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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나와 알레그레의 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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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나와 알레그레의 강물

김민웅의 세상읽기 <45>

다보스와 포르토 알레그레. 하나는 스위스에 있는 산속의 도시이고, 다른 하나는 브라질의 남부지역 항구도시입니다. 다보스는 휴양지이고, 포르토 알레그레는 교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도시의 거리와 환경의 차이는 다만 지리적 의미로만 그치지 않습니다. 이 두 도시 사이에는 “티나(TINA)”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티나”는 브라질이 있는 남아메리카와 스위스가 있는 유럽 사이에 가로놓인 대서양 한 가운데 떠 있는 섬 이름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어느 서양 소녀의 이름도 아닙니다. 물론 이는 우리말의 “티를 낸다”에서 나온 말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것은 이른바 “철의 여인”으로 알려진 영국 대처 전 수상과 관련이 있는 단어입니다.

영어 T.I.N.A.로 이루어진 이 “티나”라는 말은, 풀자면 “There Is No Alternative"에서 각 단어의 머리글자를 따와 조합한 것입니다. “다른 대안은 없다”라는 뜻이지요. 이 말 속에 담긴 분위기는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딴 방법 없어. 그냥 이를 현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별 수 있겠어?” 하는 식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최초로 사용했던 영국 대처 정부는 이를 패배주의적 용어로 쓰지는 않았습니다. 그 반대로, 자신의 정책과 노선에 대한 확신의 깃발처럼 내세웠습니다. 그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방식과 방향이 가장 옳다, 다른 대안은 다 현실을 모르고 하는 이상론에 지나지 않는다” 하는 논리가 된 것입니다. 여기서 현실이란 돈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생리에 대한 언급입니다.

노동자들이 제아무리 새로운 사회에 대한 주장을 한다 해도, 농민들이 제아무리 농업의 위기를 부르짖는다고 해도,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들의 권리에 대한 정치경제적 보호를 요구한다 해도 그 사회의 동력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결국 돈 있는 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들의 요구에 맞춰나가야 모두가 잘 살게 된다는 것이 이 “티나”의 요지입니다.

그래서 대처 정부는 특히 노동자들의 요구를 강력하게 진압해나가게 됩니다. 이들의 요구를 이른바 <영국병>이라고 지칭하면서 기득권층의 이익을 방어해주는 정책을 밀고 나가게 됩니다. 그 방법 외에는 영국을 살릴 길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티나”는 이들 기득권층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영국은 그로 인해 결국에는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와야 하는 사회적 생명력이 시들어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빈부의 모순은 깊어가고 사회적 약자들의 양보만 거듭된 결과였습니다.

이러한 논리와 사고는 이후 이른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현실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자본의 탐욕과 이미 결탁해버린 지도자들을 비롯하여, 거대한 자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모두가 죽을 수 있다는 패배주의적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국가 지도자들이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자본에게만 일방적으로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일에 몰두하게 된 것입니다.

1999년 미국 시애틀에서는 국제통화기금 IMF와 세계은행 World Bank의 회의가 반대시위자들에 의해 봉쇄되는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사회적 약자들의 연대와 결속이 세계적 차원에서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흐름은 브라질의 포르토 알레그레에서 2001년 마침내 "세계사회포럼(World Social Forum)"으로 집결하게 됩니다.

“부자들의 잔치”라는 다보스와 “사회적 약자들의 행진”이라고 할 수 있는 포르토 알레그레가 서로 대조되는 경계선이 그어진 것이었습니다. 포르토 알레그레는 티나 대신, “새로운 세계는 가능하다(Another world is possible)”라는 구호를 외칩니다. 다른 대안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상주의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현실은 자본으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라, 결국 그 누구도 배제되지 않은 모든 인간의 행복과 그 권리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다보스와 포르토 알레그레는 다만 유럽과 남아메리카에만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 내부에도 다보스와 포르토 알레그레가 엄연히 존재합니다. 한쪽에서는 자신들의 성채를 지켜줄 여신 티나를 에워싸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한숨과 눈물을 딛고 새롭게 일어서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포르토 알레그레는 여러 강물이 합쳐 하나의 거대한 하구(河口)가 된 곳이라고 하더군요. 역사는 정의가 강처럼 흐를 때, 인류를 위해 의미 있게 진보할 것입니다.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 센타"(오후 4시-6시/www.ebs.co.kr )에서 하는 5분 칼럼을 프레시안과 동시로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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