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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타로(桃太郞)와 한일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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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타로(桃太郞)와 한일협정

김민웅의 세상읽기 <40>

“모모타로(桃太郞) 이야기”는 일본의 유명한 동화입니다. 어느 날 할머니가 강에서 빨래를 하다가 커다란 복숭아가 떠내려 오자 그걸 건져 집에 가져갑니다. 산에 나무하러 간 할아버지가 집에 돌아온 후, 두 노부부는 함께 먹으려고 복숭아에 칼을 대려는 순간, 쩍하고 갈라지면서 그 안에 귀여운 남자 아기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슬하에 후손이 없던 이 노부부는 크게 기뻐하고 아이를 정성껏 기르게 됩니다. “큰 복숭아에서 태어난 아이”라는 뜻으로 이름이 모모타로가 된 이 소년은 장성하면서 힘과 지혜도 출중하게 자라납니다. 소년장수가 된 것입니다. 그러던 중, 도깨비의 악행으로 온갖 재물을 빼앗기며 곤경에 처해 있던 마을 사람들의 요청으로 모모타로는 마침내 도깨비 퇴치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먼 길을 떠나게 되는 소년에게 할머니는 수수경단을 만들어 싸 주게 되는데, 가던 중에 개, 원숭이, 꿩을 만나게 되지요. 이 동물들은 모모타로에게 수수경단을 주면 자신들도 같이 도깨비 퇴치작업에 참여하겠다고 제안하고, 그리하여 이들은 도깨비가 있는 곳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수수경단을 받게 된 세 동물들은 각기 역할을 하게 되는데, 가령 꿩은 높이 날아 도깨비가 있는 섬을 찾고, 원숭이는 성문을 넘어 닫힌 문을 열게 됩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가장 맛있는 수수경단을 먹고 힘이 난 개는 도깨비와 격전을 벌이게 되면서 결국 모모타로 일행은 도깨비를 제압하고 마을사람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줍니다.

이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장래에 대한 희망 없이 하루하루 고된 노동과 일상을 반복하면서 살아가던 일본 민중을 대변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식이 없이 살아가던 이들에게 모모타로는 그래서 새로운 희망의 출현이었고, 살아갈 의지와 의미를 부여하는 기쁨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커다란 복숭아”는 손오공이 등장하는 <서유기(西遊記)>의 천도(天桃), 즉 옥황상제가 먹는 복숭아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하늘의 큰 축복”이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모모타로는 하늘의 축복으로 태어난 아이라는 의미와 함께, 비범한 능력을 가진 존재를 떠올리게 합니다.

모모타로의 탄생은 그런데 “도깨비의 출현”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그저 태어난 것이 아닌 것입니다. 모모타로에게는 따로 맡겨진 사명이 있었던 것입니다. 민중들의 숙원을 해결해주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도깨비는 민중들에게 고통을 안겨다주는 세력을 총칭합니다. 이 도깨비를 이기는 힘은 수수경단을 먹은 모모타로와 개, 원숭이, 꿩이었습니다. 수수경단은 민중들의 양식입니다. 그리고 개와 원숭이, 꿩은 상식의 세계에서는 도깨비를 이길 수 있는 힘이 없는 미물(微物)에 불과한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민중들이 만들어 준 양식을 먹고 함께 하나가 되어 연대하자, 도깨비가 지배하고 있던 세상이 무너지게 되었더라 하는 것입니다. 이름 없는 할머니가 만들어준, 거창한 식탁에 비하면 보잘 것 없어 보일 수수경단, 그걸 혼자 챙기지 않고 함께 나누어 먹을 줄 알았던 모모타로, 그리고 수수경단을 먹고는 안면 바꾸지 않고 약속을 끝까지 지킨 모모타로의 친구들. 일본역사의 강물 위에 흘러내려온 커다란 복숭아 속에 담겨 있는 민중들의 희망과 의리, 그리고 도깨비 없는 세상이 줄 평화에 대한 갈망을 여기서 봅니다.

40년 전에 체결되었던 한일협정관련 문서들이 공개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진상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우리를 식민지로 만들어 지배하고 재물과 인명을 앗아갔던 저 바다 건너 섬에 사는 “도깨비”가 어떤 모습으로 우리와 회담에 임했는가가 확인되고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일본은 여전히 식민지 지배자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보통의 일본사람들은 도깨비를 퇴치하는 모모타로를 그토록 사랑하는데, 정작 일본의 권력자들은 도깨비하고 친한 모양입니다.

어느 날 할머니가 강에 가서 빨래하다가 커다란 복숭아를 건져 다시 모모타로가 태어나야 할 판이 아닌가 합니다. 날이 밝은 지 오래인데 도깨비는 아직도 자취를 감추지 않고 있기에 말입니다.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 센타"(오후 4시-6시/www.ebs.co.kr )에서 하는 5분 칼럼을 프레시안과 동시로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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