 자신 앞에서 최상의 헌사를 바치고 있기는 했지만 그의 마음 한 구석에는 자신도 부정할 수 없는 열등감이 좀체 지워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겉치장에 상당한 신경을 썼습니다. 왕만이 입을 수 있는 옷과 색깔을 정해놓고 그와 비슷한 것만 걸쳐도 벌을 받게 하는 엄명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가 선택해서 입을 수 있는 옷의 종류와 모양이 점점 줄어들게 된 것입니다. 왕의 옷을 만드는 임무를 맡은 자들은 최선을 다했지만 임금님은 자꾸 불만이 쌓여갔습니다. 아무리 멋있는 옷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다 그게 그거인 듯 하였습니다. 그래서 임금님은 자신을 위해 마음에 꼭 드는 옷을 만드는 자에게는 엄청난 포상을 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자는 엄벌에 처하겠다고 칙령을 공포했습니다.

이에 세상에 내로라는 최고의 의상전문가들이 나섰지만 이 까다롭기 짝이 없는 임금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할 방도가 없었습니다. 임금님은 자꾸 신경이 날카로워졌고, 신하들도 이에 덩달아 어쩔 줄 모르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언제 그 불화살이 자신들에게 쏘아질지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왕의 상을 받으려고 옷을 지어 바치려는 사람들도 이제는 없어졌습니다. 임금님은, 이 나라에 이토록 인재가 없단 말인가 하며 탄식 반 분노 반의 숨을 내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낭보가 전해졌습니다. 어떤 먼 나라에서 온 형제 둘이 베틀 하나를 걸머지고 찾아와 임금님에게 이르기를, “이 신기한 베틀로 짜는 옷감은 마음이 나쁘거나 무지하든지 아니면 자신의 직책에 걸맞지 않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착하고 지혜가 깊은 이들에게는 옷감의 섬세한 결까지 환하게 보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이에 덧붙이기를, “이 베틀은 저 바다 건너 아무개 나라에서 어느 누구에게도 내보이지 않은 국가적 보물인데, 임금님께서 선정을 베푸신다는 소문을 듣고 이렇게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임금님에게 “보십시오, 이 옷감 얼마나 아름답고 진귀합니까?” 하고 견본으로 가지고 온 것이라면서 그 앞에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빈 허공을 가로지르는 이 형제들의 손만 보일 뿐, 있다는 옷감은 어느 누구의 눈에도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신들이 모두 모여 있는 자리에서 임금님은 자신의 눈에 이 옷감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면 그야말로 자신은 나쁜 군주요 무식한 통치자인데다가 직책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왕좌에 앉아 있다는 것을 공표하는 셈이 될 판이었습니다. 신하들 역시 좌불안석의 초조감은 왕의 것에 못지않았습니다. 임금님과 신하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거의 동시에 “아, 참으로 훌륭하오.”하면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임금님은 이들에게 자신이 입을 옷감을 다 완성하기까지 최고의 환경과 대우를 해주겠다고 약속하고 이들이 옷감을 짜는데 전력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이들 형제는 열심히 베틀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임금님과 신하들은 언제면 내 눈에 저게 보일까 하고 이들의 일하는 현장에 이따금 들러보았지만, 눈에는 여전히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들릴 때마다 왕과 신하들은 그 옷감의 완성과정에 한마디씩 아는 척을 했고, 이야말로 이 나라 임금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진귀한 작품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백성들 가운데도 이 소문을 듣고 자기도 그걸 보았노라고 자랑하고 다니는 자들이 여기 저기 생겨났습니다.

마침내 옷이 완성되었다는 전갈과 함께, 모든 백성들 앞에서 드디어 이 옷을 입고 행차하게 되는 날이 왔습니다. 이 이야기는 모두가 다 잘고 있다시피 한 어린아이의 꾸밈없는 외침으로 인한 모두의, 더 이상은 도저히 참아낼 수 없는 폭소로 결말이 납니다. “벌거벗은 임금님”은 그 순간 모두의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말았고, 백성들은 십년 묵은 체증이 다 시원하게 내려갔더랍니다.

권력의 오만과 독선, 그리고 자기치장은 시대를 넘어 이어지는 권력의 피하기 어려운 유혹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들 그게 아닌데 하고 바로 보고 있으나 임금님만 아닌 척하고 버틴다 해서 사태가 해결될 일이 아닐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도 새기기에 따라서는 결코 간단치가 않네요.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안데르센은 어디에서 이 이야기를 구해왔을까요?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 센타"(오후 4시-6시/www.ebs.co.kr )에서 하는 5분 칼럼을 프레시안과 동시로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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