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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채플린, 그리고 무대 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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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채플린, 그리고 무대 위에는.....

김민웅의 세상읽기 <33>

영국에서 태어난 그는 미국에서 세계적 인물이 되었습니다. 가난했던 시절, 유랑 연예인 생활을 하다시피 했던 어머니의 손을 잡고 나이 겨우 다섯 살에 첫 무대에 오른 그는 이후 극단생활을 통해 연기의 기초를 세우게 됩니다.

이 “그”는 누구일까요? 콧수염과 몸에 바짝 붙는 어울리지 않는 영국 신사복과 모자, 그리고 지팡이로 1910년대 이후 무성희극영화의 제왕이 된 찰리 채플린은 그렇게 성장했던 것입니다.

그의 연기 활동은 1940년대 후반에까지 이르게 되는데, 그러한 과정에서 그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깊고 날카롭게 자본주의 문명의 모순을 파헤치는 작업에 몰두하게 됩니다. 물론 그 어떤 작품에서도 찰리 채플린은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 있었고, 때로 무력하게 패배하는 듯한 순간에도 결국 사태를 반전시키는 극적 변화를 통해 희극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가령, 기계화된 산업사회에서 인간이 도구가 되어버리는 현실을 풍자한 “모던 타임즈(Modern Times)”가 나왔던 1936년은 세계적 대공황의 여파가 아직도 가시지 않은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여기서 그는 인간을 끊임없이 이익창출의 수단으로 몰아가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저항을 시도합니다.

1940년대에 나온 유성영화 “위대한 독재자(The Great Dictator)”에서는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를 군사주의적 방식으로 타개하려 한 히틀러와 나치스를 통렬하게 조롱합니다. 찰리 채플린의 콧수염과 히틀러의 콧수염이 교묘하게 일치되면서 히틀러는 세기의 희극적 존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는 겉보기의 거대함, 위대함 등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허구를 폭로하면서 인간이 어떻게 사는 것이 진실한 것인지를 묻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찰리 채플린이 “살인광 시대(Monsieur Verdoux)”라는 작품을 통해서 제국주의 문제를 제기하자 당시 매카시즘의 광풍에 휩쓸려 있던 미국의 보수 세력은 그를 공산주의자라고 지목하여 박해하게 됩니다.

미국 민중들을 비롯하여 세계의 서민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찰리 채플린은 이렇게 해서 미국이라는 무대를 뒤로 하고 유럽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망명자 아닌 망명자가 된 것입니다. 냉전의 악령에 시달려 있던 1940년대 중후반에서 50년대의 미국은 그렇게 정신적 황무지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후 1970년대 미국 영화계는 찰리 채플린의 공로를 인정하여 아카데미 특별상을 수여하고, 영국에서는 백작 작위도 받게 되는 등 말년의 그는 행복한 시절을 맞이하게 됩니다. 세상의 약자들에 대한 용기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그의 삶이 정당한 역사의 평가를 받은 셈이었습니다. 냉전시대의 판결은 무효가 된 것입니다.

찰리 채플린의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마지막 장면들은 거의 예외 없이 이런 모습을 보여줍니다. 즉, 작고 볼품없는 그가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나 남루한 옷과 찌그러져버린 모자를 툭툭 털고 바로 세운 후 지팡이를 팔목에 걸친 채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이 새롭게 길을 가는 것입니다. 민중 또는 서민의 지치지 않는 생명력을 표현해낸 것입니다.

눈물 속에 결국 웃음이, 몇 번의 패배 후 반전의 여유가, 그리고 작고 힘이 없다 해서 결코 무력해지지 않는 존재가 화면 가득 경쾌하게 조명되는 것입니다. 인간과 시대에 대한 성찰의 깊이가 철학으로 담겨 있는 그의 연기는 그래서 고단했던 시절의 위로와 격려가 되었습니다.

지난 2002년 대선에서 서민들은 찰리 채플린을 보았다고 믿었습니다. 세상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자들에게는 조롱의 대상이었지만, 이 땅의 서민들에게는 반전(反轉)의 여유를 가져다주리라 여기고 선택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기대했던 찰리 채플린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다른 연기자가 무대를 차지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 연기자의 연기에 감동한 것이 아닌 관객의 눈물이 흐르고 있는 것을 그가 알고 있기나 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 센타"(오후 4시-6시/www.ebs.co.kr )에서 하는 5분 칼럼을 프레시안과 동시로 연재하는 것입니다.

김민웅 박사가 강의하는 ☞ 투기자본경제교실 "투기자본에 저항하라"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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