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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진실, 그리고 새로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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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진실, 그리고 새로운 세상

김민웅의 세상읽기 <28>

지난 2002년 스페인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연출한 영화, “그녀에게”는 의식불명 상태에 있는 여인을 사랑하는 한 남자의 애절한 마음을 그리고 있습니다. 영어 제목은 “Talk to her”, “그녀에게 말해봐”라는 뜻이지요, 원제 역시 같은 의미를 가진 "Hable Con Ella"입니다.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처럼 된 알리샤에게 다가가는 간호사 베니그노가 그녀의 마음과 몸에 다가가는 과정이 차분하면서도 때로 충격적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듣지도 못하고 말할 수도 없고 또한 반응을 보일 수도 없는 존재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사랑과 생명의 <성역>을 향한 고투가 그곳에 있습니다. 그 성역의 문을 열기 위해, 그리고 그렇게 해서 서로 만나게 되는 그 기쁨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여자 투우사 리디아를 사랑한 여행 잡지 기자 마르코는 리디아가 투우 경기 중 온몸으로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고자 자살을 시도하면서 망가진 그녀 앞에서 절망하게 됩니다. 그런 그가 마치 알리샤가 그 모든 말을 들을 수 있는 것처럼 여기고 열심히 대화를 중단하지 않고 있는 베니그노를 만나면서 생각의 지평이 서서히 달라집니다.

간호사 베니그노가 중간에 한 무성 흑백영화를 보는 장면이 삽입되어 등장하게 되는데, 그 전개과정과 장면들은 실로 놀라운 의외성으로 해서 보는 이들에게 강도 높은 긴장을 줍니다. 사랑이 어디에서 자신을 확인하게 되는가에 대한 <몸의 문제>가 그 중간의 격자 영화는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베니그노는 이 영화에서 받은 충격을 마음과 몸에 담고 알리샤에게 다가갑니다. 몸은 그저 몸이 아니라, 그 마음과 영혼이 거(居)하는 자리이고 그 자리는 생명의 파도가 넘치는 현장이었습니다. 베니그노가 끊임없이 그녀에게 말하고자 했던 것은 그저 발성으로 끝나지 않고 몸의 언어로 표현되는 지점으로까지 갑니다.

서주희의 일인극 <버자이너 모놀로그(Vagina Monologue)>는 지금까지 마치 금기처럼 억제되어 있어 왔던 여성의 성에 대한 솔직하고 과감한 표현으로 세간의 화제를 모아왔습니다. 5번째 공연으로 접어든 공연 현장에는 자신의 몸에 대한 정직한 표현을 열망하는 젊은 여성들뿐만 아니라, 지난 세월 그러한 일을 억제당해 온 세대도 함께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화장기 없이 맨발에 무대에 나선 서주희는 우리의 모든 몸이 다 이름을 가지고 자신의 역할과 지위를 세상에 과시하는 반면, 여성의 몸 단 한 곳은 그렇지 못한 것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 말하기 행위는 물론 거북스럽고 기피할 만한 일이며 또한 도덕적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선택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서주희는 <버자이너 모노롤그>를 통해 몸의 주인이 몸의 일부를 수치스럽게 여기거나 또는 음침한 시선의 사각지대에만 놓아두게 된다면 그것은 몸의 존재가치에 대한 부당한 대우일 수 있음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논쟁의 여지가 여전히 있고, 윤리적 판단의 경계선 위에 있는 문제일 수 있습니다. 드러내지 않고 은밀하게 놓아두는 것이 더욱 아름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하게 다가오는 것은, <몸에 대한 소중한 사랑>입니다. 침묵하고 있는 몸, 또는 외면당하고 있는 몸. 그 모두가 다 사랑과 생명의 시선과 손길이 필요한 지대라는 것입니다. 몸에 대한 여성들의 인식의 변화와 일깨움은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축복입니다.

그 축복의 연장선 위에서 우리는 인간의 마음과 몸을 하나로 받아들여 아끼고 기뻐하게 하는 세상을 꿈꾸는 시작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몸에게 진정한 사랑을 말하는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 센타"(오후 4시-6시/www.ebs.co.kr )에서 하는 5분 칼럼을 프레시안과 동시로 연재하는 것입니다.

김민웅 박사가 강의하는 ☞ 투기자본경제교실 "투기자본에 저항하라"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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