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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세레모스 !", 그리고 역사의 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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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세레모스 !", 그리고 역사의 심문

김민웅의 세상읽기 <29>

이런 노래의 가사가 있습니다. “내가 노래하는 것은 노래를 좋아하거나 또는 좋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기타도 감정과 이성을 가지고 있기에 노래를 부르는 것이라네. 내 기타는 대지의 심장과 비둘기의 날개를 가지고 있다오....봄의 향기를 가지고 열심히 노동하는 기타, 내 노래는 저 별에 닿는 발판이 되고 싶고 용감한 노래로 기억되고 싶다오..” 빅토르 하라(Voctor Jara)의 <선언(Manifesto)>이라는 노래의 가사입니다. 그는 1935년에 태어나 1973년 피노체트 정권의 손에 살해당한 누에바 깐시온의 대표적 가수였습니다.

<누에바 깐시온(Nueva Cancion)>은 "새로운 노래"라는 뜻을 가진 스페인어입니다. 1960년대 말에서 70년대에 이르기까지 라틴아메리카 민중운동의 하나로서 특히 칠레를 중심으로 한 민속과 전설, 그리고 민중가요 채집을 기초로 전개된 작업입니다. 이전까지는 서구 문명의 힘에 밀려 주변부적 지위 이상을 갖지 못했던 민중들의 목소리를 새롭게 담아내려는 노력의 결실이기도 했습니다.

칠레의 피노체트 군부독재 시절을 다룬 “산티아고에 내리는 비”라는 영화에도 빅토르 하라의 모습이 잠시 비춰지기도 하지만, 이 노래운동이 미친 정신적 영향은 라틴아메리카 전반에 걸쳐 민주주의의 장정에 중대한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선거로 이루어진 라틴 아메리카 최초의 좌파 정권 아옌데 정부는 이 누에바 깐시온의 열정적 지지자들이 부른 새로운 시대를 위한 거대한 합창 위에 서 있었습니다.

그들이 외친 함성은 “단결하라, 단결하라”라는 뜻을 가진 “Venceremos, venceremos!" 였습니다. 힘없고 가난한 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우선 서로 힘을 합해 뭉치는 일이였기 때문이었지요. 이 <벤세레모스>는 아옌데 정권 수립의 상징적 구호였습니다. 페론 정권이 몰락하면서 에바 페론이 아르헨티나를 위해 눈물을 흘리지 말라고 했지만, 칠레의 살바도르 야옌데 정권은 이 벤세레모스의 의지와 용기를 남겼습니다.

물론 아옌데 정권은 미국의 쿠데타 지원으로 처절한 비운에 처하게 됩니다. 당시 미국의 닉슨 대통령과 키신저는 칠레의 아옌데 승리 앞에서 경악합니다. 그리고 그대로 둘 수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군사정권 옹립을 위한 시나리오를 밀고 나가게 됩니다. 아옌데 승리에 환호했던 칠레 민중들의 함성이 절규로 바뀌는 과정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미국의 저명한 시사주간지 <네이션>의 크리스토퍼 힛친스(Christopher Hitchens)는 지난 2001년, “헨리 키신저를 재판정에 세워야 한다”(The Trial of Henry Kissinger)는 제목의 책을 출간한 바 있습니다. 키신저는 아옌데 정권을 세운 칠레인들을 가리켜 “저들은 무책임한 자들이다”라고 일갈하면서 미국의 기업 ITT, 코카 콜라, 그리고 체이스 맨해탄 은행의 이익을 위해 칠레인들의 민주적 선택을 유린하는 정치군사 비밀공작을 추진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비밀공작 과정과 그 내용은 이후 미 의회의 조사위원회가 미 중앙정보국 CIA의 활동을 점검하면서 낱낱이 밝혀지게 됩니다. 한 나라의 운명을 무섭게 좌우했던 역사적 진실이 그 정체를 드러내면서 미국 최고의 전략가라는 명성을 가졌던 키신저는 국제적 범죄자의 지탄을 받게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이 칠레의 비극, 그 중심에 서 있던 피노체트가 다시 칠레 법원에 의해 재기소 되었습니다. 건강상의 이유로 재판을 받지 않았던 그가 다시 역사의 법정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세력 숙청을 위해 벌인 일명 콘도르 작전으로 3천여명을 죽이고, 3만 이상의 고문이 자행됐다는 증언이 있습니다.

가택연금 명령을 받은 그의 나이는 이제 89세입니다. 그러나 역사의 심문은 아직 그 시효가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누에바 깐시온이 외친 벤세레모스의 함성과, 그 소리의 뒤에 흐르고 있는 산티아고의 눈물은 칠레를 비롯하여 새로운 시대를 향한 인류의 희망으로 여전히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문에 의한 사건 조작 논란이 역사적으로 정리되지 못한 채, 지금까지도 정치적 쟁점이 되고 있는 나라에서는 더욱 그렇지 않을까 싶군요.

*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 센타"(오후 4시-6시/www.ebs.co.kr )에서 하는 5분 칼럼을 프레시안과 동시로 연재하는 것입니다.

김민웅 박사가 강의하는 ☞ 투기자본경제교실 "투기자본에 저항하라"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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