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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춘 쿠키와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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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춘 쿠키와 국회

김민웅의 세상읽기 <27>

이미 아는 분들도 적지 않겠으나 미국에 있는 중국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고 나면, 후식과 함께 나오는 과자가 있는데 그것을 “포춘 쿠키(fortune cookie)"라고 하지요. 말하자면 ”운세가 담긴 과자“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부르는 까닭은 속이 빈 만두 같이 생긴 이 과자 안에 그날의 운수가 적힌 작은 종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음식을 다 먹고 난 후, 서로 덕담을 나누는 것 못지않게 이 과자를 부수면서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을까 하고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종이를 열어 읽는 것도 즐거운 일입니다.

이 종이에 적힌 말이 뭐 그렇게까지 대단한 비중까지 갖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래도 가벼운 마음으로 자기 앞에 놓인 여러 개의 과자 가운데 하나를 고르기 시작하는 것으로부터 이미 그 자신은 자기에게 열린 운명의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니까 약간의 묘한 흥분이 여기에 개입되기 마련입니다.

가령, “당신은 매우 지적인 사람입니다. 하는 일마다 모두를 기쁘게 하는군요.” 또는 “기다리고 있던 일이 결국 이루어집니다.” 내지는 “당신의 성격이 당신의 최고의 자산이군요.” 등의 글을 보면 그 종이를 펴 읽은 사람은 흐뭇한 기분이 들게 되는 것이지요.

그에 더하여 자신의 정황에 딱 맞는 것 같은 말이 나오면 그야말로 그 날의 식사는 훌륭하게 마무리 지어진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포춘 쿠키 안에 들어 있는 운세가 적힌 종이는 중국식당의 손님 대접에 있어서 소박한 미소를 짓게 하는 귀여운 서비스라고 할까요.

이 포춘 쿠키를 열어볼 때 마다, 이 종이에 이런 글을 적는 사람들은 복 받겠다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때로 별 신통치 못한 것도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읽고 들어서 좋은 문구가 있으니 보는 사람으로서야 좌우지간 감사한 일입니다.

언제까지 그런 풍경이 지속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1960년대 서울의 이곳저곳에서는 <참새 점>을 치는 거리의 노점상이 있었습니다. 사실 노점상이라고까지 말하기도 어려운 초라한 것이었습니다. 참새가 들어 있는 작은 새장 앞에는 작은 종이가 딱지처럼 무수히 접혀 있고 새장의 문을 열면 참새가 나와 부리로 종이 하나 집어 툭 하고 던져 놓는 것입니다. 복채를 낸 사람이 그 종이를 펴 들고 그날의 자신의 운세로 가져가는 것이지요.

복채라고 해봐야 5원, 10원 하는 식이었으니까 모두를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더더욱 그 가당치도 않은 점괘에 혹여나 하고 희망을 걸어보는 이들이 적지 않았던 것이지요. 등사판으로 조잡하게 긁은 그 운세가 적힌 종이를 펴들고 읽었던 그 시절, 그 참새 점판에 서성이던 사람들은 과연 무엇을 생각하였는지 가슴이 아련해집니다.

그런데 사실, 점(占)이라는 글자는 한자로 그 뜻을 풀자면, 본래 나라 국(國)을 의미하는 사각형(국/囗) 위에 옆으로 펄럭이는 깃발을 꽂은 모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이 점이라는 것은 국가의 운명이 어디로 향할 것인가를 놓고 고뇌했던 고대 동양인들의 심정이 그대로 형상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점치는 일이 그저 재미나 호기심이 아니라, 국가의 향방과 관련하여 하늘의 뜻을 묻는, 깊고 깊은 고뇌가 담긴 성찰의 과정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국회의사당의 동그란 돔 형 지붕을 보면, 괜스레 포춘 쿠키가 생각이 납니다. 모양새가 꼭 비슷해서는 아니고 그나마의 기대가 아직 사라지지 않아서겠지요. 해서 그걸 열고 안을 들여다보면 혹 운세가 적힌 종이가 없나 하고 상상해봅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리 잘 봐주고자 한다 해도 “포춘” 없는 “포춘 쿠키” 꼴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중국 식당에도 있는 포춘 쿠키가 왜 거기에는 없을까요?

*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 센타"(오후 4시-6시/www.ebs.co.kr )에서 하는 5분 칼럼을 프레시안과 동시로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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