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이후에도 살았을 때의 영광을 그대로 누리고 싶다는 열망, 그것을 피라미드는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피라미드는 다른 모든 것을 다 털어버리고 하나로 요약하자면 썩지 않는 몸으로 만들어진 “미이라”의 거대한 안장처(安葬處)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곳은 적어도 그 피라미드의 신화를 믿은 자들에게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 허물어진 “영원으로 통하는 문”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늘을 향해 치솟은 모습으로 세워진 피라미드는 물론 그 첨단의 위엄을 내세워 지상의 존재들을 압도하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내부는 자칫 그 안에 들어갔다가는 오도 가도 못하게 갇혀버릴 미궁(迷宮)의 회로로 이어져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이 영원한 권좌의 영광, 그것을 탈취해보려는 세속의 욕망으로부터 지켜내려는 고도의 전략이기도 합니다.
피라미드는 이후 무수한 도굴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을 어떻게 따로 떼어내서 옮길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나일 강의 풍요를 누리고 있던 시대의 역사적 흔적을 오늘의 우리들에게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피라미드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와 관련한 적지 않은 전설과 괴담으로 현대인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한 영화 “국보(National Treasure)”는 미국 초대 건국자들이 세계 도처에서 약탈하거나 탈취해온 문명사적 보물을 결국 찾아내서 그것을 다시 인류의 공동 유산으로 되돌리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보물 가운데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 관련 유적과 유산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물론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 돈 1달러 지폐에는 그 뒷면에 피라미드와 미국의 상징인 거대한 독수리가 양 편에 그려져 있습니다. 독수리의 두 손아귀에는 한쪽에 화살다발이, 다른 한 쪽에 평화의 상징인 올리브 나무 가지가 움켜쥐어 있습니다. 미국의 세계적 역할을 여기에 압축해서 표현해내고 있는 것입니다. 힘과 평화, 다시 말해서 이른바 “미국의 평화”라고 하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국가적 의지가 담겨 있는 장면입니다.
왼편에 그려져 있는 피라미드의 최상부에는 큼직한 눈이 빛을 내고 있습니다. 세상을 통찰하고 꿰뚫어 보는 지혜의 능력을 의미하는 셈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피라미드적 질서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것은 미국입니다.
지폐 가운데 기본이 되는 1달러 짜리에 이렇게 독수리와 피라미드가 박혀 있는 것은 미국의 국가정신이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하늘의 권세를 쥐고 있는 독수리의 힘을 갖추면서, 피라미드로 대변되고 있는 위계 질서를 추구하는 나라를 미국은 자신들의 국가적 정체성으로 목표삼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대 이집트에서도 그랬듯이 피라미드는 소수의 영광을 위해 다수의 희생을 그 구조물의 본질로 내재하고 있습니다. 피라미드적 사회를 실현하려는 국가의지는 따라서 대다수의 인간들을 정점에 있는 존재의 영광에 동원하고 희생시키는 논리를 권력의 상식으로 여기게 됩니다.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의 고문 행위와 관련한 재판이 열리고 있습니다. 관련 군인들에 대한 변호인들의 변호 내용이 알려지면서 미국 사회에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고 합니다. 이라크 포로들을 벌거벗겨 피라미드처럼 쌓아올려 사진을 찍은 것 정도가 무슨 고문인가라는 항변입니다. 운동 경기에서도 응원단이 그런 식의 피라미드 쌓기를 하는 판국에, 라는 단서와 함께 말입니다.
고적으로서의 피라미드로 그친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문명사적 가치를 논할 수 있겠지만, 삼각입체로 이루어진 피라미드적 현실을 오늘의 질서로 만드는 일에 아무런 반감을 갖지 않는다면 그건 누군가의 희생에 무감각한 사회로 가는 길이 열리지 않을까 합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피라미드 안에는 미이라가 있다는 사실. 기괴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미이라가 말입니다.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 센타"(오후 4시-6시/www.ebs.co.kr )에서 하는 5분 칼럼을 프레시안과 동시로 연재하는 것입니다.
김민웅 박사가 강의하는 ☞ 투기자본경제교실 "투기자본에 저항하라" 자세히 보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