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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夕陽), 그리고 태양의 궤도 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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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夕陽), 그리고 태양의 궤도 그 끝

김민웅의 세상읽기 <42>

해질녘 산자락에 걸린 노을은 도시의 분주함에 익숙한 이들에게 마치 “자기로의 귀환”을 일깨우는 징조처럼 다가옵니다. 속도의 성급한 재촉과 성과를 향한 경쟁적 의무로 내몰린 자신을 다시 찾아오는 시간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행복을 누리라는 권고가 담긴 듯한 것입니다.

하늘과 땅이 겹쳐 이루어내는 지점에서 태양은 하루의 노고를 접고 그날의 마지막 봉사를 합니다. 그래서 석양(夕陽)은 과격하지 않으며 또한 무력하지도 않습니다. 뒤를 이어 세상을 이윽고 덮게 될 밤과 조용히 포옹하는 몸짓으로 은은한 자취를 남겨놓는 것입니다. 하여 황혼(黃昏)은 성숙한 영혼을 드러내는 것만 같습니다.

서러운 날도 결국 기억에서 사라지는 시간이 있습니다. 아픈 마음도 마침내 새 살이 돋아 기운을 새롭게 차리는 때가 오기 마련입니다. 시름 깊은 밤도 동트는 기척에 물러나는 신비로움으로 우리는 위로를 받게 됩니다. 고단했던 육신도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깨어날 줄 모르는 잠에 취해 평화를 얻기도 합니다.

그러니 시간이 흐르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애달픈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의 몸과 영혼은 그 시간의 강 속에서 때로 격동하기도 하고 때로 지치기도 하며 때로 격전의 피로를 풀기도 하는데, 여기서 눈여겨 마음에 새길 바는 그 어떤 것이든 “과정의 깊이”를 요구한다는 점입니다. 그걸 뛰어넘은 채 이룰 수 있는 것은 없거나 또는 있다 해도 조만간 쉽사리 무너지고 말 겁니다. 따라서 아예 없다 해도 좋을 겁니다.

세상만사가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은 그 마음이 배워야 할 기다림과 지혜를 익혀가는 절차가 “피할 수 없는 예절”처럼 있는 까닭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몸이 고되게 배운 것은 세월이 지난다 해도 가볍게 떠나가지 않으며, 엉겁결에도 고수의 초식처럼 그저 일상의 아무렇지도 않은 몸짓인 양 풀려나와 그 어느 경우에라도 스스로를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언젠가, 바닷가에서 해가 지는 광경을 보면서 이런 느낌을 적어본 적이 있습니다. 제목은 “석양(夕陽)”입니다.

“한시도 잊은 적이 없는 뜨거움,/식지 않은 몸을 감출 길 없다// 그 하루의 치열한 기다림 끝에/태양은/투망에 몰입하는 어부의 몸짓으로/해심(海心)에 완벽하게 스며든다//보이지 않는 길이 열리고/격렬하게 출렁이는 순간들/해도(海圖)에 기록되지 않는 태고의 숨결이/여전히 새롭다//석양(夕陽)은 기우는 것이 아니라/바다와의 사랑에 그렇게 흠뻑 빠져 있는 것이다”

우리가 떠오른다, 진다, 일어난다, 기운다 하는 그 모든 것들의 정체는 어쩌면 보기에 달린 문제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시선의 차이에 따라 현실과 나와의 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낮이라 할지라도 그 영혼이 밤인 경우도 있으며, 어두운 시각이 우리의 삶을 점령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 마음의 속 중심에 빛나는 기운이 시작되는 순간일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해서 그날 그 자리에서 본 것은 모든 기운을 다 쓰고 난 후 바다 속에 쓸쓸하게 침몰하는 태양이 아니라, 도리어 그 바다를 향해 온통 자신을 몰두하는 거대하고 위엄 있는 존재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한없이 기뻐하는 바다의 격정이었습니다. 결국 태양이 자신의 궤도를 돌면서 궁극적으로 목표했던 지점이 어디인지를 고백하는 비밀스러운 순간인 양 여겨진 것입니다.

그러기까지 우리는 아직 한번도 가보지 않은 시간의 모험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 목적지로 가는 길은 누가 미리 일러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에 태양의 궤도가 그리는 열정과 깊이의 최종적 의미를 망각하지 않는다면, 그 여정은 우리를 결코 외롭거나 지치지 않게 해줄 것입니다. 결국 만나게 되는 것은 기쁨일테니까 말입니다.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 센타"(오후 4시-6시/www.ebs.co.kr )에서 하는 5분 칼럼을 프레시안과 동시로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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